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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09. 2019

왕이 된 남자

물 마른 옛우물

왕이 된 남자     

tvN 월화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끝났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공연히 기대가 컸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2012)를 보고 나오면서 다시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 ‘광해’가 ‘광대’로 읽혔던 기억이 더올랐다. 왕은 광대다, 왕 짓과 광대 짓은 하등 다를 바 없다, 왕이 뭐 대순가, 누가 더 백성을 사랑하는가, 그것이 진짜 왕을 판단하는 기준 아닌가, 그런 교과서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노무현이 떠올랐다. 그때 써두었던 소감문을 다시 꺼내 본다.

영화는 광대(廣大) 하선(夏仙, 이번 드라마에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이 극적으로 백성을 위하는 선한 군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말하는 왕(王)의 서술적 정체성은 ‘백성을 사랑하는 자’였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그냥 막을 내린다. 내리는 막 위에, 1년 뒤에 허균이 역성혁명을 꾀했다는 혐의로 사약을 받았고, 5년 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었다는 설명만 남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직도 이 땅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꿈꾸는 자들의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직도 우리는 조선시대를 연장해서 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정적(政敵)들은 진짜 왕을 죽이고 가짜 왕의 정체를 밝히려 든다. 그것을 알고 미리 몸을 빼낸 진짜 왕이 가짜 왕을 대신해 검증을 받고 역신(逆臣)들을 처단한다. 그렇게 영화는 대미를 장식한다. 만약 진짜 역성혁명을 꿈꾸는 세상을 동경(동정, 동조)한다면 그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균은 진짜를 죽이고 가짜로 왕을 세워 역성혁명을 이루어야 한다(이 때 중전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1년 뒤 실각해야 한다. 권력을 남용하다가 조정의 탄핵을 받아 죽는 것으로 해야 한다. 권력을 품에 안고 타락한 자의 말로를 그렇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대체역사(소설)가 된다. 오로지 왕(王) 하나만 살려야 한다. 5년 뒤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그 사실(왕이 바뀐 사실)을 안 정적들의 반격으로 이루어진다. 어쩔 수 없는 배신자의 출현도 용납해야 한다. 효(孝) 이데올로기로 현존하는 임금을 끌어내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광대에게 그 오랜 기간 동안 꼼짝 못하고 통치 받았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지배층들의 ‘울며 겨자 먹기 심사’도 상세하게 묘사해야 한다. 광해군이 67세로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는 것(정적들은 끝내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가 중심이 되는 반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배지의 상궁들과 포졸들이 그를 ‘영감’으로 호칭하며 놀렸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그의 ‘광대 전력’ 때문이라는 걸 증거하는 대체역사적 사실(史實)로 내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이 영화가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제목에 지지 않는다. 그래야 영화가 된다. 그래야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래야 요즘 말하는 촛불 혁명에 연결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굳이 역성혁명과 연결되어야 할 하등의, 텍스트 내적인, 필연성은 없었다. 진짜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허균의 제안을 하선은 ‘누구를 죽이고 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왕이 되는 건 싫다’라고 거절한다. 왕이 돌아오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런 말을 한다. 그 부분, 그가 앞에서 한 일과 행동(태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그 부분 때문에 하선은 그때부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화도 이미 ‘영화가 아니다.’ 한갓 유치한 만화에 그친다고 할까? 애꿎은 어린 무수리(궁녀)만 죽이는 삼류 멜로로 전락한다. 그게 얼마나 영화를 유치하게 만드는지 모른다면 그 감독이야말로 진짜 광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만화?)를 두고 왜 역성혁명을 들먹이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공연한 잡담만 늘어놓은 기분이다. 영화 <광대, 왕이 된 남자>는 어쨌든 재미가 있었다. 볼만한 영화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별로였다. 다만 중전 역의 한효주가 제일 보기 좋았다. 옛날 어떤 한 대통령의 재임 시절, 시중에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하나 생각난다. 모두 다 어설픈데 딱 한 사람, ‘영부인만 진짜 영부인 같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 영화가 그랬다. 진짜 광해도 가짜 광해도, 허균도 그 나머지 신하들도 다 어설픈데 중전만 진짜 중전 같았다. 그 표정 연기가 볼 만했다. 마치 오래된 고가(古家)에 남아있는 물 마른 옛우물을 보는 듯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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