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겨울이 왔다.
해는 짧아지고, 비가 자주 오고, 긴 밤이 지속되는 날들.
만약 이 시기에 골웨이에 처음 도착했더라면 좌절했을 것 같은 날씨였다.
그래도 이 긴 겨울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건,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마리는 열세 살인 딸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며 그녀가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하나는 무척 시크한 아이였는데, 가끔 내 드로잉북을 보거나 그림 그리는 걸 볼 때만 유독 반짝거리는 표정을 보였다. 영어 공부도 할 겸 그림을 좋아하는 하나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지 물어봤고, 그렇게 드로잉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하나는 학교에서 미술 정규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이런 걸 그리고 싶고 이런 게 좋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 역시 더 긴장하면서 수업 준비도 하고 함께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또 저녁에는 펍에 가서 음악 들으면서 그림도 그리고,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중요한 이벤트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파티.
시기적으로 크리스마스나 새해처럼 이벤트도 많았지만,
따뜻한 집에서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얘기하는 소소한 시간들이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위로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정말 여기는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웃들에게 모두 카드와 선물을 나눠주는 듯.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의 한 겨울보다는 하나도 안 추웠지만,
여행지라고 생각한 곳에서 겨울을 보내니 밖에도 잘 못 나가는 게 억울한 기분도 들었다가
이렇게 한 곳에 오래 있으니 다양한 날씨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에 위안이 되는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