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신, 퇴사 못할 줄 알았지
한 반년 전쯤인가? 회사의 40대 초반 과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이놈의 지긋지긋한 회사 언제까지 다니냐’
이 과장님은 와이프와 각각 현금 5억씩 모으면 퇴사하기로 했단다. 각자 돈을 굴려서 먼저 5억을 모은 사람은 퇴사해도 좋다는 게임 같은 룰이었다. 평소 이 분과 그다지 친분이 깊지는 않았던 터라 그냥 그런가 보다, 그렇지만 대체로 직장인이 현금 5억 모으는 일은 흔치 않으니 이 분도 그냥 계속 회사 다니겠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이 날의 대화는 기억 저편으로 넘겼다.
그런데 며칠 전, 기가 막힌 소식을 들었다. 이 과장님이 약 반년 전, 그러니까 나와 그 대화를 할 때 즈음 해서 2억으로 시작한 주식 투자가 대박이 나서 5억을 벌었다는 것이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나는 이 과장님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그래서 진짜로 회사를 그만둘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과장님은 퇴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그 5억은 어떻게 할 것인가?
5억으로 은퇴 후 소소하게 산다고 하더니 가지고 있던 돈에 보태 서울 요지에 집을 샀다고 한다.
그래도 내 한 몸 뉘일 집은 필요하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분은 원래 집이 있었다. 서울에 1채, 경기도에 1채 무려 2 주택자였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주식 대박을 낸 김에 갖고 있던 집도 다 팔고 주식도 팔아서 서울 요지에 고가 주택을 하나 마련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 과장님의 와이프 되시는 분께서는 이렇게 쉽게 5억을 모을 것이라고 생각 못하셨는지 지금부터 다시 5억을 모아보자며 다독였다고 하신다. 물론 본인도 이 5억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수익을 내는 방법을 알았으니 곧 새로운 5억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전 글에서 파이어족의 은퇴는 목표 재산만으로 이루기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그 이유는 재산을 모아갈수록 생활수준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10억만 모으면, 20억만 모으면 은퇴한다고 했지만 5억을 모아보니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10억을 모아보니 좋은 차도 사고 싶은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목표 재산이 눈앞에 떨어진 사람들이야 지금이 기회다! 하며 은퇴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점차 재산을 모아가는 형태를 띨 것이기에 결국 목표 재산 수준은 점점 더 높아져가고 은퇴시기도 점점 더 뒤로 미뤄질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가져야 만족할 수 있는 걸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키우는 건 그만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그냥 핑계다. 현재 내 생활에 채워지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원인으로 단정하기에 딱 좋은 것이 "내가 이만큼 가지지 못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비록 지금은 이만큼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지만 이 정도 가지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생각했던 만큼 가지게 되어도 행복은 저 멀리에 있어 보인다. "음 역시 이거 가지고는 부족한 것이었어. 조금 더 가져야 행복해지겠어" 라며 목표를 수정하며 또 달린다. 끝이 없는 레이스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탁기를 열 개씩 사는 사람도 없고 삼시세끼 먹던 걸 열 끼씩 먹는 사람도 없다. 그냥 질이 조금 좋아지는 것뿐이다. 그 질이 좋아지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50만 원짜리 세탁기 살 거 300만 원짜리 세탁기 사는 거지 3,000만 원짜리 세탁기 사는 건 아니다. 3,000만원짜리 세탁기 어디서 찾을래도 쉽지 않다.
명품 옷과 가방을 사면 조금 내가 빛나 보일까 싶어 한 달에 몇천만 원씩 쇼핑을 해봐도 결국 돌아오는 건 역시 균형 잡힌 몸매와 편안한 마음가짐이 최고라는 현실 자각뿐이다. 결국 돈은 내 생활을 조금 색다르게, 그리고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획기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언제쯤 이 '모으기 병'을 극복하고 그만둘 수 있을까.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의사결정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