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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희 Oct 03. 2016

한 장의 그림으로 시작된 일들

<The Hardcore Priests of Yemen>

옆집 사는 친구들을 오가며 가끔 마주칠 때마다 딱 뮤지션이라고 느꼈다.

몇 번 인사만 하다가_여기는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인사하니까_ 집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고 그들은 역시나 뮤지션이라면서 자기네 공연을 보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듣게 된 그들의 연주는 아주 좋았다! 곡도 만들고 앨범도 낸_ 본업이 뮤지션에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The Hardcore Priests of Yemen> 밴드는 7인조로 모두 각자 악기를 연주하고 페일름이 리드보컬로 노래를 한다. 아이랜드 색이 짙은 그들의 음악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에 정감 있는 바운스로 마음에 쏙 들어 그 자리에서 앨범도 구입했다.

그리고 음악을 들은 감사의 표시로 작게 그림을 그려서 선물했다.


 

이걸 본 그들이 너무 좋아하며 다음 공연 포스터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했고,

그렇게 이들의 공연 포스터를 작업하게 되었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디자이너로 근무한 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서 주로 출판 관련 일러스트를 작업해왔다. 때문에 밴드의 공연 포스터 작업을 하는 건 처음이라 이번 작업은 나에게도 흥미로운 일이고, 아이리쉬에게 발주를 받은 첫 업무라 얼마를 받을지 정하지도 않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들의 리더인 페일름은 전형적인 아이리쉬로 정말 친절한 사람이라 함께 작업을 하고 편한 친구였다. 길을 걷다가 거의 전 연령대의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멈춰서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

그들의 옆 집에 살게 되었다는 것도 참 행운이었다.

그곳에서는 밴드 멤버 3명이 함께 모여 살았고  연습도 하고 종종 파티도 열어서 우리를 초대했다.



작업의 첫 단계는 내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원하는 스타일을 회의한다. 그리고 이들의 연주하는 모습의 사진 자료를 받았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인물이 표현된 작품을 원하길래 합주 연습할 때 가서 모든 멤버와 인사를 나누고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션이 연주하는 건 아일랜드 전통 악기.


그다음은 내가 작업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보고 멤버들과 함께 방향을 결정했다.

멤버 다수결로 결정했는데, 이들은 아이디어 스케치를 보고 너무 좋아하고 그런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작업하는 데 힘이 났다.

이번 공연장이 와인바여서 와인잔 컨셉으로 잡은 시안이 많았다.




좀 더 분위기를 확실히 잡기 위해 공연할 와인바에도 찾아갔는데 이 곳의 느낌을 살려 빈티지한 느낌으로 채색하기로 했다.




그렇게 완성된 포스터,

<The Hardcore Priests of Yemen>
골웨이에 서 내 그림으로 만든 포스터를 보게 되다니!
그리고 이 공연에도 보러갔다.


포스터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꽤 자주 보며 그만큼 친해졌다.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더라도 한국 사람들끼리 친해지거나 같은 이방인들끼리 친해지기가 더 쉬운 게 사실인데,  주로 골웨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멤버로 이루어진 밴드와 친해지니 다른 아이리쉬와 만나고 친해질 기회도 많아졌다.

우리는 그 후로도 밴드 홍보용 뱃지나 다른 버전의 포스터도 만들었고,

음식을 나눠먹거나 여행 가방을 빌릴 수 있는 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멤버 중 한 명인 젠의 집에서 하는 파티에 초대했다.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선물로 주려고 생각만 했던 그림들을 급하게 채색해서 가져갔다.

이럴때 느끼는 마감날짜의 중요성! 한달을 미뤄온 일을 짧은 시간에 완성했다.
공연때 함께 사진도 못찍은게 아쉬웠는데, 이렇게 기념사진도!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각자의 악기를 가져와서 천천히 맞춰보았다. 그러더니 곧,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멋진 일이었다. 집에서 하는 파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들려주다니!  

내 옆에 계신 분은 배우였는데, 이들이 연주를 시작하니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어 함께 연주했다. 

아이리쉬는 음악적인 피가 흐르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음악을 듣는 보답으로 그림을 그렸다.

오늘 파티 주인공은 젠의 아빠, 게브리엘. 6개월 동안 외국에 가셔서 마련한 파티인데 그 파티에 아빠 친구들, 이웃집, 딸 들의 친구들도 초대하는 셈이니 우리나라 분위기와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파티 주인공, 게브리엘.
젠의 친구들.
둘이 자매인데 이 둘도 자연스럽게 기타치며 함께 노래했다. 너무 멋져!
이 친구들이 나에게 선물해준 싸인한 포스터. 깨알같은 메세지와 함께.


모두 한 장의 그림으로 시작된 일들.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이렇게까지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나누는 즐거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더 많이 그리고 즐기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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