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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희 Mar 27. 2017

선물로 그린 그림들

그리고 새해맞이

추위 속에도 새해는 찾아왔다. 

새해로 넘어가는 카운트다운은 남편과 함께 예술가 부부답게 보내보자며 서로 얼굴을 그려주고 매년 이렇게 해보자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고, 시차 때문에 한국 친구들에게 먼저 새해맞이 인사가 오고 몇 시간 후 여기서 또 새해 인사를 받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근데 남편, 나 정말 저렇게 생겼어?


새해맞이 산책.

그동안의 드로잉북 스크랩북을 정리했더니 제법 책상이 꽉 채워졌다.

일 년을 계획해서 왔으니 절반은 이미 지나간 건데, 이 노트들만큼 많은 일이 있었으면서도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는 더 빨리 흐른 것 같다. 


부모님들께 우편으로 보내드릴 신년카드를 쓰고 부모님의 모습을 함께 그렸다.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렸으면서도 막상 가까이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아서 나는 마음먹고 부모님 모습을 그려서 선물해드린 적이 있지만 남편은 부모님의 얼굴을 그려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할 수 있지만 막상 마음먹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그런 일들을 여기서는 할 수 있게 되는 건 우리가 그만큼 여유를 찾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축하할만한 일이 생기면,

할 수 있는 걸로 해보자는 생각에서 그림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문자 대신 카드에 손으로 글씨를 꾹꾹 눌러써서 같이 그린 그림까지 우편으로 보내면 

저렴한 비용이지만 축하하는 마음은 전달되지 않을까.

출산을 앞둔 세영 선배의 생일 축하 카드


혜선이의 결혼 축하 카드 (마침 내가 아일랜드에 있을때 결혼식을 하다니!)



지수 생일 축하카드 (첫 장이 잘 안나와서 다시 그려보고 그냥 두 장 다 보냈다.)



민경이 생일 축하 카드 



친구의 부탁으로 그려준 고백용 그림:)



꼬맹이들 그리고 싶어서 그려본 그림





그리고 여기까지 친구가 찾아왔다. 

우리가 일 년 동안 이 곳에 있을 거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 했지만, 실제로 온 친구는 유일했는데 그만큼 아일랜드는 한국에서 오기 쉽지 않은 나라인 것 같다.

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친구와 함께 보낸다고 생각하니 골웨이 투어리스트 마음으로 지내게 되었다. 가고 싶었던 카페를 가고, 해변길을 산책하고, 새로 마음을 다잡고 그림을 그렸다.

그랬더니 오히려 내가 여기가 얼마나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도시인가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일상으로서의 삶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무감각하게 지내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에 머물 수 있는 소중한 시간, 더 부지런히 담아 놓아야지.



으뜸 언니와 카페에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카페에 들어온 큰 개를 그리다가 그 주인인 조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니 자기도 그리고 싶다고 해서 어쩌다 보니 서로 그림 그려주기가 되어 오랜 시간 같이 있었다.

가끔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자신의 잊었던 그림에 대한 욕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내가 그림 전도사라도 된 듯이 함께 그림도 그리고 대화도 나누면서 친구도 될 수 있는 사실이 참 즐거웠다. 



춥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일을 만들어서라도 나가고 무엇이라도 더 해보고자,

어학원에서 친해진 네다가 자기 딸과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해서 네다의 집에도 다녀왔다. 

네다도 예뻤지만 딸 루루는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역시 사람 그리는 것도 재밌지만 그중에서 아이들 그리는 게 제일 좋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가끔은 햇살이 쨍한 날도 있다. 

그러면 지체 없이 산책을 가야 한다. 유럽에서 체험하는 해의 소중함.


그리고 이 겨울의 끝무렵 이 그림을 그려서 친구네 집으로 여행 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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