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예고 동창생으로 남편은 조소를,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내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사귀기 시작하여 7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학기 중에는 알바, 방학 때는 여행을 가는 방식으로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남편은 여행이라곤 중국과 신혼여행밖에 가보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부터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남편이 미술을 하면서 유럽 한번 가보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 좋은 유럽을!
그래서 한국에서 1년 동안 살다가 아일랜드에 오게 되었다.
둘 다 미술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나와 남편은 성향이나 취향이 참 다르다.
나는 외향적이고 시끄럽고 활발하지만 남편은 내향적이고 조용하고 차분하다.
우리 이야기를 글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도 떠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나와는 달리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남편.
나는 화려한 패턴에 색상마저 튀는 빈티지 패션을 좋아하지만,
남편은 무채색 옷에 아주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둘 다 예술을 좋아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기에 함께 훌쩍 떠나왔다.
이 여행기의 제목을 '예술가 부부'의 아일랜드 일 년 살기라고 지었지만
남편의 이야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남편이 본인의 이야기를 쑥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글을 쓰는 모든 순간에 남편이 함께 하고 있었고,
심지어 집도 원룸이라 거의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없었다면 아일랜드에도 갈 생각도, 거리에 나가 그림을 그릴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할 때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업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목적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그림에 있어서 정확한 전달력이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조각가 남편은 그보다는 본인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그걸 형상화하는데 집중한다.
따라서 나는 주로 여행지에서 본 것이나 만난 사람들을 그리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최대한 많이 그려보자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주로 작업 구상 스케치를 하니 한 작품씩 깊이 생각해서 신중하게 작업을 하니
같은 곳에 있어도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남편은 작업 관련해서 외국에서 연락이 올 때가 가끔 있는데,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다며
나와는 달리 어학원과 집에서 열심히 영어 공부했다.
그래서 언제나 중요한 자리나 글로 영어를 쓸 때에는 남편이 도맡았고,
난 말문이 막힐 때면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러던 중 남편 SNS를 통해 프랑스 한 갤러리에서 남편 이전 작업물을 보고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한국이었다면 어려웠겠지만 우리는 이미 프랑스로 여행을 갈 계획이 있었고,
몇 달 후 프랑스로 가서 그 갤러리 관계자와 미팅을 했다.
통역 없이 갤러리와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기에 아일랜드에서 했던 작업 구상 스케치들을 보여주며 작업 계획을 보여준 후 그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프랑스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김선혁 개인전
'벗겨진 초상' The return to our roots
2015. 2. 5(Thu) - 4. 4(Sat)
Galerie Oneiro, Paris
나로서는 이런 남편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부러운데, 내 작업이 아니기에 글을 쓰기가 조심스러웠다.
앞으로도 조금씩 꺼내어놓을 수 있기를.
김선혁 홈페이지 http://sunhy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