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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Nov 02. 2021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행운의 여신님 감사합니다

(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참 운이 좋다.



대체로 나는 단정 지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어떤 것에 대해 설명할 때도 ~그러한 편이다, 혹은 ~그러한 경향이 있다 라고 표현을 하는 편이다.(역시나 또 그런다) 따라서, 평소 나의 화법대로라면 "나는 대체로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말하는 게 맞지만 이 말 하나는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다.



Photo by Amy Reed on Unsplash



어릴 적부터 흔한 위기 한번 겪지 않고 평탄하게 35년 세월을 살아왔다. 많은 집이 안고 있는 가정 불화 문제도 없었고, 나와 같은 세대들이 어릴 적 많이들 위기를 느끼게 했던 IMF도 부모님이 모두 공무원이었던 우리 집은 예외였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기인한 금융위기 시절에도 운 좋게 졸업반이 아닌 대학교 3학년이어서 극심한 취업난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취업문은 그 이후로 계속해서 더 좁아졌다고 하니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 맞다.



사실 위기란 게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남들이 겪는다는 소소한 인생의 고통은 나에게도 있었다. 흔한 예로, 한창 공부할 고등학생 때 나도 공부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그럴 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친구들이 있었다. 이 친구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잘하면서 꽤 나를 걱정해주었고 또 함께 가기를 원했었다. 세상에 이런 친구들을 학창 시절에 가장 가까이에 두었던 나는 도대체 얼마나 행운아였던가. 게다가 내가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잔소리를 전혀 안 했던 부모님의 존재란, 내가 진짜 행운아임을 증명해준다. 공부하기 싫어 죽겠는데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잔소리했으면 친구가 채찍질을 하든 뭘 하든 더 엇나갔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보니 수능을 망쳤다. 그 당시 전교회장이었던 나는 선생님의 기대를 알게 모르게 받고 있었는데, 수능 가채점을 하고 나서 담임선생님은 내가 당연히 재수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나만 대학 지원 상담 일정을 안 잡아줬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별로 친하지도 않던 다른 교과목 선생님이 지나가다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형을 알려줘서 그걸로 어찌어찌 대학을 갔다. 목표했던 대학보다 조금 낮추긴 했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됐다 하는 수준이었다. 그때 그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그 얘기 안 해줬으면 난 그 해에 대학 못 갔다.



심지어 내가 만약 수능을 하던 대로  봐서 원래 목표했던 대학을 갔더라면 대학 전공이 달라졌을 것이고, 그럼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갔을 것이고,  그러면 부동산 투자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가진 것들도 일구지 못했을 것이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휴직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한 현재의 남편도  만났을 것이다. 한마디로 수능을 망친 게  인생의 신의  수였다.




Photo by Volodymyr Tokar on Unsplash




그런데 그렇게 운 좋게 살아왔던 나에게 닥친 카드값 위기는 과연 해결했을까. 당연히 잘 해결됐다. 앞에서 "나 이렇게 운 좋은 사람이야~" 하고 신나게 떠들어댔는데 해결 못했으면.... 전개가 좀 이상하지 않나.



어떻게 해결했을까.

신기하게도 위기상황을 감지하고   여기저기서 돈이 샘솟아났다.



일단 첫 번째로, 코로나19 생활지원금 99만 원을 받았다. 이 생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 또는 확진/입원에 의해 생계활동에 차질이 생긴 경우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이다. 휴직에 들어가자마자 아이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를 하느라 멘붕이었는데,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도 자가격리가 끝나면 이 생활지원금을 꼭 신청하라고, 예산이 얼마 없어서 지급하는데 1~2달 걸리니 꼭 빨리 신청하라고 몇 번 당부했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 공무원 말대로 자가격리 끝나자마자 바로 신청하는 부지런함을 보이진 못했지만, 어쨌든 신청은 해뒀다. 그러고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딱 지급이 됐다. 안 그래도 전 국민의 90%에게 뿌린다는 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서 약간의 상실감(?아쉬움?) 같은 게 있었는데 나도 뭔가 코로나로 인한 지원금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결국 쌤쌤인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자가격리하느라 생활에 타격이 컸으니까 주는 거긴 하지만. 이제 자가 격리했던 세월이 먼 과거 일처럼 느껴지는데 잊어버릴 때 즈음해서 지원금을 주니까 왠지 꽁돈 생긴 느낌이 들었다.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번째로는 지난 2분기에 분양받은 수익형 부동산의 중도금 대출이 실행되어 중도금 1 차에 대한 부가세  250 원을 환급받았다. 세무서에서 갑자기 돈을 넣어줘서  이게 뭐지? 했는데 알아보니 중도금에 대한 부가세 환급이란다. 아니, 중도금은 대출받아서 은행 돈으로 냈는데(심지어 무이자라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금액  부가세는  통장으로 환급해준다니. 결국 잔금  중도금 대출 상환 시에 돌려줘야 하는 돈이긴 했지만 어쨌든 준공 때까지는  통장에 있을 돈이니 앞으로  2 간은 돌려줄 일이 없었다. 지금  당장 한두 달 카드값 막을  없는  알고 이렇게  맞춰서 환급해주는 건가 싶었다.



 번째는 지난 1분기에 매입한 수익형 부동산의 부가세 환급 건이었다.  번째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번째 것은 중도금 1 (매매대금의 10%) 대한 부가세이기 때문에 금액이 작고 귀여웠다면, 이번  완제품을 100% 매입한 것이기에 부가세가 천만 원이 넘었다. 준공  미분양  물건이었는데( 건물의 가장 마지막 호실이었다) 세무서에서  건물 매입에 대한 부가세 환급을 처리해준  오래됐는지 아님 담당자가 바뀌어서 그랬는지 암튼 환급해주기 싫은 사유를 이래저래 대가며 자꾸 소명자료를 요구해왔던 것이었다. 준공  미분양 시절을 보내며 여러  신탁등기가 말소되고 다시 신탁되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무슨 세금 탈루를 하려는  아닐까 의심했다. 아니  진짜 시행사랑 아무 관계없다니까요.  사무실 쓰려고  거라니까요? 갖은 설명을 보태도 세무서 담당자는 원칙을 고집해서  이거 까딱 잘못하다가는 부가세 환급이 안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느  통장으로 입금해줬다. 무려 천만 원이 넘는 돈을.



그래서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심지어 돈이 남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세계약도 성사되었다. 모든 것은 다시 순조롭게 흘러갔다.



Photo by Christopher Sardegna on Unsplash




이번 일을 겪으며 '역시 나는 럭키걸............' 하면서 감탄할  아니고 자금경색을 진짜 조심해야 한다는  깨달았다. 회사 다닐 때처럼 고정수입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에. 더군다나 이번에 위기에 도움이 된 돈줄들이 대부분 내가 미리 축적해뒀던 돈을 돌려받은 것이 아니었나.



그리고 부수적으로 큰돈 들어갈 일이 있으면 남편 항아리를 먼저 털어야 한다는 꿀팁도 얻었다. 어차피 우리 곳간은 하나잖아. 내가 진짜 잘 불려준다니까? 날 믿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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