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작인 Jan 30. 2022

세상이 정말 내 맘 같지가 않아

그럼 뭐 어때. 맞춰서 사는거지 뭐



휴직 4개월 차에 접어들자 이제 진짜 휴직 라이프에 적응하게 되었다.  10개월 간의 휴직   2달을 코로나 확진자 밀접 접촉에 의한 자가격리와 병간호로 날리고보내고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고, 7시가 되면 아이들과 아침을 준비하고 9시 반 등원, 3 하원 전까지 새로운 비즈니스(주로 구매대행) 하다가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하루를 정리하는, 그런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뭔가 문제가 있거나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엄마, 엄마, 하게 되었다. 엄마 오늘은  회사 안 가?라는 말을 매일 하던 첫째도 엄마가 주양육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신기하게 돈은 벌렸고 투자해놓은 자산들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쉼과 운동이 적절히 배합되니 허리 디스크로 인한 통증도 점점 나아져갔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이렇게 순조로워도 될까 싶을 정도로 순조로웠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코로나 예방접종 2차를 맞은 다음 날이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서 좀 쉬려고 했는데 첫째 아이의 유치원 같은 반에 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1차 접종 후 고열과 근육통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었기에 이게 왠 날벼락인가 싶었다. 당장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2주 간의 자가격리와 그 후 얼마간의 줌수업이 또 시작되면.... 앞으로 한 달은 또 기억에서 지워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급하게 버스를 타고 귀가한 아이를 데리고 침착하게 보건소에 갔다. 마침 선별 진료소 소독 시간이라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의 친구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유치원이 아닌 곳에서 만나니  반가워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최대한 아이들끼리 붙어서 놀지 못하도록 떨어뜨려 놓았다. 그냥 친구가 좋아서 옆에 있고 싶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었다.



다행히 유치원  추가 확진자 없이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유치원에서도  번째 확진자 발생 때보다  신속하게 대응해서 수업은 바로 으로 전환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네 살배기 둘째 아이도 함께 가정 보육을 시작했다.  그냥 어린이집에 안 가니까 좋은  같았다.



처음 자가격리를 할 땐 이런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부모도 아이도 유치원도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느라 불확실성 때문에 더 불안하고 스트레스가 쌓였었는데 모두가 한 번 해본 일이다 보니 무슨 문제가 생겨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게 되었다. 일단 나만 해도 그냥 앞으로 2주간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갔다 생각하고 그냥 밥 먹고 숨만 쉬며 살자 했으니까. 일상을 유지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시작한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일단 아침에 운동을 나가지도 않고, 아이들 등원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아침을 느긋하게 먹었다. 무슨 뉴요커 브런치처럼 해 먹는 날도  됐다. 인스타에 올릴 여유도 있었다.


그래도 자가격리는 극혐




아이도 온라인 수업을  따라갔고 둘째는 비록  옆에서  방해를 했지만 그래도  견뎌주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기회에 장난감도 새로 바꾸고 전집도 새로 들였다. 각종 보드게임도 섭렵하게 되었다.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고충 없이 2주가 지났다.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나오니 나뭇잎들이 단풍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나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잘만 흘러가는 세월에 웃음이 났다. 꼭 휴직 전 회사를 걱정하던 시절 생각이 났다. 내가 없으면 이 프로젝트는 어떡하지. 우리 팀원들은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너 없어도 충분히 잘 돌아가는데 네 걱정이나 할 일이지.




우리의 목표는 일상을 지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일상이 무너져도 그냥 이것도 일상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려니 인정하고 그것에 적응해나가는 것에 있었다. 특히 아이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가격리를 두 번 겪으며 깨달았다. 어차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는 그냥 인정하고 그것에 맞춰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 맞서 싸울 상대가 있고 아닌 상대가 있다는 것. 그거 좀 맞춰준다고 해서 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진다고 평가해도 내 인생에 전혀 아무 문제없다는 것. 나는 그냥 나의 길을 가면 된다는 것.




물론 자가격리 또 하라 그러면 또 엄청 싫겠지. 그건 당연한거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