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집을 계약하고 나는 앓아 누웠다

87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부동산에 빠진 이유 11탄

by 경작인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마치고 아이를 맡겨뒀던 친정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계약 자체는 '우여곡절' 같은건 없었습니다. 굉장히 순조로웠어요.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집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게되서 그랬다기 보다는 그냥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남편을 뺀 부동산계약 당사자, 즉 매도인과 양측 부동산중개인은 모두 40~50대였고, 이미 부동산 계약이 많이 해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집을 사고 파는 행위 쯤은 뭐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냥 살면서 약간 신경쓰면 되는 일일 뿐이야 라고 눈을 내리깔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냥 그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계약서를 읽어보고 싸인했을 뿐이에요. 누가 사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뭔가 잘못한 어린아이처럼 그냥 잠자코 앉아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계약을 마친 부동산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던 친정집까지 이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저는 문간방 서늘한 바닥위에 풀썩 쓰러져 누웠습니다.


"엄마 나 집 계약하고 왔어"


"어딘데? 괜찮은 집이야?"


"괜찮은지는 모르겠고 OOO 아파트 있잖아. XX초등학교 옆에 나홀로 아파트. 그거 샀어. 4억 7천."


거실에 누워 뒹굴거리던 친정오빠가 놀라서 소리를 지릅니다.


"4억 7천? 집을 샀다고?? 넌 어떻게 애가 갑자기 그렇게 막 집을 사고 오고 그러냐???"


그 당시 미혼이었던 우리 오빠한테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 출산해, 심지어 어느날 갑자기 애 맡기고 나갔다 오더니 집까지 사오는 동생이 정말 이상한 애로 보였을 거에요. 어떻게 한 배에서 태어났는데 이렇게 다르지.


"아몰라. 그냥 그렇게 됐어. 이미 샀으니까 무를 수도 없어. 그냥 잘 했다고 해줘"


라고 문간방에 누워서는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올리고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 그냥 통보? 고백? 뭐 그런 것이었죠.


남편은 별 말이 없었습니다. 5살이나 많은 남편은 항상 어른스러운 편이었고 그 점이 마음에 들어 결혼까지 했는데 생애 첫 집을 사는 문제는 그에게도 쫄리는 일이었나봅니다. 계약 중에 잠깐 나가서 통화를 하고 오더라구요. 아마도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는 거였겠죠. 길길이 날뛰며 아니 도대체 얘들이 갑자기 무슨 집을 산다고 그러냐 하며 쫓아오실 분들은 아니었기에 남편 역시도 그냥 자신의 결정을 '통보'하는 것이었겠지만 아마도 잘 선택했다, 계약 꼼꼼하게 잘 해라 하는 부모님의 지지와 당부를 받고 싶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 하는 내 결정이 틀린 게 아닐거야. 혹여라도 꼭지에 사서 평생 하우스푸어로 살게 되더라도 나는 지금 당장 이 순간은 살 집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한 걸거야.


분명히 살 집이 필요한 것도 팩트였고, 전세와 매매냐 갈림길에서 집을 내 구미에 맞게 가꾸고 주거안정성을 택하기 위해 매매를 선택한 것도 나름 타당한 결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당분간 집값은 절대 떨어질 일이 없다, 곧 손해볼 일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왜이렇게 나는 꼭지에 집을 산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드는걸까요. 역시 머리와 가슴은 따로 노는 게 맞나 봅니다.


야심차게 5억 대출 받아서 7~8억 하는 집을 사겠다고 목표를 세워놓고, 꼴랑(?) 그에 60% 정도 수준에 해당하는 4억 7천짜리 집을 계약해놓고서도 이렇게 쫄렸습니다. 도대체 7~8억 짜리 집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강심장인걸까. 아니, 그 사람들은 돈이 많겠지. 1천, 1억 정도 떨어져봤자 아쉬운게 없는 그런 사람들이겠지. 하아... 결국 돈 없는 내가 문제구나....






잔금까지는 3개월 반이라는 조금 긴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남은 시간동안 이사 준비를 해야했고, 생애 첫 집을 어떻게 꾸며야할지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식구가 하나 늘었으니 아이를 위한 방도 꾸며줘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서재처럼 써오던 거실을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고 서재를 따로 만들어야 하나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할 시기였습니다.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에 막 엄청 행복하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면 역시, 아무도 안 살 나홀로아파트를 비싼 값을 주고 산 것 같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계약을 하고난 후 매일매일,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부동산 사이트에 들러 새로운 거래가 있지는 않은지, 새로운 매물이 등록되지 않았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분명 내가 꼭지에 산건 아닐거야, 분명 여기서 1원이라도 더 오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동산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내가, 1년에 아파트를 수백, 수천채씩 짓는 회사에 다니는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집을 바가지 쓰고 사진 않았을거야 라는 확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니 날짜도 정확히 기억이 나요. 8월 15일 광복절이었습니다. 그 날 남편은 회사일이 있어 일찍 출근을 했고 이제 막 100일이 지난 아이와 평화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 8시쯤이었어요. 어디선가 갑자기 유리창이 쨍그랑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처음엔 누가 광복절 아침부터 부부싸움하느라고 접시를 던지나? 라고 생각했지만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그것보다 더 고의적이었고 적극적이었습니다. 꼭 유리를 깨는 것 자체가 목적인 그런 소리였어요. 사건의 진원지를 찾아 집안 곳곳의 창문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우리집 안방 창문, 제 눈높이 바로 앞으로 사람의 신발이 지나갔습니다.


응? 우리집은 2층인데? 반지하가 아닌데?


그냥 사람의 신발이 아니었습니다. 안전화였어요. 건설현장에 있어봤기에 '딱 보자마자 아 저건 안전화다' 라고 하는 그 신발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요. 아니 도대체 광복절 아침 8시부터 건설현장 안전화 신은 아저씨가 내 눈앞에 날아다니면서 옆집 유리를 깨는 거지?


제가 살던 집의 옆집은 2층짜리 빨간 벽돌의 단독주택이었습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종종 창문을 넘어오는 목소리로 추정하건데 나이 든 어르신들이 사는 것 같았는데 드디어 그 집을 철거하고 다른 집을 지으려는 것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몰랐었는데 그 집과 우리집 사이에 야트막한 담장이 있었고 철거 반장님이 그 담 위를 걸어다니며 그 집에 있는 창문을 몽땅 다 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만약에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세상의 갖은 풍파를 겪은 아줌마 파워를 장착해서


"아저씨 지금 휴일 아침 8시부터 유리창 팡팡 깨고 장난해요? 여기 주거지라고요. 철거한다고 안내문 하나 없이 유리창부터 깨기 시작하면 다입니까? 우리집에 100일된 신생아도 있는데 깨서 울고불고 난리잖아요! 당장 안멈춰요?"


라고 앙칼지게 소리쳤겠지만 그때의 저는 집 하나 계약하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20대 햇병아리 사회초년생이었어요. 그리고 일생일대의 대사건인 '출산'을 이제 막 하고 몸을 추스리고 있던 산모였어서 그럴 정신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괜히 아저씨한테 뭐라고 했다가 저대로 우리집 유리창까지 깨고 우리집으로 뛰어들어와서 나와 우리 아이를 해치면 어떡하지 싶었습니다. (걱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생전 그런 일을 처음 겪은 사람은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단 너무 무서워서 옆집으로 난 창을 닫고 아이를 최대한 그 집으로부터 먼 방으로 대피시킨 후 핸드폰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전화해야 당장의 이 휴일 아침 철거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구청에 전화해야할까? 휴일인데 구청이 열까? 더군다나 아침 8시인데? 구청에 전화를 한다 쳐도 건축과에 전화해야 하나 주택과에 전화해야 하나.


그때 마침 건설현장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민원은 무조건 두 개만 기억하면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첫번째 국민신문고, 두번째 다산콜센터.


다산콜센터 120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시간에 다산콜센터에 전화하는 사람이 없는지 연결이 바로 됐어요. 내 옆집에 어떤 아저씨들이 와서 광복절 아침 8시부터 와서 철거를 하고 있는데 유리창을 가차없이 깨대는 바람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잠을 깰 지경인데다가, 담벼락 위를 성큼성큼 걸어다니는데 내 눈앞에서 신발이 왔다갔다 거리는게 아주 위협적이고 무섭다고 했습니다. 광복절 아침 8시인데 인간적으로 이 시간에 철거를 해도 되는거냐, 아무런 사전 안내도 없이 이렇게 유리창부터 촹촹 깨기 시작해도 되는거냐 물었어요. 다산콜센터 직원은 자기는 그냥 콜센터 직원이라 잘 모르니 해당 담당자가 확인해서 전화를 준다고 했습니다.


전화가 다시 걸려올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때까지도 옆집의 유리창 깨기는 계속됐습니다. 그 집에 유리창이 그렇게 많은지 그 날 처음 알았어요. 이윽고 전화가 걸려왔고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그 담당자가 하는 말이


선생님. 휴일 아침 8시라고 해서 철거를 해선 안된다는 법은 없어요.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갑자기 너무 우울했습니다. 휴일 아침 8시에 눈앞에서 창그랑창그랑 유리창 깨는 신발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이게 법에 저촉되은 일은 아니니 가만히 있으라니. 사실 법이 그렇다고 해도 현실은 떼법이 우선이기에 나가서 진상을 부리면 좀 조용해질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니. 이렇게 물러가지고 내가 아이를 책임지고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아파트로 이사가면 이럴 일 없을거야. 이제 곧 아파트로 이사가잖아.


새 집을 계약한 후 가장 크게 안도하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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