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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May 15. 2021

파이어를 할까 말까

백억 자산가가 되어도 퇴사를 못할 운명


파이어족이 목표하는 자산을 이루게 되면 파이어를 할 수 있을까?



MZ세대 3명 중 2명이 파이어족이라고 한다. 파이어족은 극단적인 저축을 통해 자산을 모아 조기 은퇴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삶의 추구 방향이다. 욜로족(YOLO)이라고 펑펑 쓰며 현재만 즐길 줄 아는 애들이라는 소릴 들은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제는 또 쓸 것도 안 써가며 은퇴를 위한 자산을 모은단다. 



사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파이어족의 의미는 극도의 절약을 통한 자산 모으기라기보다는 투자를 통한 자산 모으기에 좀 더 기울어 있는 듯하다. 실제로 주식 투자로 30억을 벌어 퇴사했다는 20대의 이야기도 들리고 코인 투자로 400억을 벌어 퇴사했다는 30대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은퇴 후 삶을 위해 모으고자 하는 자산의 액수도 미국의 파이어족보다 높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파이어족은 소득의 70%를 저축해서 51세에 13.7억을 모아 은퇴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러면 남은 여생 동안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 쓸 수 있는 돈은 4%의 수익률을 가정했을 때 월 457만 원으로, 국민연금공단이 2019년 발표한 적정 노후 생활비(268만 원, 부부 기준)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 말은 조기 은퇴를 꿈꾸지만 그 과정에서 적당히 쓰는 생활을 하고 싶고, 또 조기 은퇴 후의 삶의 질 또한 절제하는 삶이라기보다는 다소 여유로운 생활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미국의 파이어족은 대체로 80% 이상 저축해서 40대 초반에 은퇴할 목표를 세운다고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파이어족들은 "그냥, 좀 여유로운 생활을 원한다."



출처 조선일보





사실 우리 집은 이미 조기 은퇴가 가능한 정도로 자산을 모았다. 단순 계산으로는 우리 자녀들까지 파이어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모았다. 



그래서 은퇴를 했냐고? 

당연히........ 안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아직까지 회사에 목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회사 다니면서 스트레스 덜 받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내 경우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조직생활에서 흔히 있는 불필요한 남의 오지랖 같은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일이 잘못되거나 조직이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는 여지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받는다. 원인이 '나'이거나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회사 안 다녀도 될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음에도 꾸역꾸역 다니고 있는 이유가 뭘까. 나도 나를 잘 모르겠지만 나름 고심해서 도출해본 원인은 아래 3가지이다. 



1. 삶의 질에 대한 눈이 높아졌다.


사회 초년생 때는 10억만 있어도 은퇴하고 적당히 먹고살 줄 알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자산을 모아가다 보니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다. 신혼생활은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에 월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울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꿈들을 이뤄내려면 직장을 다니면서 받는 월급과 쉽게 대출을 받기 위한 보장된 신분이 필요하다.



2. 벼락부자가 되어보니 언제든 벼락거지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나는 대부분의 자산을 부동산 투자로 모았다. 그런데 요새는 부동산보다 훨씬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상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 자신이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한 자산 상승으로 벼락부자가 된 케이스다 보니 벼락거지되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딱히 부자가 되기 위해서 투자를 한다기보다는 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항상 새로운 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 있게 씨드머니를 갖고 있어야 하고, 또 비슷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동료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일의 의미 그 자체에 있다.


비록 앞에서 돈 얘기만 꺼냈지만 사실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의미,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한 의미는 단순히 월급에만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재일정치학자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보면,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과 같다고 한다. 일을 함으로써 개인은 사회와 연결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다. 딱히 대의명분 충만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뭔 존재 타령 명분 타령이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근로자라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생각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무언가를 생산해냈다는 것, 생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브런치에 글 하나를 써낸 날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채워진 느낌이 드는 것도 비슷한 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정보가 되길, 위로가 되길, 어딘가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써 내려가지 않는가. 






브런치에 보면 진짜 조기 은퇴 후 잔잔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글이 올라온다. 은퇴하기에는 조금 젊은 나이인데 하루하루 초분을 다투는 생활을 하지 않고, 아침을 만들어 먹는 재미에 대하여, 화창한 날씨에 감사함을 느낄 때 등등 정말 삶의 소소한 순간의 기억을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시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의 글을 보며 어떻게 은퇴 전에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길에 접어들었냐고 여쭙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용기 내어 물어본 적이 없다.



아직 파이어를 하기엔 내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파이어족을 희망하는 많은 MZ세대 동지 여러분께 전하고 싶다.


<조기 은퇴의 목표는 자산에 있지 않아요.

은퇴 후 생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느냐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생활, 남의 기준에 맞추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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