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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Aug 09. 2024

젊은 대표 밑에서 일한다는 것

대표님.. 혹시 제 또래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회사에 가서 면접 봤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더운 여름날 긴팔 셔츠에 두툼한 검정 재킷을 입고 간 회사.

제대로 된 정장도 없는 내가 입을 수 있는 최선의 복장이었다. 덥지만 단정한 옷. 그렇게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힌 채 두드린 회사 문.


반갑게 나를 맞이한 사람은 젊은 남자분이셨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하하 팀원들이 다 외근을 가서 없어요 오늘은."

안내를 따라 들어간 조그만 방.

'대표님은 어디 계시지?'

그리고 문을 닫는다...?


'설마 대표님이신가..?'

속으로 '말도 안 돼! 대체 몇 살이신 거야?'를 10번이나 외쳤지만 애써 침착하게 면접을 봤다.

액면가로는 내 또래로 보였다. 20대 후반. 그렇지만, 대표라는 직함을 보아하니 30 대지 않을까 어림짐작했다.

입사한 후 알게 된 것은, 대표님은 30대가 맞았다. 30대 초반의 젊은 대표. 거기다가 동안 타이틀까지.


젊다고 다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대표님 밑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들이 있다.


1) 복장이 자유롭다.

팀원들이 어떤 옷을 입든 신경을 안 쓰신다. 쪼리 신고 출근해도 된다고 하시고 본인도 자주 그러신다. 심지어 모자 쓰고 출근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성실히 실천하는 직원이 있다.


2) 친구처럼 친근하게 지내기도 한다.

분명 회사이고 직장이기 때문에 수직적 관계인데, 수평적 관계처럼 느껴진다. 대표님조차 위에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일을 지시하거나 큰 일을 맡으실 때는 그런 게 느껴진다. 하지만, 평소에 대화할 때는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나도 금방 마음을 열게 되었다. 선을 넘지는 않지만, 친근한 관계. 딱 좋다.


3) 대표지만 궂은 일 마다하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 '대표'라고 하면 푹신하고 커다란 의자에 앉아서 이것저것 지시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잡일은 전부 직원을 시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대표님은 우리랑 같이 사무실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러 나간다. 식당에 가면 팀원들과 같이 수저 세팅하고 물 따른다. 카페에서 커피가 나와서 내가 들려고 다가가면 본인이 하겠다고 하고 쌩-하고 캐리어를 들고나가신다.


4) 불편한 질문을 안 한다.

회사에 들어간 상상을 줄곧 했었다. 드라마의 영향인지, sns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회사에 들어가면 "00 씨는 남자친구 있어? 연애는 좀 해봤나?"라는 질문을 바로 받을 것 같았다. 물어봐도 상관없지만, 입사 극초반부터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나는 굳이 나랑 내 바운더리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어느 정도 친해지면 나의 많은 걸 오픈하지만, 그전까지는 조금의 벽과 거리를 두는 타입이라 그런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은 조금 피하고 싶었다. 근데 걱정이 무색하게 그런 질문은 하나도 못 받았고, 오히려 1-2주 차쯤 내가 먼저 내 얘길 꺼내게 되었다.


또, 그 외에 외모 평가나 지적질은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에쁘다, 귀엽다, 동안이다, 키가 크다' 같은 슥- 봤을 때 보이는 외모에 대한 평가를 전혀 받아본 적이 없다.

꼭 어디가 예쁘다뿐만 아니라 어디가 별로라는 식의 말도 포함이다.

외모 얘기하니까 생각나는 거. 예전에 친구네 회사에 그런 사람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내 외모나 스타일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바꾸려고 드는 사람. 최악이다.

"00씨는 다 좋은데~ 옷을 좀 더 여성스럽게 입으면 좋을 것 같단 말이지"

이런식이다. 정말 최악의 악의 악이라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그런 무례한 빌런은 우리 회사엔 없다.


젊은 사람만 있어서 그런 걸까? 어찌됐든 마음이 편해지는 회사다.


5) 배울 점이 많다.

젊다 보니 대표님을 보면서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저 나이에 저 정도 능력이라니. 대표라니. 심지어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니! 나도 깔짝깔짝 프리랜서로 아주 작고 잠시나마 사업을 맛본 적이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배울 점이 눈에 보인다. '직장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사업가'로서 바라보면 배울 점이 무수히 많다. 전화를 하면서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태도, 말투, 내용 등. 그리고 직원 관리하는 모습. 대표님은 말을 참 잘하신다. 근데 이게 사기꾼처럼 술술 잘한다기보다 '사람이 참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게 잘한다. 또, 사람을 볼 때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입 밖에 내뱉는다. 팀원 한 명 한 명 칭찬을 자주 해주신다. 그리고 팀원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유연하다.

생각도 일도 유연하게 하신다. 고집이 없으시다. 대표라고 고집부리는 건 없다. 오히려 본인의 의견과 팀원들 의견이 다르면 우선 설득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가끔은 설득도 하지 않고 다수결에 따르기도 한다.

지금 하던 일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하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 방법을 바꾼다든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깐깐하거나 고집 센 대표들은 절대 바꾸지 않을 것들을 손쉽게 휙-휙- 바꾸시고 난 그런 걸 대표님의 장점이라고 봤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장점만 있겠는가. 대표님도 사람인지라 잘하는 부분, 못 하는 부분이 명확하다. 장단점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내 상사나 대표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런 상사를 만난 것 같아 기쁘다. 옆에서 많이 배워서 써먹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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