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달라진 시간에 대한 관점
브런치에 글을 쓴 지 2주가 넘었다.
내 이전 글 '휴직자의 생활계획표'를 보면 나름 글쓰기를 위한 시간(주 2~3회 오전 6~7시)을 할애해놨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랬더니 브런치가 얼른 글을 좀 더 쓰라고 독촉 메시지를 보내왔다. 작가님의 기록이 뭐 어쩌구.... 그렇게 쌓이면 출판으로 이어지구 저쩌구...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암튼 오랫동안 글을 안 썼으니 얼렁 좀 써라 하는 식의 것이었다. 그게 마치 집에서 노는 게 글도 안 쓰냐?처럼 느껴져서 이렇게 pc 앞에 각 잡고 앉은 것은 아니다.
사실 아침 시간을 글쓰기에 쏟지 못한 이유는 둘째 아이 때문이다. 올해 4살인 아가라면 아가이기도, 형님이라면 형님이기도 한 이 녀석이 요새 자꾸만 새벽에 잠을 설치면서 엄마를 찾아댄다. 4~5시쯤부터 뒤척거리며 어설프게 잠이 깨서는 자꾸 목이 마르다, 이불이 없어졌다, 어젯밤 손에 쥐고 잠들었던 장난감이 사라졌다 하면서 투정을 부린다. 그러면서 엄마 배 위에 올라와서 자고 싶다, 팔베개를 해달라 요구하는데 문제는 그 엄마가 나라는 점. 그러니 당연히 계획한 시간에 혼자 이불을 박차고 나가 글을 쓰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도 어쩌다가 아이가 푹 잠이 든 날이면 어김없이 운동을 하러 나간다. 운동은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휴직의 가장 큰 목적은 건강 회복에 있었기에 운동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약간 운동에 중독된 상태가 되었다. 물론 그동안 너무 숨쉬기만 열심히 해왔던 터라 중독이라고 표현해도 상당히 미약한 상태이기는 하나, 어쨌든 이제 이틀에 한 번 정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좀이 쑤시게 되었다.
그래도 휴직을 하면서 야심 차게(?) 계획했던 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됨에 있어 불안하지 않을까. 사실 휴직 초기에는 난데없는 수난(이를테면 자가격리) 등을 겪으면서 계획했던 대로 안돼서 무척 스트레스받고 불안해했었다. 나에게 주어진 10개월이라는 휴직기간이 무척 짧게 느껴졌고 그 안에 많은 것을 이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여러 종류의 공격을 받고 그것에 대응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여태까지는 나의 성공과 성장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언가 이뤄낼 것이다. 나는 이런 공부를 할 것이다. 그만큼 성장을 할 것이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생활을 위해 하루에 11시간을 쏟다 보니 내 시간이 너무 없었다. 성장에 목마름이 커 남은 시간을 거기에 다 쏟고 나니 나의 건강과 내 마음을 살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가족들을 돌볼 시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휴직을 했다.
지금도 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 이것은 존재 그 자체로 필요한 시간이다. 생각할 시간, 마음을 돌볼 시간, 건강을 돌볼 시간, 그리고 가족을 돌볼 시간. KPI 성과지표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시간들 말이다. 지금 나에게는 이런 시간들이 가장 필요하다.
세상일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들 한다. 나는 시간관리에 있어서는 내 인생 통틀어 지금이 가장 내 마음 같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타의에 의해 내 시간을 위협받는 일이 정말 많다. 그런데 그것도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란 당연히 그런 사정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클 하얏트의 '초생산성' 이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다. 그냥 생산성도 아니고 '초생산성'이라니. 그런데 책 내용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가 장성해 독립한 사람보다 '나'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많지 않은 시간이라도 의도를 갖고 짜임새 있게 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산성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서도 자녀가 있는 사람은 그냥 그 상태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이제 갓 아이를 낳은 친구들에게는 꼭 이런 조언을 한다. 한 1년은 인생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만 집중하라고. 그 기간에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무언가를 자꾸 하려고 하면 이도저도 안돼서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겪어보니 알았다. 그렇지만 육아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몰랐나 보다. 나는 이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물론 내가 휴직을 함으로써 약간의 자유를 더 만끽하려고 하는 우리 공동창업자(흔히들 말하는 남편)에게는 끊임없이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집에 있는 기간 동안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경제 기반을 더 탄탄하게 하고, 더 많은 수익을 더 효율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나는 더더더 스트레스받고 있는데, 단지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육아와 살림까지 나에게 책임을 조금 더 넘기려고 하면 정말 경기도 오산이라고. 사실 원래부터도 우리 사회의 성역할 관념상 어쩔 수 없이 육아와 살림에 대한 비중이 내가 좀 더 높았는데 여기서 더 높아진다고 하면 나는 숨이 막힌다. 아무리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해도 솔직한 마음은 그렇다. 아무리 집안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는데 시간 쓰는 걸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여기게 되어가는 중이라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지금 이 글도 무려 5일 동안이나 쓰고 있다. 조금 쓰고 아이가 찾으면 저장해뒀다가 그다음 날 또 쓰고 또 그다음 날 또 쓰고.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요새 쓰는 글은 예전에 쓰던 글보다 짜임새도 이상하고 몰입도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다 쓰고 나서도 뭔가 엉성해서 몇 날 며칠을 서랍 속에 저장해뒀다 겨우 못 고치고 발행 버튼을 누르고 만다.
당분간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성장도 적당히 갈구한다.
나는 로봇이 아니다.
인생은 이겨야만 하는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이건 단순히 정신승리가 아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고 또 지켜나가는 과정이다.
지금은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