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밀레니얼세대인 내가 부동산에 빠진 이유 2편
그래도 독립을 빨리함으로 인해서 스스로 나의 경제적 입지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빨리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사회생활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모아둔 돈도 별로 없는데 어디 아파트 갈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더군다나 신축아파트 같은건 꿈에도 못꾸는 것이었죠.
아무튼 이렇게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맞벌이 부부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월세고 뭐고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아직 사회초년생이었던 시절이라 회사생활이 거의 삶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씻고 나가서 밤에 별보며 들어오는 그런 생활도 종종 했습니다. 심할때는 한달에 주중은 금요일 빼고 모두 야근을 하고, 주말 이틀 중 하루는 꼭 출근했던 그런 적도 있었어요. 주중에 야근을 하고 집에오면 한 10시반 정도가 되는데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나에 대한 보상이랍시고 집앞에 있던 카페에서 버블티를 매일매일 사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분에 야근을 그렇게 했는데 살이 안빠졌어요)
이렇게 얘기해놓고 보니 엄청 일이 많았던 것 같지만 사실 항상 그렇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매일같이 술영업을 했다고 보는게 맞아요. 어떤 직군이든 영업은 다 사람을 만나서 하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영업을 거의 사람을 만나서 술을 먹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급은 일주일 7일 중에 6일 이상 술 먹는 일이 허다했고 말단 사원이던 저도 주2~3회 정도는 퇴근후 술영업 또는 회식을 하러 갔던 것 같아요. 지금은 기업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내부 회식같은건 잘 안하지만 5~10년전엔 팀회식도 잦았고 내부영업(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지원부서 영업 또는 내부정치 등) 도 많이 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술을 잘 못 먹습니다. 그래서 항상 곤욕이었어요. 못 먹으면 안 먹으면 되는데 이게 또 어느 조직에서나 항상 상위권에 있었고 잘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조절이 잘 안됐어요. 그래서 정신력으로 버티든가 아니면 진짜 너무 많이 먹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토하고 뻗든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여자라서 1차 끝내고 남자선배들이 집에 보내려고 하면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라는 배려인건지 아님 자기네들끼리 좋은 데 가려는건지 잘 구분이 안갔습니다. (지금도 잘 안갑니다)
다행스럽게도 술영업 문화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대신 주말 골프영업이 그 자리를 채웠지요. 골프를 배우긴 배웠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아직까지 골프를 못 치고 있는데 어린 아이를 기르고 있는 제 입장에서 골프영업을 시작하려니(주말에 남편과 애들만 두고 나가면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 알기에) 이것도 참 쉽지 않은 현실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그래도 희망이 좀 보여요. 애들이 커가면서 남편이 혼자 볼 수 있게 되어 가는 중이거든요. 시대가 흐르고 기업문화가 바뀌어서 회식도, 술영업 문화도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그 대신 주말을 반납하게 된 것을 보니 퇴근이든 주말이든 개인적인 삶을 반납해야 하는 건 직장인의 숙명인가 봅니다.
회사는 항상 어려웠습니다. 신입사원 때부터 10년차인 지금까지 기획부서에서 작성 요청을 받은 보고서 중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는 "위기"가 아닐까 싶어요. 선배들은 이미 이놈의 "위기"에 이골이 난 상황이어서 뭣도 모르는 막내사원인 제가 위기경영에 대한 보고서를 줄줄이 써나갔습니다. 올해는 뭣때문에 시황이 어렵지만 이 위기를 어떻게어떻게 헤쳐나가겠다 또는 일판비(=대부분 인건비)를 줄여서라도 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오오오력 하겠다. 뭐 이런식의 것들이요. 나중에 한번 이에 대해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는 실제로 어렵지 않았고 나날이 급격한 성장을 해나갔습니다.
암튼 그래서 월급은 한 해에 10만원씩 올랐습니다. 그당시 물가상승률이 4% 정도였는데 그 수준을 맞춰서 올려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2년이 지나 2014년 11월경, 신혼집 재계약을 하려는데 집주인이 월세를 20만원을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2년동안 월급이 20만원 올랐는데 월세를 20만원 올려달라는 거였습니다. 헐. 이땐 진짜 좀 충격이었어요. 물가상승률이고 뭐고 모르겠고 그냥 오른 내 월급만큼 월세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습니다. 왜냐면 저는 오른 월급으로 오른 자장면 값도 충당해야 했고 쌀값, 샴푸값, 기름값 등등 모든 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의 물가 상승을 다 충당해야 했는데 이걸 월세로 다 가져가겠다는 거였어요. 내가 이러려고 밤마다 야근하고 술먹고 주말을 반납한건 아닐텐데? 더군다나 이제 막 임신해서 아이도 낳아야 하는데 그럼 저축은? 내 집은?
입덧으로 아무것도 못먹고 누워만 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남편을 닦달해 집을 보러 갔습니다. 원래 살던 동네(서초구)에선 답이 안나올 것 같아 어차피 아이도 낳아야 하니 친정집(강동구)과 가까우면서 둘이 출퇴근하기도 좋은 지역(광진구)으로 가서 집을 몇 개 봤습니다.(이때만해도 제가 넘 어려서 애를 낳으면 친정집 바로 옆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행히 전세 시세가 조금 저렴한 동네라 제가 가진 돈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면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14년11월이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반등하던 시기여서 이 분위기를 먼저 알고 있던 부동산 사장님이 매매를 권하였고 비슷한 평형대로 매매가 가능한 집을 봤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전세로 구해도 8천을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매매는 그것보다 대출을 더 많이, 무려 2억이나(!)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서 별로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나홀로 아파트였고 그 아파트에서 가장 열위라고 보여지는 라인의 세대였어요.(집 한번도 사본적 없지만 꼴에 아는 건 많았음)
이런저런 이유로 매물들을 다 X표를 치고 나니 남는 게 없었습니다. 결국 집주인에게 잘 말을 해서 1년만 연장하기로 하고 월세를 10만원만 올리기로 했어요. 그렇게 그 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충격을 받고 이렇게 조용히 겨울을 보냈냐구요? 아닙니다. 그 사이에 저희 부부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공급되는 거의 모든 새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와 현장에 방문하였고 청약을 신청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다 떨어졌습니다.사실 청약은 그 이전부터 몇개 넣어보긴 했었어요. 월세가 아깝기도 했고, 내 집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서 종종 새 아파트 공급이 나오면 청약을 넣었습니다. 아직 서울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반등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단지의 청약은 경쟁률이 높았어요. 그 이유는 분양가상한제때문이었습니다. 구축아파트가 있고 그 동네에 새 아파트가 들어오는데 이 아파트가 구축이랑 값이 비슷하거나 더 싸요? 그러니 사람들이 청약에만 목을 맵니다. 지금과 같은 경쟁률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도 청약점수 23점이었던 저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더라구요. 심지어 85이하는 가점제 40%에 추첨제 60%이던 시절이었음에도 정말 징하게 안되더라구요. 하아.... (결국 분양가 상한제는 시장을 교란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4년 12월 폐지되었습니다. 근데 2020년 7월 다시 시행되었다는....)
제일 기억에 남는건 아이를 낳기 직전에 다산신도시 첫 공공분양이 나와서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러 갔을때였어요. 남편은 일단 다산신도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다산 정약용의 호을 따서 다산신도시라고 했을때 뻥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양주 도농 이라는 동네도 난생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남편은 지방사람) 진짜 과장 좀 보태서 남양주시 사람들이 다 몰려온 것 같은 기적과 같은 광경이!!! 모델하우스 입장도 줄을 서서 1시간은 기다린 것 같은데 들어갔더니 단지모형 보고 세대 유니트 볼때까지도 줄이 빙글뱅글 첩첩이 서있었더랍니다. 여태까지 모델하우스 엄청 가봤지만 이런 곳은 진짜 처음이었어요. 직감했습니다. 아 이번에도 광탈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