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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Jun 10. 2021

투자는 왜 윤리적이지 못할까

본 투 비 욕받이


전 세계가 투자 열풍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투자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동산, 주식, 금, 코인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은 잘 없지만 한 분야 정도는 해박하게 꿰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투자 이야기나 돈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걸 꺼렸던 것 같은데 요새는 지하철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투자 이야기에 열 올리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노동가치보다 돈을 좇는 게 대단히 존경받는 행위로 대접받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생활은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되었다. 이를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는 종종 그 사람이 도덕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도대체 투자가 뭐길래.


‘투자’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1.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2. 이익을 얻기 위하여 주권, 채권 따위를 구입하는 데 자금을 돌리는 일.

3. 기업의 공장 기계, 원료ㆍ제품의 재고 따위의 자본재가 해마다 증가하는 부분.



투자라고 하면 대부분이 특정 자산(부동산, 주식, 금, 코인 등)을 샀다가 이익을 얻고 난 뒤 파는 것 정도를 떠올릴 수 있는데 생각해보면 굉장히 광범위한 분야에서 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이익을 얻고자 시간과 돈을 들여 교육에 참가하는 것도 투자요, 당장은 아무것도 없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자본금을 대는 것도 투자다. 이익을 얻기 위해 들이는 자본, 시간, 정성 이 모든 것이 다 투자다.



그런데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투자에는 관대하고 자본을 들이는 투자에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시간과 정성은 어떤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반영된다고 보지만 자본은 무자비하고 인격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시스템 하에서 필요한 건 불량 없이 균질하고 값싼 노동력이었다. 과거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에서는 노동자를 채용할 때 성실성과 생활습관 등을 평가했다고 한다. 노동자가 오늘은 출근하고 내일은 출근을 안 하면 컨베이어 벨트에 구멍이 생겨 전체 생산 스케줄에 차질이 발생한다. 동료들과 자주 다퉈 컨베이어 벨트를 원활하지 못하게 하는 노동자 또한 퇴출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일할 사람은 줄을 서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과거에 즐기던 자유 또는 방탕스러운 생활을 조금만 참으면 높은 급여와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공장에 의한 대량생산이 세력을 더해 퍼져 나가자 곧 그에 맞춘 교육시스템이 생겨났다. 우리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유치원, 학교를 다니며 성실한 노동자가 되는 것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도 노동자고 받는 사람도 대체로 노동자 집단이다. 자기네들끼리 스스로 올가미를 씌우면서 계도하며 노동자를 길러낸다.





우리는 모두 투자를 한다. 노동자는 시간과 정성을 대고 자본가는 자본을 댄다. 결국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모두가 투자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공교육에서 배운 '바른 노동자의 상'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는 것뿐.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시간과 정성을 대는 건 당연한 일이니 자본을 대는 투자만이 투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도 생겼다.



이렇게 자본을 이용한 투자가 모두의 관심사가 된 요즘 세상에도, 주변의 누군가가 자본을 대고 큰 이익을 얻었다고 하면 왠지 기분이 언짢다. 이건 단순히 질투심에 배가 아픈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왠지 모르게 그 친구가 비윤리적인 사람인 것 같고, 언제 그렇게 탐욕에 눈이 멀게 되었나 걱정을 하곤 한다. 더군다나 그 친구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리기라도 하다면 어린 게 땀 흘려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벌써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가져와 호위 호식하려고 하다니 세상이 말세인가 보다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십수 년간 노동자 교육을 받은 건 전혀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완벽하게 노동자 마인드를 체화하게 하다니 정말 현재 교육시스템은 이보다 더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경쟁구도에 뛰어든 것이다. 세상에 , 일자리, 기회 등은 유한하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나눠먹느냐의 싸움에 뛰어든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요즘처럼 일자리가 부족한 세상에도 나에게 매일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은, 나는 누군가와 일자리 찾기 경쟁에서 이겼고 나의 효용을 위해 누군가의 투자 기회(일할 기회) 박탈하고 있는 것과 같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모로코 여행을 갔을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앉아있는 모습에 궁금증이 생겨 가이드에게  사람들 일하러 안 가냐 물었더니, 모로코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공산주의 국가라 하나의 일자리를 주 3회, 주 2회 이렇게 나누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모두에게 일할 기회와 기본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주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모두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기 위해 주 3일제로 바꾸고 그 대신 월급도 그에 상응하게 줄인다고 하면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주먹을 쥐고 일어설 것이다. 아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에서도 확인할  있다. 저성장 늪에 빠져 더 이상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대이니 청년들을 위해 철밥통 꿰찬 선배들의 이른 퇴직을 권고하는 글을 쓴다면 아마도  계정은 하루 만에 폭파되겠지요지는 직장인들도  이기심에 의해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고 있는 것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 많이 있지만 다 소용없고 자본을 들이는 투자는 윤리적일 수 없다.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간혹 친환경 기업이나 공익을 위한 협동조합 등에 투자를 하며 그래도 나는 윤리적인 투자자라고 정신승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결국 다 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일반 기업이라고 해서 다 무용한 가치를 창출해내는 비도덕적 집단이지도 않고 그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돈만 밝히는 사람이지 않다.






오늘 외주업체와 미팅이 있는데 오전 일찍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몸이 안 좋아서 사장님이 직접  오고 직원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열심히 땀 흘려서 일하지 못하겠냐고 추궁한다면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지금  돈도 세계 각지를 누비며 잠도  자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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