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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다움 Mar 04. 2020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처음으로 제대로 본 아이의 손, 그리고 합격


사춘기가 되어 아이가 변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제대로 커가고 있는데 엄마가 무지했던 거죠.
좋은 엄마는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크고 있으니
나는 그저 나의 삶에 충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내 맘대로 아이를 끌고 가기의 끝판왕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극심한 사춘기를 거치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쁜 엄마' 였는지를 가슴 깊이 깨달았다. 나를 깨달음으로 이끌어준 이 일을 겪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는 반쪽짜리 엄마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선택에 대한 지지가 최선이었던걸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담아, 진짜 좋은 엄마이자 어른이 되고자 하는 나의 성장기를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아들의 무모한 도전


2018년 10월 마지막 주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의 실기 시험 당일, 평소 같으면 아침에 서너 번은 깨워야 겨우 눈을 뜨던 아이가 이른 아침부터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물 마시기다. 매일 아침, 비척비척 걸어가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 한 컵을 가득 따라 단숨에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실기 시험에 담긴 아이의 간절함을 알고 있는 가족들 역시 평소와는 움직임이 달랐다. 절제되고 조용한 움직임들로 아이의 긴장된 모습에 맞춰주었다.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나 역시 일찍 일어나서 간단하게 요기 거리를 챙겨주고 있었다.

“잠은 잘 잤어?” 짧게 인사하며 물 마시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 이 녀석 심정은 어떨까? 살아오며 처음 맞게 된 상황이니만큼 많이 긴장되겠지?’ 정도가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이는 오늘 볼 시험과 며칠 후에 볼 다른 학교까지 총 두 곳에서 실기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오늘 시험을 보러 가는 곳은 아이나 나나 ‘시험 삼아 한번 봐 보자고 했던 곳이니 맘 편히 치르자.’라고 말은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시험은 시험이니 잘 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긴장도 될 터였다.

생각해보면 이번 시험은 비교적 짧은 준비 기간을 두고 치는 시험이었기에 무리수를 두는 선택에 가까웠다. 그리고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이번에 시험을 치는 학교에 대해서는 아이와 조금 입장이 달랐다. 나는 아이에 비해 이 학교에 대해 절실함이 없는 편이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이가 원서를 쓸 때까지만 하더라도 떨어지기를 바랐다는 게 내 심정이었다.

집에서 너무 먼 곳이었고, 지도 선생님 역시 합격 가능성이 매우 낮으니 다른 곳을 쓰기를 권했었다. 학비 또한 비쌌으며 집에서 통학도 불가능한 곳이었다. 이런 여러 요인들로 인해 나는 이 학교를 내심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내게 가능한 두 개의 티켓이 있다면 결과를 떠나 무조건 최고의 선택지에 베팅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나 역시 그런 아이의 말에 따라 ‘그래 어차피 결과는 알 수 없으니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법인가 보다. 시험일이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을 내는 아이의 마음과 절박함이 내게도 전이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불합격을 바라던 내 마음도 자연스레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바뀌어 있는 것 아닌가!




-철벽 같은 엄마를 변화시킨 말 한마디


사실 아이가 본인 입으로 기타를 치겠다는(정확히는 음악을 하겠다는) 선택을 얘기했을 때만 하더라도 ‘겉멋으로 뱉은 말이 뭐 얼마나 가겠어.’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아이를 봤으니 아이의 선택을 온전히 지지하기는커녕 불합격까지 바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달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정 시간을 지켜 연습하는 아이의 모습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거운 기타를 등에 짊어진 채 버스를 타고 연습실로 향하는 아이의 모습에 내 마음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 왈, 레슨이 있는 날은 물론이고 없는 날에도 연습실로 향하는 이유는 오직 딱 하나뿐이란다.      


나 스스로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가는 거야.     

아이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이마를 탁! 칠 뻔했다. 그만큼 기타에 대한 내 아이의 간절함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이의 간절함이 담긴 모습이 닫혀있던 내 마음을, 아이의 진로를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내심 반대하고 있던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내 마음은 통학이고 학비고 일단 시험부터 잘 치고 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단 아이가 합격하기만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 것이다.     



- 모두를 울컥하게 만든 아들의 손


‘잘 잤니?’ 인사를 건네다 우연히 보게 된 아이의 손, 그 손을 본 순간 나는 들고 있던 접시를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아이의 손에는 쇠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이전에도 손끝이 까이고 아물던 걸 본 적이 있었기에 손에 생채기가 난 걸 봐도 그러려니 했었다. 기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난 뒤로 가끔 손끝에서 무언가를 떼어내는 모습들도 봤지만 그저 별 거 아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나 처음 제대로 바라본 아이의 손가락에는 이미 몇 번이나 상처가 생겼다가 아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심지어 어느 손가락에는 여전히 푸른 쇠 독까지 올라있던 것이다.


“아이고 이 녀석아…. 손은 괜찮은 거야?”

아프진 않느냔 내 말에 아이는 쿨한 모습으로 ‘이 정도는 뭐,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답했다.      

“기타 치면 원래 이래.”     


뒤이어 따라온 아이의 덤덤한 말투가 더더욱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쇠로 된 기타 줄을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퉁기고 또 퉁겼으면 손이 저 지경이 됐을까. 아이가 스스로 정한 6시간의 연습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절대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 모습이 새삼 새록새록 떠올랐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간절했을까? 아이의 진심 어린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못나게도 기타를 진로로 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훼방만 놓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고 아이의 손을 찰칵- 찍었다.  왜 그러냐는 아이의 말에 “이런 건 기록으로 남겨둬야 돼.”라고 답하며.



아이가 시험을 치는 당일이 되어서야 제대로 마주한 아이의 손, 그렇게 못난 엄마를 울릴 뻔한 영광의 손을 가진 내 아이는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본인이 원했던 최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차선의 결과로 합격증을 당당히 손에 넣었다.          


-유일하게 기타를 메고 돌아다니던 아이(기타=스스로의 선택)


어느 누구도 내 아이에게 이 길이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던 나조차 그랬다. 그렇게 타인의 의미 없는 편견과 부질없는 속단 속에서 더욱 오기가 발동한 아이는 스스로 피나는 노력의 시간을, 홀로 주변인들과 외로이 맞서는 시간을 거쳐 당당히 자신의 길을 증명해낸 것이다.

시험 당일 아침에 찍은 ‘아이의 손’ 사진은 아이의 합격 소식과 더불어 내 주변 지인들에게 빠짐없이 전송되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은 물론이고 나와 아이의 갈등을 지켜본 지인들까지도 진심으로 기뻐하며 아이의 합격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다들 하나같이 아이의 손 사진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의 손이 가족뿐만 아니라 지인들까지 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의 간절함과 노력이 고스란히 그 손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리라.

동네에서 유일하게 기타를 메고 돌아다니던 아이, 남들과 달리 자기만의 길을 선택한 아이. 동네의 수많은 엄마들에게 우리 아이의 합격 소식은 놀랍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아이의 손 사진은 그야말로 부러움을 넘어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게 만드는 하나의 작품처럼 엄마들 입에 오르내렸다. 아이의 친구들이 아이의 페이스북에 ‘미쳤네.’ ‘축하해!’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선택과 지지, 그 낯선 경험들이 서로를 키우다


여기까지, 흔한 말로 공부 잘하는 엄친아였던 우리 아이가 평범하지 않은 기타를 치는 예술고에 합격한 이야기였다. 물론 누군가는 고작 예술고 합격한 이야기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부모의 이끎이 아닌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선택해 노력으로 이뤄낸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력을 통해 스스로 결과를 내고, 그렇게 지인들의 반응으로 인정받음을 경험하는 아이는 이후에도 노력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며 스스로 한 뼘, 한 자씩 성장해나갈 수 있게 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찍은 ‘아이의 손’ 사진이 다른 엄마들에게 자기 아이에게 자극을 줄 자료로 돌아다녔다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노력하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보살핌과 지지를 받고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성장이란 아이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스스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본인이 가진 정서와 원하는 욕구를 알아차리며, 그것을 해소하고 이해해나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아이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곧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유연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는 아이의 밑천이 된다. 아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본인이 내린 선택과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기초가 세워지는 셈인 것이다.     

부모의 정서적인 지지와 물질적인 보살핌, 이 모든 것들이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존감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면 아이를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의 지지와 존중은 곧 아이가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이치지만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실천하기에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이치를 부모가 진심으로 실천할 때, 아이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진심 어린 부모의 지지만큼 아이의 강력한 성장 동력원은 없다. 부모의 그러한 지지는 곧 아이 스스로가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성장으로 나타날 것이 자명하다.



오늘따라 영화 '기생충' 속의 송강호 배우가 했던 대사가 유난히 귀에 꽂힌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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