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부동산 투자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2021년씩이나 된 마당에 2015년 첫 투자처를 찾던 시절 이야기를 쓰려니 왠지 낯간지럽습니다. 이렇게 다 오를 줄 알았더라면 그냥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 옆집이나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다 돈이 생길 때마다 아랫집, 윗집, 그 옆집 이렇게 늘려갔더라면 얼마나 편했을까요. 그래서 오랫동안 글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꾸준히 87년생 밀레니얼 세대 부동산 시리즈를 좋아요 해주시고 공유해주셔서 (무려 200건이 넘게 공유가 된 걸 오늘에서야 확인했답니다. 감사 말씀드립니다!) 용기를 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땐 그냥 아무 데나 샀어도 다 올랐을 거예요.... 그렇죠...ㅎㅎ 그렇지만 패기 있게 첫 주택을 마련하고 혹시 나 물린 건가 하는 공포에 빠졌던 29살의 저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 투자를 하겠다며 서울과 수도권을 광범위하게 살폈습니다.
2015년이면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이야기하는 강남권은 이미 오른 상태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이지만 그 당시에는 '와 강남 집값 너무 많이 올랐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덜 오른 곳 중에서 앞으로 많이 좋아질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역세권, 신축, 대단지, 일자리, 학군, 개발호재, 편의시설 등을 염두에 두고 투자처를 고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투자의 정석입니다. 수요가 높으니 당연히 가격이 오를 것이고 이런 곳들이 하락기에도 많이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 많은 요소들을 다 충족시키는 곳은 당연히 비쌀 테니 위에 나열한 것들 중에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투자대상을 좁혀나갔습니다.
저의 경우는 역세권, 신축, 대단지를 필수조건으로 두고 그다음으로는 일자리에 집중했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평생직장생활을 할 팔자라고 생각을 했기에 맞벌이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입지가 앞으로 좋은 동네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요새는 주변에서 맞벌이 부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죠. 저희 팀원 5명 중 60년대생이던 팀장님을 제외한 기혼자 모두 맞벌이 부부였습니다. 남편네 회사도 마찬가지였어요. 결론적으로 일자리가 많은 “도심과 강남, 여의도” 접근성이 좋은 마포, 용산, 성동이 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콩깍지가 씌었었는지 심지어는 평생을 강동구 아파트촌에서 살았었는데도 강동구나 분당 같은 베드타운보다는 도심지가 더 뜰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다음으로 가고 싶었던 곳은 위례신도시였어요. 강남은 못 살아도 강남 바로 옆 신도시라도 한 번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그렇지만 위례신도시의 조성 초기 단계였어서 레미콘차와 크레인 공장 같은 분위기에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죠.
여보, 원래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면 장화 신고 들어가 구두 신고 나와야 한다니까?
알겠어 알겠는데, 그치만 여기 장화 너무 오래 신고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여기 지하철도 없잖아?
지하철 없어도 물리적으로 강남 바로 옆이잖아. 버스 타도되고 자차 이용해도 되고. 그냥 강남 바로 옆이라니까?
아몰라몰라 무조건 지하철 있어야 돼. 위례신사선인가 그거 몇 년 걸릴까?
그 글쎄.... 한... 15년?
제가 거짓말은 잘 못 해서요. 민자참여사업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실제로 위신선은 초창기에 삼성물산이 손들고 나섰다가 결국 두 손들고 나가서 현재는 GS와 서울시가 협의 중입니다) 보수적으로 15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그 한마디에 제가 남편에게 졌습니다. 위례는 포기하고 다시 마용성으로 갑니다.
마용성 3개 구 중 용산구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 속하는 단지가 용산신계이편한세상 하나뿐이었는데 대단지긴 하나 다른 단지들 없이 혼자 있는 것이 약간 걸려서 리스트에서 지웠습니다. 그렇게 용산구가 떨어져 나가고 마포와 성동만 남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마포구와 성동구의 괜찮아 보이는 단지들을 훑습니다.
이게 다 마래푸 때문이다 라는 유행어까지 낳게 한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부터 시작해서
친구 아버지가 조합원이었던 공덕자이
임신 막달 시절 무거운 배를 잡고 혼자서 언덕길을 올라 임장 갔던 아현푸르지오
아현푸르지오 임장 시절 언덕과 절벽에서 기절하고 청약도 포기했던 이편한세상신촌
그때만 해도 미분양이 있었던 마포자이3차
역세권 1초 거리이지만 6호선이라 마음에 걸렸던 마포자이2차
마포에서 거의 유일한 평지에 위치한 이편한세상마포리버파크와 래미안리버웰
젝스키스 이재진이 산다던 밤섬 리베뉴와 자이
일반분양 전 조합원 물건밖에 없어 초투금이 커서 포기했던 서울숲리버뷰자이
뷰끝판왕 서울숲더샵
평지에 초대형단지라 좋았던 센트라스와 텐즈힐
분양 당시에 출장지에서 짬 내서 청약했다가 광탈했던 언덕 끝판왕 왕십리kcc스위첸
언덕끝판왕 옆 왕십리자이
좋아하던 중고서점 밀고 들어서서 왠지 미웠던 신금호파크힐스
연차 쓰고 임장 갔던 e편한세상옥수파크힐스와 래미안리버젠
등등 그 당시 다 지어진 단지였던 것도 있고 짓고 있는 중인 것도 있는데 암튼 3년 이내 신축이라 할 것들은 대부분 다 가서 발품을 팔고 손품도 꾸준히 팔았어요. 완공된 단지들은 들어가서 왠지 벤치에 한 번 앉아보기도 하고 놀이터도 가보고 아직 좀 썰렁한 단지 내 상가도 훑어보고 그랬습니다. 마치 그 단지에 사는 사람처럼요. 공사 중인 곳들은 미래에 어떻게 될까 상상하며 몇동몇호 라인이 좋을까 그런 고민을 했었어요.
결정적으로 부동산에 들어가서 거래 가능한 매물을 확인하고 흥정하는 걸 해야 했는데 이 문턱을 넘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렵사리 부동산에 들어가서는 뜬구름 잡는 질문을 하며 초보티를 확 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얼마예요?
아가씨 무슨 타입 원하는데?
그 글쎄요. 한 25평 정도?
(아이고 답답아) 여기 25평 타입이 5개가 넘는데? 타워형은 피 천부터 있고 판상형은 삼천부터 있어
그럼 다 합쳐서 5억이 넘나요? 네이버부동산에는 4억대 매물도 엄청 많던데...
그건 진작에 다 나갔지 지금은 다 5억대야 (참고:인터넷에 부동산 실매물만 게시하게 된 게 1년이 안됩니다)
1층도 없어요?
요새 오르는 중이라 싼 건 매물이 없어 매물이
저 급매 나오면 연락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제 번호는 010...
아가씨. 급매 있으면 내가 사지 아가씨 연락 줄 시간이 어딨어? (전화벨소리 Rrrr) 여보세요 아 네 사장님 찾으시던 타입 물건 하나 나왔는데 조합원 물건이라 초기 투자금이 좀 커가지고~블라블라~~
딱 보기에도 어린 데다가 초보티를 팍팍 내며 이야기를 하니 제가 진짜 안 살 줄 알았나 봐요. 부동산에 가서 유령취급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하나씩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는 제법 부동산 사장님과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부동산 관련 책에서는 이런 중개사무소 사장님 어려워하지 말고 자꾸 부딪쳐야 실력이 는다고 하는데요. 맞아요 맞긴 맞는데 저는 다주택자가 된 지금도 모르는 동네 부동산 문턱을 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아무튼 이렇게 여러 단지들을 찍어서 괜찮은 매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가며 점점 매물 리스트를 좁혀 나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이 단지들 중에 마음에 맞는 물건을 찾아서 살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