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데이란? Ονομαστική Γιορτή
사무실은 여전히 삭막하지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괜히 발렌타인 타령을 해 대서 괜히 우울해졌다. 발렌타인데이는 연인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초콜릿을 주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하고, 1936년 일본의 제과업체 광고를 통해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관습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필헬레닉인 나는 발렌타인데이를 커플의 기념일이 아니라 네임데이로 기억하고 싶다.
고대 로마시대의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는 원정을 떠나는 군인들의 사기저하를 우려해 결혼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를 불쌍히 여긴 발렌타인 신부가 몰래 혼인성사를 해주고, 결국 2월 14일 순교하게 된다. 이를 기념하는 날이 발렌타인의 축일이 되었다.
네임데이는 자신의 이름에 해당하는 성인의 축일을 영적으로 기념하는 날로, 그리스 사람들은 생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이 되기 전후로 세례식을 하는데, 하나님의 축복과 동시에 이름을 받는 의식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통과의례이다. 세례식이 되기 전에는 아기 이름을 따로 정해놓고 부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세례식을 통해 받는 이름이기에 네임데이가 중요한 날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출생신고를 할 때 이름이 고대 이름이 아니거나 종교적인 의미가 없는 이름은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도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나 항렬에 맞추어 이름을 짓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리고 신화에 나오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내가 신화의 나라에 와있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설레기도 한다. 내 그리스 이름인 일렉트라는 네임데이가 없어서 모든 성인의 축일인 11월 1일에 축하를 한다고. 괜히 생일도 안 챙기는데 상징적인 날이 하루 더 생긴 것 같다.
아무튼 오늘은 성 발렌타인의 네임데이! 그리스에서는 Βαλεντίνος(Valentinos), Βαλεντίνη(Valentini)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네임데이이다. 그리고 네임데이가 그리스에 더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 사람들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이름을 따 아기의 이름을 짓기 때문에, 비슷한 이름이 많고 이름의 전통이 몇 세대를 거쳐 전승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고대 철학자들의 이름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이황, 이이 급의 이름을 사용하는 셈인가...? 그리고 아무래도 이름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동명이인이 너무 많다.
남자는 요르고스, 콘스탄티노스, 니코스, 야니스. 여자는 마리아, 엘레니, 카테리나 등 아는 지인만 해도 이 이름들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이상이다. 며칠 전에 이로 교수님의 손녀도 이로라는 이름을 물려받았고, Μικρή Ηρώ(작은 이로)라고 부른다. 확실히 한국과 너무나도 다른 문화이다. 옛날에 나도 아이를 낳으면 엄마와 아빠 이름에서 한 자씩만 따와서 이름을 지을까 했는데 상희, 미용, 상미, 용희...다 이상해서 그만뒀다. 엄마아빠 미안해...
나중에 내가 아이가 생기면 그리스 정교회 방식의 세례를 해주고 싶은데 개종은 아무래도 어렵겠지. 축복도 해줄 겸 전통을 경험해보는 의미로 빠떼 교수님께만 살짝 부탁드려보고 싶다. 그러면 한글로도 영어로도 그리스어로도 쓰기 쉬우면서 의미있는 이름을 찾을 수가 있을까? 네임데이도 주고 싶은데, 벌써부터 고민이다. 생각해 둔 것은 많으나 누가 홀랑 써버릴 수도 있으니 내 마음 속에만 몇 개 묻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