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부동산에 빠진 이유 9탄
(이 글의 배경은 2015년입니다. 이전편을 읽지 않고 클릭하신 분들을 위한 TMI :D )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긴 했지만 워낙에 남편이 이 재건축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질 않았어요. 이때만해도 투자용집은 전세끼고 사두고, 나는 다른 집에 전세로 사는 일명 '1가구 1주택 갭투자' 같은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야 일주일 내내 말도 못하고 밥먹고 자고 응가하고 밥먹고 자고 응가하는 아이와 보내며 스마트폰 속 부동산카페에 빠져 머릿속이 온통 집 생각뿐이었는데 반해(이때 정말 부동산 인플루언서 안 부럽게 머릿속에 부동산 생각뿐이었네요) 남편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아직 대출규모나 가용금액을 정확하게 정한건 아니었지만 주중에 9 to 6로 출근하는 남편 스케줄상 일주일 중 유일하게 집을 볼 수 있는 날인 토요일이 돌아와서 집을 보러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최대 8억짜리 집을 사겠다는 목표가 제 머릿속엔 있었지만 남편을 완벽하게 설득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또 저 스스로도 처음부터 그렇게 큰 빚을 지기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구요.
토요일 오전 아직 세상이 늦잠에서 다 깨어나지 않아 버스도 조금 느리게 가는 것만 같은 그런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부동산 사장님은 약간 차가워보이는 아저씨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말 수가 많지 않았고 집을 보여줄 때도 포장해서 이야기 하는 법도 없었습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첫 집을 보러 출동하였습니다.
[첫 번째 집]
- 26평, 3.8억
- 남향, 복도식, 6층/20층, 발코니비확장
- 98년식
- 세대수 460세대 2개동짜리 소규모 단지이나 바로 옆에 2단지(3개동)가 있어 단지를 이루고 있음.
- 용적률 380% (재건축은 거의 불가하다는 이야기)
- 이 집을 보기로 한 이유
1) 일단 값이 쌌고 (최대 8억까지 구한다고 마음먹었지만 역시 생애최초 얻는 빚은 부담이었음)
2) 지하주차장이 있어 주차난이 없었고 단지 내에 (모래밭이 아닌)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3) 그리고 육아 도움주실 부모님 댁에서 가장 가까운 (싼) 아파트 단지였어요.
그당시 살고 있던 빌라가 2층이었는데 옆집이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어서 해가 잘 들진 않았었습니다. 더군다나 빨간벽돌 집이라 우리집 창문을 닫아놔도 왠지 창밖으로 빨간기운이 아른아른 느껴지는 그런... 그래도 뭐 크게 불편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갑자기 6층이나 되는 남향집을 본다고 생각하니 아 이집은 얼마나 해가 잘 들고 개방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올해 태어난 아기와 함께 세가족이 살고 있다길래 딱 우리집과 비슷한 상황이니 더 마음이 설레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그 집에 딱 들어갔는데!
0.1초만에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집은 너무 좁았고 해가 안들었어요.
아직 아이가 50일밖에 안되었던 저희 집은 그냥 부부가 사는 집에 아기침대와 옷장만 들였을 뿐이라 아이 키우는 집에 그렇게 살림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6개월 된 아이가 사는집은 좁은 거실에 놀이매트가 꽉 차있었고 놀이기구(그땐 이름을 잘 몰랐지만 나중에 그것이 쏘서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보행기의 1.5배 정도 부피를 왕창 차지하는 아이 놀이기구에요) 때문에 거실에 서있을 자리도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유독 다른 살림살이들도 많기도 했어요.
짐이 많아서 좁은건 그렇다치고 해가 안드는건 왜일까. 이 집 바로 70m 앞에 22층짜리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한 층 층고가 약 3.3m 정도 되니까 이 건물의 높이는 약 73m.... 한마디로 그냥 남향이기만 한 집이었어요. 남향이라서 해가 잘든다 이런건 없고 그냥 베란다 방향이 남쪽인 집. 뭐 엄청 컴컴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대한게 너무 밝고 뚫린 집이었어서 그런지, 밖으로 보이는건 22층짜리 콘크리트 성냥갑이요 실내는 낮인데도 형광등을 켜야 하는 그런 집에 바로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빠르게 집을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첫 번째 집에서 얻은 교훈]
- 20평대는 안되겠다.
- 앞동과의 거리를 고려해서 집을 골라야겠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이 그렇게 엄청 나쁜건 아니었는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간 탓에 실망이 컸던 것 같습니다. 3인가족 20평대도 충분히 쾌적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지금도 그렇구요) 그 집이 유독 짐이 많기도 했고, 복도식이라 복도쪽 방이 정말 좁았고, 발코니도 비확장이었어서 거실도 더 좁아보였기도 했구요. 그리고 채광에 대해서도, 사실 결혼전까지 살았던 집이 탑층에 남향이었어서 기대감이 일반인보다 높았습니다. 결국 큰 기대가 실망의 가장 큰 이유였죠.
첫 집에 너무 실망을 크게 해서 걸음이 한참 느려졌지만 두 번째 집도 약속을 해놨기에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끌려) 갔습니다. 솔직히 더이상 뭘 더 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약속 했으니 보기나 한다 느낌?
[두 번째 집]
- 26평, 5.1억
- 남향, 복도식, 10층/22층, 발코니비확장
- 2002년식
- 세대수 357세대 3개동짜리 소규모 단지이나 바로 옆에 나홀로아파트와 단지처럼 이루고 있음(총 4개동 느낌)
- 용적률 340% (여기도 재건축은 거의 불가)
- 이 집을 보기로 한 이유
1) 어제 약속해놔서
2) 어제 약속해놔서
3) 어제 약속해놔서
이 집도 들어가자마자 놀랐습니다. 집이 너무 넓었거든요. 읭? 같은 26평인데 왜?
70대 할머니 혼자 살고 계셨습니다. 거실에는 소파 하나가 덩그러니, 안방에는 침대 매트리스만 하나 덩그러니, 작은방은 그냥 방만 덩그러니. 그래도 베란다는 북적였습니다. 화분들이 좀 있었거든요. 집안에서 메아리가 은은하게 울렸습니다.
아 역시 집은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거구나! 전 이 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넓게 느껴졌고 전반적으로 깨끗했어요. 채광이 엄청 좋은 건 아니었지만 첫 번째 집보다는 훨씬 나았어요. 다만 흠이라면 바로 앞에 나홀로 아파트가 너무 압도적으로 보인다는 점. (조망이 똥망)
근데 남편은 별로 마음에 안든다고 했습니다. 비싸대요. 그당시 가진돈이 약 2.6억 정도였으니 2.5억을 빚을 얻어야 하는 집이었습니다. 취등록세와 중개수수료, 이사비 등을 생각하면 2.6억 정도 대출을 받으려고 했겠죠. LTV가 딱 50%인 집이니 집의 절반만 내거인 그런 집이 되었겠네요.
솔직히 제 계산에도 이 집은 가격대비 성능이 좋은 집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사고 싶어했던 재건축 아파트 23평이 6.3억 정도였거든요. 31평은 7.3억 정도? 사실 전 어차피 빚을 많이 얻을거라면 무조건 투자가치 있고 내가 살던 고향이기도 한 그 재건축아파트 23평을 사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측면에서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죠.
어쨌거나 저는 다시 기운을 차렸습니다. 근데 오늘 보기로 약속한 집이 이 두개 뿐이라 더이상 볼 집이 없었어요.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들이 벌써 몇백세대인데 내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려면 이 집들을 다 봐야 하는 것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났으니 이대로 남편을 꼬셔서 옆 재건축아파트 단지로 가서 23평 6억 초반대 집을 보자고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단지가 워낙 커서 매물은 많았거든요. 방금 5.1억 비싸다고 한 남편 얘긴 가성비가 안좋다는 말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말 수가 없으셨던 부동산 사장님이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미리 얘기했던 집은 아닌데, 요 앞에 나홀로 아파트(방금 전 3개동 짜리와 단지처럼 있었던)에 33평이 4.7억에 나와있는데 한번 보기라도 하는게 어떻냐 하셨습니다. 방금 봤던 두 번째 집보다 가성비 훨씬 좋고 괜찮은 집이라고 합니다.
전 단박에 NO 라고 했습니다. 지론이 있었어요. 나홀로 아파트는 절대 안 산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추천하는 물건은 부동산에 유리한 물건이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집은 아예 볼 생각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두 번째 집에서 부동산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 나홀로 아파트를 지나가야 했고, 또 마침 집주인이 집에 있어서 바로 볼 수 있다고 해서 그냥 뭐 한번 보기나 하지 하고 사장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