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80년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떠난 캐나다 빅토리아 어학연수.
22살 가을, 잠시 쉬어가고 싶었다.
아니, 쉬어'가야만' 했다.
2018년, 나의 지난 22년을 돌아봤을때, 난 비교적 무탈하게 잘 자란 어엿한 20대 초반 여성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이성과 감성을 골고루 겸비한 부모님 아래,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외동딸'이라는 대단하고도 위험한 메리트 아래 하고싶은 것은 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던 시절도, 형편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름 우직했던 성격 덕에 친구들로부터 꾸준히 신임을 받으며 지냈다. 이는 은근하게 내비치고 싶은 내 자부심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인생에서도 딱히 큰 굴곡이랄 것을 만나지 못하고 지냈다. 물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전 애인들과의 이별, 친구 관계 등 다양한 문제들이 P파와 S파처럼 작은 진폭으로 잔잔하게 나를 괴롭혀오긴 했지만 내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었기에 '한번 쓰라리고 말자'는 생각으로 순간순간을 넘겨왔다.
문제의 그 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카페에 앉아 시험 공부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난 단 한번도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을까?"
분명, 행복했던 순간은 있었다. 그러나, 행복의 순간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난 후 과거에 순간에 행복을 '부여'한 것일 뿐, 행복을 있는 그대로 느꼈던 적을 떠올리려니 왜 머리가 하얘졌던걸까. 글쎄, 그동안 나름 올곧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우직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던건가.
항상 나는 있는 그대로를 즐겨도 괜찮을 순간에 가까운 미래를 걱정해왔다. 예쁜 곳에 여행을 와서 다음 주까지 내야 할 숙제를 걱정한다던가, 술을 마시면서도 다음날 아침의 숙취를 걱정한 나머지 올랐던 흥을 스스로 꺼뜨리는 등 내 현재의 행복을 미뤄가면서까지 내 모든 일상의 계획은 완벽해야 했다. 수학의 정석 한 장 안푼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내 인생을 돌아봤을때, 분명 무탈한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20여 년간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은 생각보다몇 번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백세시대에 내 남은 팔십 여 년을 더 풍요롭고 단단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20년 넘게 반복되었던 루틴을 벗어나 나만의 대단한 변곡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깐 외국에 나가서 살다올까?"
거대한 명분에 비해 무모했던 나는 삼개월짜리 세계여행을 계획했다. 유럽부터 북미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 먹고, 브이로그 찍으며 돌아다니는 한량같은 삶! 완벽했다!
그러나 내 계획의 실질적 투자자님이셨던 부모님은 내 계획의 방향을 조금 틀어주었다.
"그만큼의 시간이랑 돈을 들여서 여행을 가느니 차라리 공부를 하다 와.
여행은 공부하면서도 충분히 갈 수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답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고, 몇 개월 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하는 대학생이었기에 이왕이면 제대로 영어공부까지 하고 와서 나쁠 건 없었다. 아니, 외국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은 오히려 내게는 생각해본 적 없는 조금 과한 선택지였으나 먼저 지원해주겠다고 하시다니, 나로써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로써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3개가 있었다.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어학연수.
교환학생의 경우, 비용이 적게 들고 학점을 따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우리학교와 결연을 맺고 있는 영어권의 학교들은 모두 기본 1년의 체류를 요구했다. 무엇보다 나는 타국에 가서도 학점 걱정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과감히 교환학생을 선택지에서 제외시켰다.
워킹홀리데이는 현지에서 일하면서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영어가 빨리 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워킹 비자 발급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1년이기에 (1년을 꼭 다 채우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4개월 정도를 생각하던 나에게는 너무 길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나를 책임져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내가 소속되는 것을 원하셨으므로 워킹홀리데이도 조용히 패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어학연수 뿐.
3학년 1학기 종강을 하자마자, 어학연수를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시의 지원으로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도시로 3주간 어학연수를 다녀왔을때, 홈스테이 가족들의 친절함이 뇌리에 깊게 박혀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도 주저없이 캐나다를 선택했다. 다만,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으니, 대도시보다는 이왕이면 한국인들에게 덜 알려진, 고즈넉한 곳에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장기하와 카더가든의 캐나다 '빅토리아' 편을 보고 직감적으로 이곳이 내가 가야할 곳임을 알아차렸다.
'빅토리아'는 캐나다 서부 밴쿠버 섬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내가 세계테마기행에서 처음 만난 빅토리아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었다. 은퇴한 노년층의 도시답게 모든게 느긋했고, 도로에는 마차가 지나다녔으며,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대자연이 펼쳐져 잔잔한 호수에서 카약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 있으면 순간의 기쁨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내 느긋함에 구구절절한 이유를 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조심해서 다녀와. 내년에 보자!"
그렇게 나는 지난 내 20여년간의 관성을 거스르는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