장자
설검(說劍) <2>
왕은 늘 손에서 칼을 놓지 않았는데, 그들이 도착하였을 때도 왕의 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이 쥐어져 있었다. ‘하루라도 이 칼날을 보지 못하면 눈에 다래끼가 돋는다.’ 왕의 눈빛에서 장자는 그런 각오 내지는 살기를 읽었다. 살기(殺氣)가 밖으로 넘치면 칼은 이미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무자(武者)는 없었다. 무예(武藝)든 무법(武法)이든 무도(武道)든 그것을 어기고는 어느 것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에게는 이미 예법도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직 살기만 흘러넘쳤다.
장자는 그 모습을 보고 궁전 문안에 들어서면서 잰걸음으로 걷는 예를 갖추지 않았다(잰걸음은 왕에 대한 예의다). 왕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에도 일부러 절을 하지 않았다. 왕이 내색하지 않고 장자에게 물었다. 화내면 지는 것, 당대의 유세가였던 장자에게 쪼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목소리를 깔고 점잖게 말했다.
“선생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내리실 작정인지요? 태자가 소개하는 분이니 무엇인가 큰 가르침이 준비되어 있으신 모양이구려.”
장자가 짐짓 목소리를 낮게 해서 말했다.
“저는 대왕께서 칼로 막신일호(莫神一好) 하신다기에 칼에 관해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장자의 말에 왕이 기뻐하며 물었다. 왕의 눈이 기대에 차서 번쩍였다.
“선생은 능히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소?”
장자가 답했다.
“저의 칼은 십보일인에 천리불유행(十步一人 千里不留行)입니다.”
왕이 웃으며 반문했다.
“열 걸음에 한 명씩, 천리를 가도 적수가 없다는 말이신가? 그 말은 예부터 ‘협객행(俠客行)’에 나오는 구절인데, 그야말로 그것은 노래하는 자들의 과장이 아니오? 노래가사에나 나오는 말을 선생이 정색을 하고 말하니 내가 오히려 당황스럽소. 인간에게는 타고난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아무리 천하무적의 칼이라고 한들 그런 경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장자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무릇 칼의 이치는 후지이발에 선지이지(後之以發 先之以旨) 함에 있습니다. 상대보다 늦게 칼을 뽑아서 상대의 칼보다 먼저 적수의 몸에 닿는 이치이지요. 태산 같은 기세로 상대를 압박하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이(利)를 취할 수 있는 이쪽의 허점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공세로 다그치면 나의 허점을 찾기 위해 그는 허둥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마음은 동요되어 있고 칼은 굳어져 임기(臨機)의 부드러움을 잃게 됩니다. 그런 상대가 미처 나의 빈곳을 끝까지 찾지 못하고 섣부르게 공격할 때 칼을 뽑아 필살의 일격을 가하면 상대는 이쪽을 당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제가 십보일인이라 한 것은 비단 거리뿐이 아니라 시간 개념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니, 상대를 압박하여 후발선지(後發先至)로 상대를 격살하는 것은 본디 다섯 걸음이면 충분하나 기세와 칼이 한 몸으로 다시 재응집되어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다시 또 그만큼 필요하기에 열 걸음이라 하였습니다.”
장자의 설명이 끝나자 왕이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칼을 아는 자라면 누구라도 설복되지 않을 수 없는 이치였다. 문제는 장자의 실기(實技)였다. 본디 실기 없는 자들이 훈수에 능한 법, 왕에게는 장자의 칼 쓰는 법에 대해서 더 들을 것이 남아 있었다.
“후발선지라,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구려. 나도 한 칼 한다고 자부하지만, 지금까지 격검의 묘(妙)를 그렇듯 간략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소. 가히 선생은 절세의 선검자(善劍者)임이 분명하오. 다만 ‘태산 같은 기세’라 하였는데, 그 경지가 어떠한지 모르겠소.”
장자가 답했다.
“일기일경(一機一境), 몸 공부에서의 경지란 백련자득(百鍊自得), 무릇 자기 스스로의 터득에 따를 뿐, 보편론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두고 그것을 추수한다고 그곳에 이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다만 스스로 한 문지방을 넘지 못하면 그 다음 방의 전경을 알 수 없는 것이 일도(一刀)에 사생(死生)을 거는 칼의 경지입니다. 죽은 자는 본디 말이 없는 법, 저의 몸이 상대의 칼 아래 눕게 되면 그 칼은 주인을 잃고 한낱 무거운 쇠붙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어찌 경지를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태산’은 가장 높을 때만 ‘태산’이니 그 경지를 말로 형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겉으로 나타나는 품새에 대해서만 말씀드리자면, 몸의 움직임은 금방이라도 금시조가 바다를 가르고*3 사악한 용을 낚아챌 것처럼 기세등등하고, 큰 코끼리가 강물을 성큼 건너듯 웅장하며(金翅劈海 香象渡河), 안정(眼精)은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아 상대의 발심(發心)이 그 안에 훤히 비추어지는 듯합니다.”
왕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직 의문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해동(海東)에 신검이 있다고 들었는데 선생의 경지는 그 경지와는 어떻소?”
장자가 지긋이 눈을 감고 답했다.
“우리가 해동이나 부상(扶桑)에 신검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사오나 이는 일종의 신기(新奇) 취미인즉 칼 놀림의 이치에 중원이 따로 있고 해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해동의 한 검호(김유신)가 칼로 바위를 쳐 두 동강을 내었다는 이야기와 7세아가 창안했다는 황창검(해동검법)이라는 것이 있어 꽤 볼만하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한갓 이야기 좋아하는 자들의 허랑된 작란에 불과하고, 다만 해동의 신전(神箭)과 부상의 몽상류(夢想流)에는 볼 것이 조금 있습니다. 해동 신전은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요목 하나로 일찍이 신기(神技)를 득한 바 있고, 부상 몽상류는 일안(一眼) 이족(二足)이라 하여 안법(眼法)과 입신(入身)의 묘를 지극히 하고, 겉으로 내세우는 심법으로는 허허실실(虛虛實實)한 무심(無心)의 경지를 검술에 반영하여 자기들 가운데서는 불패의 일가를 이루었다고 들었습니다. 부상에서는 오래전부터 동족들간의 상쟁이 끊이지 않아 살상 병기에 대한 고안(考案)이 날로 발전되어 실전에서의 살상을 위한 도검류도 여러 가지 종류가 개발되어 있습니다. 일도류, 이도류, 창검류, 태도류 등에 따라 검술과 검법도 각양입니다. 그러나 일도가 만도가 되는 이치는 시대나 지역을 따지지 않고 일이관지하고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검술의 요체는 후발선지에 있고 이기는 경지는 오직 금시벽해를 이룸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왕도 더 이상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이제 듣는 일은 다하였고 보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은 주인에 따라 명검도 되고 부엌칼도 되는 것임은 선생이 양생(養生)의 도(道)를 설(說)하며 거명한 포정(庖丁)*4의 고사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며, 일기일경이 모든 공부(工夫)의 요체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오. 직접 선생의 경지를 내 눈으로 볼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오. 우선 숙소에 들어 쉬도록 하시오. 준비가 되면 연락을 하리다.”
“저도 실제로 시범을 보이고 싶습니다.”
장자가 물러나자 왕이 검사들을 불러 선발전을 열었다.
(주3) 금시조는 가루다라고도 하는데 불가의 상징이다. 몸은 사람의 몸이고 머리 모양은 매와 같다는 가상의 대조(大鳥)인데 날갯짓 한번으로 바다를 가르고 그 속의 용을 잡아먹는다.
(주4) 『장자(莊子)』내편 양생주(養生主)에 나오는 우화 속의 주인공. 백정인 그가 소를 잡을 때에는 그 소리가 모두 음률에 맞았고, 은나라 탕왕 때의 명곡인 상림(桑林)의 무악에도 조화되며, 요임금 때의 명곡인 경수(經首)에도 맞았다. 19년 동안 칼 한 자루로 수많은 소를 잡았으나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상한 곳이 전혀 없었다.<2011. 12. 25. 오늘 아침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