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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희 Sep 30. 2016

버스킹말고 드로잉 #2

두 번째 거리 드로잉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첫 번째 드로잉을 하고 2주가 지났다.

여유 있게 지내고 싶다고 이곳에 왔는데, 엄청 바쁘게 지낸다는 게 아이러니.

그게 비록 내가 원해서 이것저것 하느라 그런 거지만 나란 사람은  느긋한 생활이 불가능한 일일 수도.


두 번째 거리드로잉, 첫째 날보다 거리에 한산하고 사람도 적어서

왠지 느낌이 오늘은 별로 손님이 없겠구나 싶었다.

손님이 아직 없는 시간.
 내가 여기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서.


첫 번째 손님은 꼬마 여자아이, 6살. 엄마랑 와서 가격이 자유라고 하니 금방 앉아서 그렸다. (그래서 사진을 못 찍었다.)

다음은 한국인 지환씨, 며칠 전 파티에서 만났는데 이분도 버스킹을 하러 나올 거라고 해서 반가웠다.



다음은 이태리 아저씨 3명, 한 아저씨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길래 혹시 좀 이상한 사람인가 의심을 했지만

곧 자기 친구들을 데려와 그림을 그렸다. 아저씨들 직업은 뮤지션!

쥬셉, 다니로, 안드레아 셋은 단짝 친구
귀여운 아저씨들!

쥬셉아저씨빼고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서 많이 얘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이 아저씨들과는 그리는 동안 분위기가 좋았다.

손님이 딱 앉으면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 말로 표현하자면 깔끔한 분위기보다는 수염도 덥수룩하고  본인만의 표정이 있거나 자기만의 멋을 적당히 부린 - 자연스러운 모자나 컬러풀한 패턴옷을 사람들. 이런 조건을 다 갖춘 이태리 남자 셋을 그리니 그림이 마음에 들게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다음 손님, 여자 셋이 와서 셋이 있는 장면을 세장 그려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한 장씩 한 명씩만 그리는 줄 알았지만. 물론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겠으니 오케이 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자체 칼라 복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이렇게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자기 얼굴이 '예쁘게' 나왔는지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더라도 만족도가 낮아서 걱정스러웠다.

또  정말 닮은 그림을 보면 정작 자기 자신은 싫다고 느낄 가능성이 큰데, 본인이 자기 얼굴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젊은 여성 셋을 그리고 똑같이 두 번 그리는 일은 거절하기로 결심.

언니들의 포스-!
자체 칼라 복사라니!


첫 번째 왔던 아이의 가족들이 다시 왔다.

막내 동생이 들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아이가 앉아있기를 싫어해서 세로로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길래 나도 서서 그렸다. 다라가 듣지 못하니 내 쪽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옆에서 엄마가 계속 큰 동작으로 신호를 줬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고 나서는 14살 청소년들이 몰려왔다. 남자 둘, 여자 셋. 돈이 별로 없는데 괜찮냐고 묻고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친구들과 시간이 아주 즐거웠다. 에너지가 퐁퐁 샘솟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루나와 에밀리. 좋다는 표현이 아주 적극적이다!

마리아와 션은 사귄지 이틀 된 커플.  귀여워.

션과 제이크는 서로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포즈를 취했는데, 둘다 각자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란다.
얘네보다 나이가 두배는 더 많다니!

이들을 좀 더 그리고 싶었지만 돈이 없다며 인사하고 떠났다.

아일랜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실 좀 노는 애들 같았지만 그 모습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림에 무얼 하나 할 때마다 쏘 쿨, 쏘 큐트를 외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본인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건 그렇게 태어난 건지, 엄마 아빠한테 배운 건지. 그림 그릴 맛도 나고 재미있었다.



마지막은 여행 온 아이리쉬 남자 한 명. 남자 혼자와 서는 바로 앉기는 쉽지 않은데 알고 보니 2주 전에 나를 보고 그리려고 생각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벌써 나를 기억해준 사람이 있다니!

오늘은 총 11장, 40유로. 60000원 정도

버는 돈에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는 걸 다시 한번 떠올리며,

고생한 우리를 위해 아시안 마켓에서 재료를 사서 라볶이를 해 먹었다.  

밖에서 무슨 활동을 한 날이면 꼭 뜨끈하고 매콤한 한식이 생각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이렇게 점점 익숙해지는 골웨이 생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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