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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19. 2019

죽림에 누워

나만의 유토피아

죽림에 누워  

   

지금의 나를 과거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며칠 전에 한 젊은 직장 동료(거의 신임이다)로부터 꽤나 당돌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처럼 늙고 싶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거였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데 별로 듣기가 좋지 않았다. 우선 늙었다는 게 싫었고, 무위도식하는 것을 본받겠다는 것도 싫었다.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남들이 보면 내가 참 신관 편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하기야 나도 한 번씩 그런 착각에 빠진다.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는 일에 능하고 타인과의 공감능력도 월등 떨어지는 편이라 혼자 놀기 좋아하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신세가 편하게 느껴진다. 그런 환경이 조성된 것 같다. 혼자서 페이스북을 하면서 몇 시간을 거뜬히 보낼 수도 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뀐 탓인지 내가 바뀐 탓인지 잘 모르겠다. 나 자신도 내가 이렇게 신관 편하게 살 수 있게 될 날이 올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기본적으로 늘 노심초사, 오매불망, 전전반측하는 것이 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격도 그러했겠지만 워낙 성장기 집안 사정이 난감해서 편하게 살 것이라고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요즘도 한 번씩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정문 앞에 있던 ‘희망서점’ 건이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 입학은 할 수 있었지만 책을 다 살 수 없었다. 주요 과목을 제외하고는 없는 책이 많았다. 단체로 주문할 때 뺀 것이 많았다. 그런 책들을 사기 위해 헌책방(희망서점)을 찾았다. 미술책을 살 땐데 주인이 턱없이 높게 불렀다. 깎아달라고 서너 시간은 족히 졸랐던 것 같다. 나중에는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너한테는 팔지 않겠으니 가라는 거였다. 일단 물러났다. 그 다음날 모른 척하고 또 갔다. 주인아저씨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모른 척하고 전일보다는 훨씬 낮게 가격을 놓았다. 그래서 사서 왔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를 많이 했다. 미술 시간에는 책이 필요 없었다. 시험도 실기만 봤다. 그때 그 서점이 있던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지금은 문구도매상이 들어와 있다. 아귀다툼을 해가며 미술책을 사던 그때, 후일 그 길 건너편에서, 신관 편하게, 내가 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요즘은 죽림칠현이 따로 없다. 아침마다 이런 글들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돈 안 받고 글 쓰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할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현재 내가 꿈꾸는 노년의 삶은 이런 것이다. 일단 주택가 목 좋은 곳에 가게를 하나 연다. 거기서 차도 팔고 빵이나 밥도 판다. 그러면서 틈틈이 글을 써 페이스북에 올린다. 사람이 사람을 전혀 보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행여 안 보고 살 수 있다고 해도, 죄수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 그런 식으로 사람이나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치지 않고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만의 레시피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는 적두병, 고로케, 카레, 돈까스, 만두, 라면 정도가 확보되어 있다(며칠 전 적두병 가게에 갔더니 빵쟁이 아저씨가 적두병을 아웃소씽 하고 싶다고 해서 일단 구두로 계약을 맺고 왔다) 떡복기와 스테이크(햄버그), 또르띠야(만두피 모양으로 만들어 구운 것)와 비빔밥을 혼합해서 맛있고 저렴하고 영양가 있는 나만의 ‘로코보코 식단’을 추가로 짤 생각이다. 찾아오는 손님은 염가로 모셔서 내가 살면서 받은 대접만큼은 꼭 돌려주고 갈까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소싯적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집보다 더 편한 공간들을 몇 군데 섭렵한 경험이 내게도 있다. 동아리방이나 다방이나 식당이나 당구장이나 작업실이나 사람마다 추억이 어린 곳들이 있다. 나도 그런 곳 중의 한 군데에서 청년기 습작 시절을 보냈다. 거기서 석사 논문도 썼다. 요즘 젊은이들이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그 버릇이 남아서인지 요즘도 좀 시끄러운 곳에 가야 생각이 잘 돈다. 집에서 글을 쓸 때도 TV도 켜놓고(때로는 2개씩), 방 밖의 소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쓰는 편이다.   

  

그렇다. 작지만 실(實)한, 유토피아 하나 만들고 가는 게 내 일생의 소원이다. 검도교실도 일단 그 목적에 복속(服屬)하는 것이다. 회원들의 월사금으로 사범 한 사람 초빙하기 어렵다. 그래서 혼자서 늘 붙어 있어야 한다(나이 들면서 좀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요즘은 바쁜 일 끝내고 쉬고 있는 아들이 나와서 거들어준다. 

기왕에 유토피아 말이 나왔으니 그쪽 공부를 좀 해 보자. 동양의 유토피아는 대체로 산해경형 ․ 무릉도원형 ․ 삼신산형 ․ 대동사회형의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정재서, 『도교와 문학 그리고 상상력』참조). 산해경형은 모든 것이 천부적으로 충족된 신화적 이상 공간으로서 어떤 면에서는 서양의 코케인형이나 아르카디아형에 상응한다. 무릉도원형은 도교적 이상 공간으로서 소극적 현실 의지에 대한 표현이며, 삼신산형 역시 도교적 이상 공간이나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신국(神國)이며, 완전한 상상 공간이다. 대동사회형은 유교적 이상 공간으로서 적극적 현실 의지에 대한 표현이며, 그러한 측면에서 서양의 천년왕국, 협의의 유토피아 등의 성격을 일부 지니기도 하지만 역사관은 복고적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강유위의 대동사회는 진보적이지만, 그것이 제기된 시점이 이미 근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참고로 강유위의 대동사회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대동사회의 본래적 취지를 확대 발전시켜 전통시대의 끝 무렵에 유토피아에 대한 의지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것은 청말(淸末) 거유(巨儒)이자 개혁가인 강유위(康有爲,1858-1927)의 《대동서(大同書)》에서이기 때문이다. 

    

....대동의 시대에는 단지 공공의 집과 여관이 있을 뿐, 개인의 집은 없다. 그러므로 함께 줄지어 앉아 식사를 한다. 날마다 큰 연회가 열리며, 또한 기계가 발달하여 개인 방으로 음식을 들여보내 먹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 대동의 시대에는 의복에 구별이 없다. 귀천이 없고 남녀를 구별짓지 않으며, 단지 귀중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모두 같은 옷을 입되, 단지 어진 자와 지혜로운 자만은 구별을 두어서 발전을 장려할 뿐이다. …… 기계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의 지혜도 날로 발전하여 인류에게는 막대한 이익이 생기게 된다. 기계가 정밀해지면 인간의 행동과 일을 조사하고 살필 수 있게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게을러지거나 도둑질하거나 속이거나 하는 등의 일을 못하게 할 수 있다. …… 대동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가 없어서 편안함과 즐거움이 극에 달해 오직 오래 살기만을 생각한다. …… 오직 사람과 공정부(公政府)의 교육과 양육을 20년 동안 받는데,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20년 간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난세의 사람들이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마침내 사람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신선학이 융성한 다음에는 불교가 흥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빛과 전기를 타고 기를 조절해서 지구를 벗어나 다른 별로 가게도 된다. 이것은 대동시대의 극치이며, 인류의 지혜가 또 한 번 새로워지는 때이다. [정재서, 『도교와 문학 그리고 상상력』 중에서]    

 

강유위의 대동사회 이념은 기본적으로는 《예기》의 유교적 취지에서 출발하여 도교의 생명사상, 불교의 해탈사상까지 망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서양의 정치사상인 민주주의, 과학사상에 입각한 유토피아의 개념까지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강유위의 유토피아는 오웰(George Orwell)의 《1984년》이나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 등이 시사하는 바, 그러한 서양 유토피아의 종국(終局)처럼 우울한 디스토피아(Dystopia)로 전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유위의 대동사회는 “빛과 전기를 타고 기를 조절해서 지구를 벗어나 다른 별로 가게도 된다”는 언급이 의미하듯이, 궁극적으로 물질과 정신의 대립을 초월한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 가치가 포기되지 않고 양자의 발전적 통합 위에 구축된 강유위의 대동사회는 환골탈태(換骨奪胎)된 대동사회이며, 동서양 의식이 결합된 새로운 차원의 유토피아 형태라고 할 것이다.(위의 책 참조)     

재미있는 것은, 강유위가 『대동서』를 집필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설마 이런 일까지야 벌어지겠는가’라고 여기던 것들이 지금 보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오피스텔이나 기숙사(학숙)의 식당 모습을 그린 듯한 대목도 있다. 그 시절로부터 100년만에 한갓 ‘공상’이던 것이 ‘현실’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10년 안의 목표, 나만의 유토피아도 곧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누가 그랬다. 앞으로 100년 안에 생기던 변화가 앞으로는 10년 안에 생길 것이라고. 어쩌면 내년이라도 당장 될지도 모르겠다. 10년의 십분지 일은 일년이니까.

<오래 전 작성.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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