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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ou Feb 06. 2017

민주주의가 빛나던 프닉스 언덕

끄적끄적 그리스 (1) Πνύκα

고대에는 프닉스, 현대에는 프니카라고 불리는 이곳은 아크로폴리스의 입구인 프로필레이아를 마주 보고 선 언덕이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클레이스테네스가 민회를 개최한 곳이 바로 이 프니카 언덕이다.


이쯤에서 보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원칙은

 1. ἰσηγορία(isigoria): 연설에서의 평등

 2. ἰσονομία(isonomia): 법 앞의 평등

  * νόμος (nomos): 법

 3. ἰσοπολιτεία(isopoliteia): 투표와 채용의 평등

  * πολιτεία(politeia): 주, 정부, 국가


프니카 언덕은 바로 첫번째 원칙, ἰσηγορία를 실현하는 장소였다.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은 평등하게 Βήμα(Bema: 단, 교단, 무대)에서 연설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 곳에서 하는 모든 발언은 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자유 발언이 가능했다.


특히 테미스토클레스, 아리스티데스, 페리클리스 등 유명한 정치가들이 연설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전에도 종종 찾아왔었지만 베마의 존재는 유재원 교수님과의 답사 덕분에 알게 되었고, 역시 고대 아고라의 스토아 앞에도 베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요즘 시국에 정말 이 곳을 찾아와야 할 분은 따로 있는데, 그 분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실 수가 없을 걸 알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프닉스 언덕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페리클리스. (Philipp von Foltz)
연설자의 단, 베마. 프니카

내가 이 곳을 처음 찾게 된 계기는 사실 ‘우연’이었다. 아크로폴리스부터 티씨오까지, 티씨오에서 모나스티라키를 지나 신다그마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것이 나의 산책 코스였다. 걸음이 느리다 보니 세 시간이 훌쩍 넘기도 한다. 항상 가던 이 길로 걸어가던 중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보는 아크로폴리스가 예쁘다는 것이 생각났다. 필로파포스 언덕은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찾지 않는 곳인 데다가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강도나 소매치기를 만날 위험도 크다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웬일인지 용기를 내보고 싶었나 보다. 그리하여 길을 나섰지만 필로파포스 언덕을 올라간다는 것이……길을 잘못 들어 프니카 언덕에 닿게 되었다. 


언덕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투박한 돌 산 같기도 하고 공원인가 하고 계속 걸어가다 내 옆을 가리고 있던 나무를 지나는 딱 그 순간,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크로폴리스를 보기 위해 Roof cafe를 찾아다니며 커피, 술에 투자한 돈이 얼마정도일까, 가 뇌리를 스친 것 같기도 하다. 아직 그리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에 아크로폴리스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아서 굉장히 감격했다. 말이 언덕이지 능선인 데다 넓어서 오래 걸을 필요도 없다. 그리스에서는 넓고 탁 트인 공간이 많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찰나에 우연히 발견한 소중한 공간이다.


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중요한 공간인데 관광객도 현지인도 찾지 않는 곳이라 조금 아쉽다. 프닉스는 숨이 막힌다는 뜻인데 숨이 막힐만큼 많은 사람들이 민회를 보러 모여 언덕을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지금은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막힐지언정 인파에 휩싸일 일은 없어 보인다.

베마 앞에 가득 모여있을 군중들이 그려진다
사실 아크로폴리스만 빼고 보면 돌투성이이다

아무 돌 위에 먼지 툭툭 털고 앉아서 아크로폴리스와 리카비토스 언덕을 바라보며 숨 크게 들이쉬어야 ‘아 내가 그리스에 와있었지’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이렇게 탁 트인 곳을 보려면 최소 광교산, 청계산은 올라야 가능한데, 그리스는 고층 건물이 많이 없어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에서도 숨통이 트인다. 아! 그러고 보니 그리스는 정말 고층 건물이 없다.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시내에 있는 28층짜리 Athens Tower라고 한다. 한국에는 28층 아파트도 있는데… 아크로폴리스를 보호하고 잘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에 고층건물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진짜든 아니든 이렇게 알고 싶다. 낭만적이야. 사족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덕분에 아름다운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다.


날씨가 풀리면 꼭 예쁜 돗자리를 들고 소풍을 오고 싶다. 금식이 시작되는 사순절 이전 월요일, 정결 월요일(ΚΑΘΑΡΑ ΔΕΥΤΕΡΑ)에 연이나 날리러 와야겠다.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아무 걱정 없이 돗자리 위에 누워 김밥 몇 줄 까먹고 배 퉁퉁하는 여유로운 일상이 얼른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스라면 기로를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소풍은 역시 김밥. 룸메이트 바르다 정선생님이 예쁘게 싸줄 거다. (미리 고마워)

프니카에서 찍은 야경. 올 여름엔 좋은 카메라로 다시 도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아크로폴리스 경치 하면 또 필로파포스 언덕을 빼놓을 수 없다. 다음 글은 너로 정했다 필로파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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