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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Nov 05. 2022

대충 하는 것과 빠르게 하는 것은 다르다

이 말에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다.

닭 육수가 팔팔 끓는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식당 안은 시끌벅적하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최근에 많은 생각을 했기에 할 말도 많았다.


"있잖아, 어디서 봤는데 대충 하는 거랑 빠르게 하는 건 다르대."

평소에 장난만 치던 남자 친구가 진지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눈빛이 바뀐다.

"...."

아무 말 없이 다음 말을 기다리며 눈을 맞추는 남자친구다.

"나는 내가 손이 느리니까 스스로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거든?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대충 하는 거였어."

'손은 빨라도 머리로는 대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했어.'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 했다.

남자 친구가 국자로 육수를 휘휘 젓는다.

"결과물이 엉망진창이어도 빠르게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빠르게 한 게 아니라 대충 한 거였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대충이 아니라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보려고."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 친구가 생긋 웃으며 입을 연다.

"멋지다 너."

부끄러운 칭찬에 이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몇 초간의 침묵에 국 끓는 소리만이 크게 들려온다.

"하하, 이제 먹자. 나 닭다리 먹어도 돼?"

"응 먹어. 너 닭다리 좋아하잖아."

하나 남은 닭다리는 어디 있나 힐긋 보며 닭다리 하나를 그릇에 담는다.

'하나는 남자 친구 주려고 했는데 안 보이네.이미 먹었나?'

"오.. 맛있다! 어때?"

"응. 괜찮네."

"그래? 다행이다 히히"

남자 친구랑 눈이 마주치니 방금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아니~~ 우리 가족이 말이야! 어머니, 언니, 나, 아버지 이 순서대로 손이 빠르단 말이야? 대신에 결과물의 완성도는 아버지, 나, 언니, 어머니 이 순서야."

닭에서 살을 골라 먹으며 말을 이어간다.

"어머니는 샤워도 5분 만에 하는데 가끔 나오면 머리에 거품이 그대로 있다니까? 근데 아버지는 엄~~청 느린데 대신에 결과물은 기가 막혀! 언니는 손도 적당히 빠르고 완성도도 적당히 높은 편이라 제일 적당한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나는 좀 느리단 말이지..?! 하하하 나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부럽다."

내가 아쉬움을 내비치니 남자 친구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한 마디 한다.

"그래도 00이는 완벽하게 만들잖아."

"어? 그..... 렇지...? 아마...?"

"아니야?"

"아니 뭐..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완성도 있게 만들긴 하지."

"거 봐."

남자 친구가 '내 말이 맞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웃음 짓는다.

'그거면 된 거야.'

남자 친구의 마음이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그거면 될까?'

스스로의 못난 점만 한탄하는 내게 오늘도 나의 잘난 면을 찾아주는 너. 부정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책할 뻔했는데, 금세 날 꺼내 준다.

'그거면 되지.'

그래 그거면 된다.

나는 나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살면 되는 거다.

'각자 갖지 못한 걸 부러워하지 말자. 내가 갖고 있는 건 따로 있잖아.'

'가끔 불편하긴 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지. 오히려 좋았던 때도 있지 않았을까?'

국물을 들이키니 얼큰함에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잘은 모르겠지만, 있었던 것 같아.'

나의 마음도 한결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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