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격이라면 집을 살 거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87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부동산에 빠진 이유 12탄

by 경작인



하염없이 하락하던 서울 부동산의 반등기를 2014년이라고 본다면 서울 부동산은 2021년 현재 7년째 상승 중입니다. 이제 좀 내릴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다들 하는지 작년부터 제 귀에 자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2015년 가격으로 돌아간다면 바로 집 살텐데"



2015년에 첫 집을 산 저로서는 저 말이 유독 귀에 잘 꽂혀요. 왜냐면 제가 2015년 7월에 집 계약을 하고 그 해가 끝날 때까지 불안해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매수계약을 한뒤 잔금까지 남았던 3개월 반, 어영부영 하다보니 시간이 흘러 이사갈 날이 되었습니다.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마련했던 신혼집이었는데. 나에게 '이 사회에서 한 가구로서 독립해 나간다는게 이런거구나' 라는 걸 깨닫게 해준 '엘리베이터도 없지만 월세까지 내는 빌라'. 독립해서 살았던 첫 집이었어서 정이 많이 들었는지 떠나려니 마음이 싱숭생숭 했습니다. 꼭대기 층에 사시던 집주인 어르신은 자기 집에서 아이도 낳고 집도 사서 나간다고 뿌듯해 하셨습니다. 부동산에서는 '아들 낳는 집' 또는 '집 사서 가는 집' 이라는 사실이 엄청나게 큰 자랑거리인듯 집을 구하기 위해 우리집을 보러온 온 예비 임차인에게 꼭 저 두 사실을 알리곤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시큰둥했지만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집이 기운이 좋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역시 어른들의 세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집에서 태어나 등록기준지가 '서울시 서초구'가 된 우리 아이는 이 집을 기억하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또 굉장히 서운해졌습니다. 내 명의로 된 집도 아닌데 어지간히 정이 들었었던 것 같아요. 3년 전 보증금 잔금치르고 입주까지 2개월 정도 남아서 주말마다 틈틈히 와서 청소도 하고 캐드로 도면까지 그려가며 가구 배치도 했었는데. 심지어 살면서도 가구 배치를 자주 바꾸곤 했었어요. 주변에 낡은 빌라나 단독주택들이 많긴 했지만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아니니 꽤 오랫동안 이 집은 남아있겠구나 싶어서 그리울 때마다 보러와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첫 신혼집을 떠났습니다.



새로 이사간 집은 전주인이 올수리를 했다고는 하는데 주인댁 취향이 좀 독특하셔서 목문마다 그리스신전의 문주모양이 덧대어져있고 거실에는 샹들리에가 설치된, 굉장히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리한 시점이 한 10년 전 정도 되었는지 세월에 때탄 흔적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 와중에 또 부분적으로 수리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부분수리인만큼 보관이사까지 할 건 아니다싶어서 방마다 한가운데에 모든 짐을 몰아넣고 이삿짐 센터는 철수를 했어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인테리어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아는 대학 선배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선배의 도움을 받아 철거, 도배, 목공, 화장실, 타일공사만 공종별로 직접 작업자를 불러다가 공사를 했어요. 목문과 창틀의 페인트는 인테리어 공사하는 와중에 옆에서 저와 남편이 직접 칠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인테리어 공사비가 600만원정도 나왔습니다. 33평 인테리어 공사하는데 600만원이라니!



제가 이제 막 200일이 지난 어린아이를 친정집에 맡겨두면서 이렇게 인테리어 공사를 손이 많이 가는 방식으로 한 이유는 다른 건 없었습니다. 그냥 돈을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인테리어공사에 쓸 돈 1천만원, 2천만원이 없을 정도로 돈이 너무 없었느냐?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또 한편으론 꼭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4억 7천짜리 집 사는데 2억을 대출받냐 2억1천만원을 대출받냐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저 저는 이 집에 큰 돈을 들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전 이 아파트가 생겨난 이후로 가장 비싸게 이 집을 산 사람이었으니까요. 전 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저는 일년에도 이런 아파트를 수백채, 수천채씩 지어내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내가 최고가에 집을 사다니!



첫 집을 계약 한 후로 누군가는 나보다 더 비싼 가격에 이 집을 사겠지 하는 마음으로 거의 매일같이 부동산앱을 들여다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이사를 오던 날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물린건가... 하는 생각만 더 확고해질 뿐이었지요.



그렇지만 뭐, 이미 계약해버린 집 어떡하겠어요. 일단 살아아죠. 더군다나 이제 복직이 한달앞으로 다가와있었습니다. 이제 또 이런 아파트를 일년에도 수백, 수천채씩 지어내는 회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어요. 그 곳으로 돌아가 저는 또다시 예전처럼 새로운 아파트를 짓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고 사업성을 검토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결국 이 땅 어딘가에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계약을 따내는 그런 일을 해야 했습니다. 비록 난 슈퍼 용적률이라 재건축도 못하는 나홀로 아파트를 최고가로 사서 물렸지만.....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이 집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하는 처지였어요. 사실 뭐 인생이 다 그런거 아니겠냐? 라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회초년생 시절이던 제게는 뭐랄까....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일로 느껴졌습니다.



어찌어찌 결국 고생스러웠던 인테리어 공사도 끝나고 진짜로 새 집에 입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즈음 해서 등기가 완료되어 등기권리증도 집으로 날아왔어요. 비록 꼭지에 물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애증의 집이 된 것 같았지만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첫 등기권리증을 받아들었을 땐 감회가 남달랐어요. 그리고 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단풍 품은 동네 산자락의 모습은 부동산 거품이고 꼭지고 투자가치고 뭐 그런것들을 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 이런게 사는거지 투자는 무슨 투자야. 라고 생각하면서 손가락으로는 네이버부동산앱을 켜고 있는 나의 모습. 하루에도 열두번씩 아니 백열두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거렸어요.



내 시끄러운 마음과는 달리 참 조용했던 동네 (저 산부터가 그린벨트)




시간은 흘러 대망의 복직날이 되었습니다. 회사에 도착해 약 반년동안 못뵈었던 직원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내 자리에 앉았습니다. 내가 그 말로만 듣던 워킹맘이 되다니.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마음에 안들면 “에잇 때려치지 뭐”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이가 생기면 아무리 더러운 일이 있어도 참게 된다고 하지요. 아이가 아니라면 집이나 차를 사서 대출금이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도 있고 집과 자동차 대출까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와 이제 진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무조건 버텨야 되는건가? 하는 생각에 약간 헛웃음이 났습니다.



복직 서류 때문에 인사팀에 들러 인사담당자와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근데 내가 아무리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는 인재가 되서 앞날이 창창하다고 해도 회사가 망하면 어쩌지? 그래서 바로 물어봤습니다.


"과장님. 근간에 우리 회사 망할 것 같으세요?"


"뭔 소리야. 오랜만에 나와가지고... 미쳤냐?"


"제가 이번에 집을 사면서 2억 정도 대출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만기 돌아오는 15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보다 많이 돈을 벌어야 해서요."



진짜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매사 일거수일투족이 다 집과 관련된 생각과 행동이었나 싶네요. 그만큼 첫 집을 매수하고 나서 걱정과 두려움이 컸었습니다.



그래서 전 요새 2015년 가격이면 당장 가서 집 살거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지금은 지금의 공포가 있듯이
그땐 그때 나름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낼 방법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후회와 체념으로
지금 이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