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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May 21. 2021

허무함에 빠지는 순간에도 삶은 계속된다

내전이 일어나도 지진이 나도



평소와 같이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에 갔다.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는 시간. 식당에 비치된 티비에 눈길이 갔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충돌이 재개되어 민간인이 수십 명(현재는 약 250명) 희생되었다는 기사였다. 그중에서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죽거나 다친 사람뿐 아니라, 건물이 폭격당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현재 기준으로 피란민이 8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세상이라 이런 소식에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기 어려웠다.



지금 내가 여기, 회사 앞 식당에서 제육볶음 기다리다가 폭격을 맞았다면. 건물 안에 있다가 구조물이 폭삭 내려앉아 그 밑에 깔렸다면. 그런데 전시상황이 되어 구조하러 올 구조대도 없다면. 내 아이가 있는 어린이집이 폭격을 맞았다면. 가족을 잃었다면. 우리 집이 무너졌다면. 갈 곳이 없다면.



밥 맛이 뚝 떨어졌다. 배고픔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다. 어찌 보면 뉴스에서 보여주는 공습이 실제로 일어나기 딱 좋은 나라일 수도 있다. 단지, 태어났을 때부터 휴전이었고 지금까지 쭉 휴전이었기에 그냥 이렇게 별 일 없이 계속 가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아니 꼭 북한과의 전쟁 상황을 가정하지 않아도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사회에서 분쟁이 일어난다면 언제든 공습이든 폭격이든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개인은 국가적 결정에 대항할 수 있는 여력이 대체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분쟁이 발생한다고 해서 내가 우리나라를 뜰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나에게는 이 땅에서 일어날 분쟁의 서막을 미리 알 수 있는 정보력도 없고, 그만한 눈치도 없고, 안다고 한들 정말로 분쟁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며 모든 세간 살림을 정리해 해외로 나갈 용기도 없다. 무슨 큰일이 일어난 들 그냥 직면하는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민간인, 여성과 어린이와 함께.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허무함에 빠져버렸다. 내가 매 순간 힘들게 지키려고 했던 나의 가족, 안락함, 풍요로움 등을 한 순간 빼앗길 수도 있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다가도 폭격 한번 맞으면 끝인데 뭐 이러고 사나.






살면서 이런 허무함에 빠지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이란 영화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감독이 로케 현장이었던 이란 북부에서 1990년 대지진이 발생하자 그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걱정되어 무작정 지진 현장으로 가 살피며 찍은 영화이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무려 5만여 명의 사상자와 엄청난 재산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느껴지듯, 대지진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어떤 삶이 계속되고 있었냐고?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는 사람, 아빠가 화장실을 간 동안 아이를 봐주는 사람,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TV를 고치는 사람, 이 와중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삶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동생과 조카를 잃었지만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포기할 수 없어. 제정신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월드컵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숨진 가족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당장은 TV를 고치는데 열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슬픈 건 슬픈 거고 월드컵은 월드컵이지.






퇴근하고 돌아오면 대충 밥을 챙겨 먹고 쌓인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씻겨 잘 준비를 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이 과정을 그동안 너무 하나하나 퀘스트를 넘어가듯 하지 않았나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평안한 일상일지도 모르는데. 당장 내일 이 일상을 지켜내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잠자리에 누워 아이의 눈에  눈을 맞추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머릿속엔 지금 우리 둘이 숨 쉬는  공간이 아닌 세계 지도에 찍힌  어딘가에서는 내전 또는 자연재해로 인해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지 못할 사람들이 있겠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생각을 지워내려는 노력과 동시에 언제 이렇게 아이의 눈을 오랫동안 맞춰보았나 기억을 더듬는 노력  가지가 머릿속에서 왔다리갔다리 하는 걸 보니  인생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삶의 이유를 잃고, 터전을 잃고, 소중한 가족을 잃어 슬픔을 견딜  없는 순간이겠지만  옆의 누군가에게도  순간은 살아가야 하는 순간이다. 내일의 삶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예측할  없다. 그저  순간   있는 일을 하고, 느낄  있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일  있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된다. 어차피 언젠가 죽을 텐데. 내일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데. 벌써  인생은 망한  같은데. 망하지 않았어도 망한  같은 느낌이 드는데.



 글은 조만간 나타날  미래의 쭈구리에게 보내는 편지다. 아직  망했다.  죽었고. 아무것도 변한  없는데  한 가지 변한 게 있다면 죽을 상인 너의 마음뿐이라고 이야기해줄 테다.








“우린 신혼을 빨리 시작하자고 했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살아 있는 동안 인생을 즐기려고요. 다음에 지진이 오면 죽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대지진 다음  결혼식을 올린 신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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