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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캉가루 Sep 20. 2020

여기서 육개월을 살아야 한다고?

홈스테이 가족들과의 첫 만남과 충격적이었던 홈스테이 규칙



6년 만에 다시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볼 수 있는 밴쿠버 공항의 시그니처인 거대한 두 개의 토템부터 입국심사장의 풍경까지 어쩜 6년 전과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때는 친구와 함께 토론토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16살 나였다면 지금은 혼자 빅토리아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거대한 22살 한마리가 게이트 앞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타임루프라도 한 것처럼 나만 빼고 무섭도록 다 그대로였다.


밴쿠버 공항 토템s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밴쿠버에서 빅토리아가 있는 밴쿠버 아일랜드까지 비행시간은 30분. 태어나서 타본 비행기 중 가장 작은 비행기였다. 날씨도 꿀꿀해서 그 작고 귀여운 비행기는 무지막지하게 흔들렸다. 비행기 안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혹시 사고나면 필사적으로 소리질러야겠다고 마음먹는 사이 빅토리아 공항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구들이 타고왔던 비행기들도 하나 같이 심하게 흔들렸다고 한다.



밴쿠버에서 밴쿠버 아일랜드 가는 길



빅토리아 공항에서 수하물을 찾고 주차장 쪽으로 나가려는데 60대 쯤 되어보이는 백발의 여성분이 내 이름을 커다랗게 적은 A4용지를 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날 홈스테이 집까지 데려다주실 기사분이셨다. 역시나 복지국가답구나. 백발이 되어서도 웃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하고 멋진 건지 이 분은 알까?


공항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렸을까? 한적한 주택가의 끝에 내가 머물 집이 보였다. 기사님은 먼저 문을 두드려 홈스테이 호스트와 인사를 하고, 우리가 잘 찾아온게 맞다면서 "Good luck" 한마디만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내가 살 곳은 아담한 2층 집의 2층 방이었다. 1층에는 한국인 언니 N과 파나마에서 온 친구 브렌다가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집은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아늑했다. 들어오자마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사슴 머리가 박제되어있었다. 홈스테이 호스트는 중년의 여성 필리핀계 이민자 J 였는데 노인 방문 요양 관련 사업을 하면서 부업으로 홈스테이를 운영하시는 분이었다. J는 나의 캐리어를, 난 이민가방을 낑낑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혼자서 사용했던 내 방


짐 정리를 하고, J 가 1층 거실로 나를 불렀다. 이 집에서의 룰을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내용은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한량같이 지냈던 나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1. 헤어 드라이어 사용 금지
2. 샤워는 15분 이상 하지 않기
3. 밤 늦게 샤워 금지
4. 밤에 화장실 사용 시에는 전등 대신 전기 램프 사용
5. 일주일에 한 번씩 침대 시트 세탁
6. 매일 저녁은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저녁 먹기, but 약속이 있을 시에는 하루 전에 말해주기


그래. 다른 건 다 이해가 가는데 헤어 드라이어를 쓰지 말라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이유인 즉슨 너희 3명이 모두 헤어 드라이어를 쓰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는 것. 헤어 드라이어 사용 비용을 지불하겠다고도 했으나 J는 헤어 드라이어의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J도 실제로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더 시끄러운 것 같은데.. 뭐 어쩌겠나. 우리 집이 아닌 이상 룰이 있으면 지켜야 하는 법. 떠나오기 전에 단발로 싹둑 자르고 온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나, 여기서 6개월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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