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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셋아빠 Feb 21. 2022

10살, 8살 두 아들과 게임회사를 만들다


가족들과 다 함께 차를 타고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돌쟁이 셋째는 고맙게도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첫째, 둘째와 와이프는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이전부터 해 오던 생각이었지만,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 공수표를 남발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입 밖으로 너무 쉽게 튀어나와 버렸다.


"얘들아, 아빠랑 일주일에 한 시간씩 같이 게임 만들까?"


나는 10년 차 개발자다. 게임 개발자는 아니지만, 공부 겸 취미로 게임을 몇 번 개발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느라 시간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는 아이들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은 신나는 표정으로 반겼고, 의외로 와이프도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좋아했다. 로블록스라고 아이들이 한창 빠져서 하는 게임이 있는데, 이건 일종의 메타버스로 로블록스 안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게임을 만들어 공유하는 방식이다. 공유된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게임머니를 사용할 경우 해당 게임 발자에게 수익이 공유되기 때문에 수익화도 가능한 모델이다. 이런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해줬더니 순간 와이프 눈이 반짝거렸다. 물론 이미 수많은 게임들이 공유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만든 게임이 경쟁력을 갖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기대를 갖는 건 자유니까...



어떤 게임을 만들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주제인 게임을 가지고 대화를 하자 아이들은 신나서 떠들어 댔고, 쏟아져 나온 아이디어들로 차 안이 가득 차 버린 느낌이었다. 아직 로블록스의 개발 프로그램인 로블록스 스튜디오도 경험이 없고, 코딩에 사용되는 스크립트 언어인 lua도 처음 접해보는 거라 우선 쉽고 간단한 게임부터 하나씩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항상 모든 도전이 그렇듯이 시작하기가 가장 힘들었고, 아무것도 시작 못하고 몇 주가 지나갔다. 그러던 중, 때마침 긴 추석 연휴가 되었다. 하필 연휴 전에 둘째의 어린이 집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우리 아이와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긴긴 연휴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연휴 중간쯤, 할당된 게임시간을 다 소진해 버린 아이들은 햇볕에 늘어진 강아지들처럼 무료하게 뒹굴거리고 있었다. 때마침 나도 할 일이 없었고, 거실 한편에 만들어 놓은 우리들만의 본부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 공간은 거실 창문 앞쪽에 안 쓰는 침대를 가져다 놓고, 책장으로 거실과 공간을 분리해 놓았기 때문에 나름 아늑한 우리들만의 본부였다. 한쪽으로는 아이들용 칠판도 있어서 회의도 가능했다.


"이제 우리 게임 만들기 시작하자."


평소에도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형이 하는 거라면 다 좋아하는 우리 둘째는 그저 게임이라고 하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둘째에게는 테스터라는 임무를 주었다. 우리가 만든 게임을 테스트하고 버그를 찾아내야 하는 임무다. 첫째는 제법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미 스크래치라는 교육용 코딩 프로그램으로 코딩에 대한 기본 개념도 알고 있고, 로블록스 스튜디오도 이미 사용해 본 상태였다. 그런 첫째에게는 게임에 사용되는 모델을 만드는 모델러의 임무를 주었다. 첫째가 만든 모델에 내가 스크립트를 작성하여 움직이게 하거나, 미션을 줘서 게임이 진행되도록 만들고, 만들어진 게임을 둘째가 테스트하는 프로세스였다.


역할을 정한 다음에는 이제 회사 이름을 지어야 했다. 첫째는 어디서 들었는지 코리아 로블록스로 하자고 했다. 아니, 우리가 로블록스 한국지사도 아닌데 코리아 로블록스라니... 나는 배볼록스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로블록스랑 라임도 맞고, 아빠도 배가 볼록하고, 돌쟁이 막내동생도 배가 볼록하고, 엄마도 쪼끔은 배가 볼록하니까... 아이들은 기겁했다. 그런 이름은 창피해서 안된단다. 무조건 멋진 이름인 코리아 로블록스로 해야 된다고 자기들 주장을 밀어 붙였다. 뭐 그냥 니들이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했다.


이제 우리가 만들 첫 번째 게임에 대해서 회의를 했다. 아이들은 정말 다양하고 기발하며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내가 할 일은 그런 아이디어들을 추리고 재단해서 구현 가능하게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한 우리의 첫 번째 게임은 초간단 장애물 피하기였다.


매일 하루에 30분 정도, 잠자기 전에 와이프가 막내를 재울 동안 다 같이 모여서 게임을 개발하기로 했다. 처음에 생각한 건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였는데 생각보다 시간 투자를 많이 하게 되긴 했지만, 이 하루 30분이 아이들에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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