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런데요. 왜, 뭐요.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우리 집은 며칠 전 BMW X7을 샀다. 남편에게서 이 차가 대략 1억이 조금 넘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애초에 사겠다고 한 차가 1억이 조금 안 되는 차였으니 1억이 조금 넘는 차를 사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내 돈 들여 사는 차도 아닌데, 아니 정확히는 내 근로소득으로 사는 차도 아닌데 그렇게 하시라고 마음대로 골라서 사시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차를 얻었으니, 원했던 하차감도 충만하게 느끼게 됐겠다 우리 남편 좋겠네~ 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남편, 출퇴근할 땐 이 차를 안 끌고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원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차에 별 관심도 없고 직접 끌고 다닐 것도 아닌 나는 오히려 이 시선에서 자유로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단 30초). 회사 같은 팀에서 신입사원을 제외한 5명 중에 2명이 이미 BMW 차를 끌고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나도 BMW 차를 샀다고 고백했다. 여러분 제가 BMW를 샀어요!
오~ 뭐 샀는데?
- X7이요!
X7? 그거 1억 넘지 않아?
- 네!
새 차 샀어?
- 네!
응? 진짜?
네가?
- 네~ 새 차죠 그럼.....
심지어 우리 신입사원도 재차 되묻는다.
진짜요? 과장님?
그거 1억 넘는 차 아니에요?
얼만지 모르고 사신 건 아니죠?
우와 과장님 FLEX 대박~
내 부족한 글솜씨로 타이핑 쳐서 적다 보니 전달력이 좀 떨어지는데 당시 대화 참여자들의 표정, 목소리, 톤 등을 고려해봤을 때 결국 "네 연봉에 그런 차가 가당키나 하냐?" 하는 거였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위라 당연히 나보다 꼰대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차장님, 부장님이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20대인 신입사원에게마저 이런 평가를 받을 일인가.
알고 봤더니 우리 팀에서 BMW를 몰고 있던 차장님, 부장님은 모두 중고차를 사셨단다. 그리고 내가 너무 다른 차에 대해 무지했다. BMW라고 해서 모두 다 1억 언저리인 건 아니었다.
헐. 제가 차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어요. 그래도 비싸긴 매한가지인 거 아닌가요? 헤헤.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이미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왠지 잘못한 것 같은 분위기가 됐다.
예전에 모 유명 아나운서가 신입사원 시절에 벤츠를 끌고 출퇴근을 해서 직원들에게 이 사실이 회자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렇지만 집안이 워낙 부자라고 소문나서 다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집 뭐 볼 거 없는 거 누구나가 다 알았다. 물론 지난 5년 동안 벼락부자가 된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아니 근데 뭐 꼭 부자들만 비싼 차를 탈 수 있는 건가? 상품에는 그에 상응하는 가격이 책정되어 있고, 그 가격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방귀 뀐 놈이 성내고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사람들한테 이런 평가를 당하기 전에 우리 부부도 스스로 자기 검열을 했다.
우리 수준에 이런 차를 사도 될까?
우리보다 훨씬 더 부자여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비싼 차를 사는 건 너무 사치하는 게 아닐까?
투자는 언제든지 망할 수도 있는 건데 이렇게 수익금을 써버려도 되는 걸까?
주변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얘기하지?
그냥 한번 사봤다고 할까? 그랬다가 개념 없는 애 취급당하면 어쩌지?
나중에 회사에서 구조조정할 때 너는 살만 하니까 제일 먼저 나가라고 떠밀리는 건 아니겠지?
돈은 얼마나 더 벌어야 하는 걸까?
이런 가치판단 혼란을 느끼기엔 아직 내가 너무 돈을 적게 번 것 아닐까?
꽤 심오한 차원의 질문에서부터 다소 치졸해 보이는 질문까지 참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많은 질문의 초점이 '나'에게 맞춰져 있지 않고 '남'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수준'에 '이런 차'라는 건 결국 남과의 비교에 의한 것이었다. 애초에 남에게 좀 있어 보이고 싶어서 비싼 차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비싼 차를 샀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껄끄러웠다. 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인식할까 두려워서 발생한 아이러니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자랑했다가 오히려 무시당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이 심정. 인간이라면 가지는 당연한 양가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결국 이런 사람일 뿐인 건가 하는 아쉬움이 또 들기도 하고. 나도 도대체 내 마음을 모르겠다.
'분수에 맞는 소비'라는 건 누가 정한 걸까?
투자 관련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를 읽어보면 많은 저자들이 자산을 축적하는 시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절약을 꼽는다. 만족할 만한 자산을 형성하기 전까지 사치는 금하라고 한다. 그런데 명확하게 그 경계를 구분해서 '재산 얼마까지는 생활비 얼마까지 써도 된다' 이런 식으로 유치원생 가르치듯이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삶이 복잡 다양하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줘 봐야 잘 맞아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자기가 알아서 판단하고 알아서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알아서'에 내가 아닌 남이 주체가 되어 등장해버린 것이다. 그 '남'이라는 사람은 내 인생을 책임져주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바라봐줄 가능성도 희박하고 심지어는 1원 반푼 어치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남'을 신경 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남들이 뭐라고 하면 어쩌지. 남들은 이렇다던데. 남. 남. 남...
'돈을 얼마나 벌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이유는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서도 있지만, 그러면서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기 때문도 있다. 이제 돈 버는 것도 지치고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 퇴사를 고려하지만 막상 결심은 하지 못하는 건 남들이 나를 집에서 노는 한량이라고 볼까 봐 두려워서 라는 이유가 크다.
어쨌거나 이런 자기 검열을 끝내고 우리는 결국 이 차를 사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더러 분수를 모르고 사치하는 것들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고, 우리는 계속 이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움츠러들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어쩌라고 보태준 거 있냐며 당당해질 수도 있다. 앞으로 계속 투자에 성공해서 수백억, 수천억 대 자산가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이 사건이 사치스러운 생활의 트리거가 되어 앞으로 가정경제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다. 월급쟁이가 분수에 안 맞게 자산가가 되려 하고 비싼 차를 사려하다니 너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고민 보따리를 선물해주마 얍! 하는 신의 뜻을 받고 있는 걸까? (또 너무 오바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이런 고민 또한 새 차를 사는 과정 중에, 아니 더 업그레이드된 자산가가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 아닐까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거 참. 차 한 대 사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출근이나 해야지.
- 오늘도 출근이 고단한 월급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