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부동산에 빠진 이유 8탄
시간이 흘러 새로운 주말이 다가왔습니다. 전세집을 보러 다니다가 마땅치않아서 집을 사도 될까 찾아보고 집값과 경기와의 상관관계를 깨닫고 집을 사기로 결심해서 대출금액까지 결정한 일련의 과정들이 놀랍게도 일주일이 안되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주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때는 벌써 7월이었고 10월에 복직하기 위해서는 이제 집을 알아보고 이사날짜를 정해야 했습니다.
이번주 아니면 다음주안에
무조건 집을 구해야 한다
사실 선택지는 두개였습니다.
4~5억대의 구축아파트(15~20년차)를 살 것인가
6~7억대의 재건축아파트(35년차)를 살 것인가
현재 주거만족도를 챙길 것인가
투자가치를 선택할 것인가
리스크테이킹을 적게 할 것인가
많게 할 것인가
마침 그 때가 친정 부모님이 사시던 강동구 재건축 아파트가 꽤 많이 진행이 되어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공람공고 기간이었습니다. 곧있으면 사업시행인가가 날 것이고 그러면 단기간에 집값이 몇천은 오를 것 같았습니다. 관련업계에 종사했기 때문에 사업시행인가가 주는 시그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 2000년도쯤부터 나왔던 재건축이 이제 진짜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저는 이 재건축아파트를 사고 싶었습니다. 재산가치가 많이 늘어날게 뻔히 보였기도 했지만, 부모님께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한 상황이었기에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게 아무래도 더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태어나서 나고자란 아파트였기에 더 애착이 가기도 했어요. 전 결혼전까지 다른 동네에서 1초도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이 아파트 단지에서만 살았고, 그것도 89년도 단지 내에서 한번 이사한 이후로 계속 같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전 (스스로는 잘 모르겠고 남편 말로는) 이 동네에 엄청나게 애착을 갖고있다고 합니다. 부정할 수도 없는게 처음 온라인 닉네임을 정할때 이 동네 이름을 따 “ㄷㅊ동키즈”라고 짓고 싶었는데 유사한 이름의 다른동네 키즈이셨던 분이 “대ㅊ동키즈” 라는 이름으로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고 계셔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요.ㅎㅎ 어떤 이유에서였든 저는 그냥 제가 원래 살던 아파트에 가서 살고 싶었어요. 연어의 회귀본능 같은 것 아닐까요.
그렇지만 제 맘대로 재건축아파트를 살 수는 없었습니다. 남편 의견도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이미 지난주 전세집을 보러 다니면서 이 재건축아파트도 몇개 봤는데, 한결같이 관리된 상태가 별로였습니다. 곧 허물고 다시 지을 예정인 집에 크게 돈 들여가며 관리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주거쾌적성이 떨어져 감에 따라 집주인이 실거주하는 경우는 줄고 있었고, 임차인이 매번 바뀌는 과정에서 건물은 감가상각이 점점 더 심하게 일어났던 것 같아요.
집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환경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아이는 점점 커갈텐데 놀이터 하나 제대로 안 되어있는 동네에서 살 수 있을까. 10kg짜리 유모차를 계단을 10개나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집에서 과연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녹물은 당연하고 여름철 한달동안에는 온수도 안나오는 집인데 아이 목욕은 어떻게 시키지.
남편은 재산가치도 좋지만 이렇게 오래되고 불편한 집에서는 살기 싫다고 했습니다. 신혼 초 빌라를 구할 때도 이중주차 하지 않는 주차장이 꼭 필요하다고 했던 사람이었는데, 여기는 이중, 삼중주차도 불사해야 하는 곳이었으니 말 다했죠. 웃풍도 심한데 심지어 보일러도 없고 중앙난방마저 시원찮아서 겨울철마다 발가락 동상 걸릴 위기에 처하며 새벽에 시험 공부했다던 이야기는 그냥 남편에게 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이 모든 불편함을 상쇄할 수 있는 "이 동네에서의 추억과 안정감"이 있었지만 타지사람이었던 남편에게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집의시간들"같은 영화도 나오고 그 이전에 "안녕 ㄷㅊ주공아파트", "ㄱㅊ주공아파트 101동 102호" 프로젝트 등을 통해 아파트단지 사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그렇게 삭막하지만은 않고 나름대로 정겨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나누고 공감하기도 하는 상황이지만, 그땐 그런것도 없었어요. 한마디로, 아파트 사는 애가 무슨 고향에 대한 애착이 있냐? 이런 분위기였죠. 사실 지금도 재건축아파트에 들어가서 산다고 하면 대다수가 "몸테크"하러 들어가나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도 왠지 난 이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 싶은데.
내가 놀던 기린놀이터에서 내 아이도 놀게 해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