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와 문자의 역사
예전 글에도 자주 언급하긴 하지만 한국에서 그리스어는 아주 생소한 언어이다. 하지만 언어나 역사, 문학을 공부하는 소위 '문과' 친구들보다 '이과' 친구들이 그리스어를 더 편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알파벳까지 다 아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서 배운 α, β, γ, δ, ε....등...미지수를 쓸 때 그리스 알파벳을 사용하기 때문! 왜 알파벳 순서대로 알파, 베타에서 바로 영어 R로 넘어가나 했는데 감마였다는 것.... 나는 수학을 배우면서 ε까지밖에 써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전기나 뭐 수학 등 이과 과목은 심화과정일수록 많은 미지수를 쓰니까 그런가보다. 설령 그리스 알파벳을 어쩌다 조금 알고 있다고 해도, 한국인들에게 아직까지 그리스어는 미지의 세계인 것 같다.
나한테도 그랬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고 싶어 그리스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그리스어는 생각보다 많은 단계를 거쳐 변화해왔기 때문에 원문은 절대 바로 읽을 수 없다. 현대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도 쉽게 못 읽는게 현실이지만....그리스어는 인도유럽어족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이기 때문에 그만큼 역사도 어마어마하고 너무나 복잡하게 변화해왔다.
현대 그리스어도 사실 두가지로 나눠져 있다. Δημοτική(디모티키, 민중 그리스어)와 Καθαρέουσα(카타레부사)이다. 코이네 그리스어로 통합된 이후 중세,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전쟁 등을 겪으면서 언어가 많이 변하고 외래어가 많이 유입되었다. 이에 더럽혀진 그리스어를 깨끗하게 하자! Καθαρίζω(Katharizo, 청소하다)는 의미에서 고전 그리스어의 방식을 이어 사용하자는 취지에 사용된 것이다.
왼쪽이 카타레부사로 쓰여진 그리스 국기 설명, 오른쪽이 디모티키 그리스어로 써진 <개미와 베짱이>의 앞부분이다. 사실 나도 카타레부사를 배운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 차이는 바로 악센트. 이외에도 외래어를 그리스어로 바꿔 부른다던가, 문법규칙이 더 단순하다. 카타레부사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리스의 뿌리를 지킨 언어라는 아주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카타레부사를 사용하는 지식인들의 특권의식을 조장하기도 하고 실생활에서 일반 국민들이 사용하는 디모티키 그리스어와 달라 결국 1976년 디모티키 그리스어가 공식 언어가 되었다. (휴 다행!!)
고전 그리스어 수업을 들으면서 문법 때문에 많이 고생했지만, 재밌었던 부분은 고전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영어 단어들을 배울 때였다.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철학’이다. Philosophy는 Φιλώ(Filo, 좋아하다)와 Σοφία(sofia, 지혜)가 결합된 단어이다. 형제애, 우정 등의 사랑을 의미하는 Φιλία(Filia)는 ‘기호’를 의미하는 접두사, 접미사로 사용된다.
'공포증'을 흔히 우리는 '포비아'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 또한 고전 그리스어에서 온 것! 현대 그리스어로는 Φόβος(fobos, 두려움), Φοβάμαι(fobame, 두려워하다)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잔인한 전쟁의 신, 아레스의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이 포보스, 두려움의 신이기도 하다. 전술을 짜는 지혜로운 전쟁이 아닌, 살육과 폭력을 수반하는 전쟁을 즐기는 아레스의 아들로 아주 적합한 이름이야!
Lachanophobia(야채 공포증), Thanatophobia(죽음 공포증), Hellenologophobia(그리스어 공포증ㅋㅋㅋㅋ) 등 다른 공포증이 있다고 하는데 심리학, 의학과 관련된 용어라 다 그리스어로 되어있다.이외에도 technology, economy, ecology, logic, atom, music, poetry, microphone, telephone 등 셀 수 없는!! 그리스 단어들이 많다. 빠떼 교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다 크리스 탄어에여!!
수업은 그렇게 듣기 싫었었는데 빠떼 교수님의 귀여운 한국어가 그립기도 하다.
그리스어가 기원이 되는 영어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의학 용어!
바로 위대한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되시겠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는 약국에서 그리스어로 약을 살 수 있어요... 히포크라테스 이전에는 병에 걸리거나 몸이 아프면 민간요법, 주술, 기도에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인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고, 인체의 각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에는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4가지 액체가 균형을 이루며 이 균형이 무너지면 병에 걸린다, 라는 '4체액설'을 주장했다. 아픈 이유를 철학이 아닌 '과학'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이며, 관찰에 의거하여 처방을 내렸다. 몇몇은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도 있지만, 그가 정립한 '그리스' 용어들이 아직까지 사옹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의사와 간호사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리스 알파벳은 페니키아 문자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어와 라틴어, 동 게르만어에 해당하는 고딕어, 영어도 모두 페니키아 문자에서 왔다는 거~~~
가끔 세네 개 헷갈려서 그렇지 문자만큼은 영어랑 많이 다를 것이 없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리스어는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의 삶에 녹아있다. 그러니 그리스어 배운다고 하면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