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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Jun 01. 2021

투자수익으로 차를 사고 깨달은 것

공허함? 허무함? 우울감? 도대체 정체가 뭐냐 넌


우리 남편의 나이가 38살 중반부를 넘어가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다. 40살이 되면 차를 바꾸겠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39살의 어느 날쯤인가부터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주문이 바뀌었다. 제네시스에서 나온 신형 suv를 사겠다고 했다. 사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모델은 정해서 뭐하나. 지금 굴리고 있는 우리 집 차 너무너무 멀쩡하고 잘 굴러가고 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 차가 6천만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옵션을 포함하면 7~8천만 원대가 된다고 한다. 나의 놀라움은 여러 방면에서 터져 나왔다. 현대차에서 8천만 원짜리 차가 나왔다고? 근데 그 차를 사겠다고? 아니 지금 쓰는 차도 멀쩡한데 굳이 굳이 그 차를 사겠다고?



진짜로 차를 사고 안사고를 떠나서 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그 돈이면 외제차를 사는 게 낫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일단 지금 차가 멀쩡하기 때문에 안 사는 게 제일 첫 번째지만 그래도 만약에 산다면 무려 8천만 원이나 하는 국산차를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남편이 그 차를 사겠다는 이유가,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은 하차감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하차감 나는 아우디나 벤츠를 사지 웬 제네시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뭘 잘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한 거였다. 비슷한 사양의 수입 suv는 1억이 넘는다는 걸 몰랐다. 그렇지만 뭐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차는 안 살 거니까. 왜냐면 지금 차가 멀쩡해도 너어어어어무 멀쩡해서요.



원래 타던 차는 결혼하면서 샀던 세단이었다. 고장이 없기로 유명한 일본 회사의 제품으로, 8년째 타면서 큰 고장은 물론 잔고장도 거의 없었다. 몇몇 일본 정치인 및 기업가들이 우리나라를 까대지 않았더라면 다음번에도 이 회사 제품을 사리라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동차라는 게 워낙 대체재가 많기에 아쉽지만 안녕...



다시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시간이 점차 흐르고 남편의 노랫소리는 점점 더 잦아졌고 커졌다. 어느 날 보니 40살이 되는 해에 차를 사는 게 기정 사실화된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우리 남편이 40살이 되면 차를 사겠구나. 우리 남편이 나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결혼 후 큰돈을 들여 무언가를 사는 경우는 투자자산(대체로 부동산이나 주식)을 매입할 때밖에 없었다. 자동차도 자산이긴 하지만 사자마자 감가상각이 시작되는 소모성 자산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당장 수중에 있는  여유자금은 아무리 긁어 모아도 1천만 원 남짓이었다. 빚을 내서 차를 사거나, 투자자산을 팔아서 차를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여태껏 투자자산을 팔아서 소모성 비용으로 써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부동산은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애착이 가는 자식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의 돈을 빌려 차를 사든 내 자식을 팔아 차를 사든 이래저래 마음에 당기지 않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선언을 했다.

나는 내 돈 들여서 멀쩡한 차 놔두고 새 차는 절대 못 사니까 지금부터 차 살 돈을 만들어서 사든지 아님 못 사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한 게 작년 2월쯤의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우리 집은 결국 새 차를 샀다. 그것도 최초 생각했던 제네시스 gv80(8천만 원)을 훨씬 뛰어넘는 BMW X7(1억 3천만 원)을 샀다.



1년 만에 어떻게 그 돈을 마련했냐고?

투자를 통해서다. 정확히는 부동산 투자.



출처 unsplash



갖고 있는 현금을 긁어모으고 신용대출과 청약저축 담보대출을 이용해서 약 4천5백만 원 정도를 시드머니로 만들었다. 첫 투자 물건에는 3천5백만 원 정도가 들었다. 운 좋게 계약하고 한 달 뒤 잔금 치르는 사이에 시세가 올라 잔금 날 부동산 사장님이 2천5백만 원 얹어서 바로 되팔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다. 한 달 만에 아반떼 한 대 값은 벌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이렇게 단타로 조지는 것은 내 투자 스타일과 맞지 않았고 또 이렇게 메뚜기처럼 치고 빠지는 건 왠지 정말 적폐 세력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면서 정말 견디기 힘든 '적폐 취급' 당할 여지를 굳이 남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장기투자를 한다고 해서 적폐몰이를 안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목표는 제네시스지 아반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투자는 치밀하게 계획했던 건 아니고 다소 충동적이었다. 돈은 아직 아반떼 값 밖에 못 벌어서 새로운 투자 물건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은데 속 편한 남편은 계속 제네시스가 왜 좋은지, 왜 그 차를 사고 싶은지에 대해 꾸준히 설명을 하곤 했다. 더군다나 소소한 쇼핑을 좋아해 다이소나 쿠팡에 쏟아부은 돈이 정말로 천만 원 이상일 것 같은 우리 남편의 소비행태는,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 좁은 집 안에 쌓여갈 때마다 나의 마음을 갑갑하게 했다. 사실 나도 그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그 수준이 가계에 문제가 될 정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매일매일 거시경제와 부동산 시황을 체크하고 어떤 투자를 해야 적은 돈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나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지는 와중에 문 앞에 택배 상자 또는 쿠팡 비닐봉지가 쌓이는 모습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 내가 투자 스트레스로 조금 버거워하거나 필요 없는 물건 좀 그만 사라고 충고를 할 때면 남편은 오히려 나에게 이만하면 됐다며, 그만 좀 하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아니, 하나라도 더 투자해서 돈을 벌어야 다이소도 가고 쿠팡도 쓰고 차도 사는 거 아니야? 어쩌다 보니 남편 흉보기가 됐는데 그땐 진짜 쿠팡 로고와 비슷한 무지개색 글씨만 봐도 화가 올라왔다.



결국 어느 날 폭발해 남편에게 이렇게 돈 주고 집안에 쓰레기 들일 거면 이제부터 내가 무슨 투자를 하든 상관 말라고 선언을 하고(개ㅈㄹ을 하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날 외근을 나가던 중 우연히 부동산 앱을 보다가 며칠 전 즐겨찾기 해둔 단지의 한 물건을 발견했다. 부동산에 전화를 했고, 괜찮은 물건이라 판단했고, 바로 가계약금을 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안되어 계약서를 쓰면서 바로 잔금까지 치렀다. 이 두 번째 투자 물건에는 1천만 원이 조금 안 들었다.



출처 unsplash



그리고 약 1년 뒤 이 두 개의 투자 물건이 1억이 넘게 올라주었다.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새 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차를 사도 되겠다 라고 선언하자, 남편은 원래 사려고 했던 제네시스부터 렉서스, 벤츠, bmw 등등 비슷한 사양의 모든 suv를 다 비교 분석해본 뒤 결국 bmw x7을 골랐다.



새 차를 구입하는 과정에 있어서 나는 정말 오로지 돈만 댔지 어떤 차를 살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 차는 어떻고 저 차는 어떻고 뭐라 뭐라 얘기해도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었다. 그냥 언제 이 투자 물건을 팔아서 자금을 대는 게 최적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니, 사실 그전에 이렇게 투자수익 낸걸 차에 몰빵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동안 투자 결실을 얻으면 바로 재투자에 쏟아부었지 소모성으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투자는 오로지 차를 사려고 뿌린 씨였기에 그냥 차를 사는데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편이 속 편하게 새 차가 갖고 싶네 비싼 차를 사고 싶네 노래를 부르고 떼를 써도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어쨌든 그게 원동력이 되어 투자 시드를 적극적으로 뿌리게 되었다. 너무 여유가 없어 갑갑하고 숨이 막혀올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세월을 견뎌냈기에 1년 뒤 이런 결실을 맺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차를 사고 나니 희한하게 공허함이 몰려왔다.


목표를 달성한 것에 대한 공허함일까?

만약 투자를 안 했다면 나는 이 차를 살 수 있었을까?

다른 투자자산 없이 오로지 이 투자만 했더라면 이렇게 흔쾌히 차를 살 수 있었을까?

나는 언제까지 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마련한 돈으로 X7을 타는 걸까?

사업가일까? 투자자일까? 금수저일까? 아니면 그냥 FLEX 한 걸까?






소득 행복 곡선이라는 게 있다. 소득이 2배 높아진다고 해서 2배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한계 선을 넘어가면 행복에 유의미한 변화를 주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삼성생명 네이버포스트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는 돈을 쉽게 벌 수 있어서 무조건 좋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성과가 나고 그것들이 쌓이기 시작하자 이제 투자는 나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되었다. 여태껏 함께 길을 걸어오던 친구가 엄청 큰 덩치를 드러내며 사실 나는 니가 감당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야 라며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투자를 통해 돈 잘 벌면 그뿐이지 뭘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나 싶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혹시 내가 돈만 좇는 적폐가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깊이 사유한 결과 투자자가 되었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해서 끼워다 맞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돈만 벌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새 차만 사면 끝인 줄 알았는데 나를 괴롭히는 이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돈은 불행하지 않을 정도로만 있으면 된다.

그렇지만 또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질 것 같고 그렇다. 결국 돈으로 행복을 사게 되는 걸까?



투자라는 친구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도 답을 내리기 어려운데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이런 현실적인 질문도 한다. 올해는 또 어디에 씨를 뿌려야 내년, 내후년에도 결실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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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투자수익이나 지역, 수익실현시점을 적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쓴 이유는 투자를 어느 지역에 어떤식으로 했더니 얼마 벌었다더라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고 투자를 결심한 계기와 투자를 진행하면서, 또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든 생각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믿고 사는 사람이라 자기 우물 밖의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게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댓글을 쓰시는 분들이 간혹 있어 모든 댓글을 삭제합니다. 소중한 의견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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