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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캉가루 Sep 07. 2024

[프롤로그] 저 경기도 살아요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인도 행복할 수 있어요.


"어디 사세요?"
"저 경기도 살아요. OO라고, O호선에 있어요."



서울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뒤로, 어디 사냐는 물음에 지하철 역이름이 아닌 "저 경기도 살아요"라고 답하는 게 익숙해졌다. 서울 사람 10명 중 8명은 어차피 역이름을 말해도 거기가 어딘지 못 알아들을뿐더러, 내가 경기도에 산다는 걸 먼저 말함으로써 "앞으로 말할 내가 사는 곳을 네가 몰라도 민망해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암시하기 위함도 있다. 


이렇게 배려심을 가득 담아 말해도 경기도인은 은근한 동정을 받을 때가 있다. 바로 '통근시간'에 대하여 대화를 할 때다. 


"OO 사세요? 완전 멀지 않아요?"

"OO이면 오는 데 엄청 오래 걸리시겠다!"


통근시간을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회사에서 집까지 왕복 3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거의 아이언맨이 되어있기도 하다. 일로 대단한 성과를 낸 것도 아니고, 단순히 집이 멀다는 이유로 "대단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있자면 괜스레 민망해지곤 한다. 회사에 출근만 했을 뿐인데 대단하다니.. 어쩌면 정말 가성비 좋은 삶일 수도?


사실 나는 서울로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통근시간이 길어서 힘들거나 오래 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 = 1시간(혹은 그 이상) 걸리는 곳'이라는 공식을 일찍이 주입되었기에 어딜 가나 1시간이 걸리겠거니 생각하며 집을 나서는 편이다. 심지어 대학교 시절 잠깐 어학연수로 다녀왔던 캐나다에서도 내가 학원에서 가장 통학시간이 긴 학생이었을 정도니 이번 생은 대중교통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운명인가 보다 했다. 


물론 출퇴근길 지옥철에 몸을 맡기고 있자면 지겹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이사를 가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는 경기도에 사는 내 삶이 너무 좋다.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불행한 경기도인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에서 시간을 버리는 경기도인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꼭 서울로 이사 가는 게 행복한 삶에 대한 유일한 답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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