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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다움 Mar 04. 2020

사춘기 아들, 분노의 편지가 감사의 편지로

엄마의 꿈 훼방기 그리고 그 후




저는 음악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어요!

나는 악보를 읽을 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오선지에 표시된 기본 중의 기본 음계뿐이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건 좋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으로 즐기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러니 음악을 하며 살겠다는 아들의 선언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걸로 밥이나 먹고살겠니?’라는 반응이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내게는 아이의 선언이 사춘기 방황을 겪는 청소년의 겉멋(?) 정도로 밖에 생각될 수 없었다. 나와 남편에게 아이의 선언은 심히 당황스러운 일이었으며, 아이에게 걸고 있던 기대가 크던 학교 선생님들 역시 아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응원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쟤... 미친 게 분명해.’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들게 하던 내 아이의 중2 시절, 저러다 말겠지 했던 그 선언은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리고 ‘윈터스쿨’을 비롯해 엄마가 야심 차게 준비한 중3 대비 학습 계획은 아이와 힘겨루기에 들어가며 갈 길을 잃게 됐다.     

결국 나는 아이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기에 조건을 걸며 그 선언을 받아들여 주기로 타협점을 찾았다. 극적으로 타협을 보긴 했지만 내내 못마땅한 엄마의 속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위한다면 꿈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글로 배웠고, 그것을 실천해보리라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실천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남들은 잘하는 것 같은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건지…. 나 자신의 부족함에 다시 한번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마음의 혼돈은 곧 상처되는 날카로운 말이 되어 내 아이를 향해 날아갔다.

마지못해 음악학원을 등록시켜주던 1월의 어느 날, 그날 아이가 취미반이 아닌 입시반을 선택한 것도 끝내 못마땅해서 ‘그래, 어디 네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한번 보자.’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보았다. ‘너 이 녀석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혜택을 걷어가 버리겠다.’라는 심보를 품은 채 아이의 꿈을 겉으로만 응원한 것이다. 이 얼마나 못난 마음인가.

돌이켜 보건대 내 아이가 16년을 살아오며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고 강하게 요구했던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인 나는 늘 아이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기도 전에 미리 내가 생각하는 아이의 필요에 의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내 아이는 그런 내 준비들에 순응하며 지내왔다. 그랬다. 음악을 하겠다는 내 아이의 그 선언이 내 아이가 스스로 내린 첫 ‘자발적 선택’이었던 걸 그땐 몰랐던 것이다.     




아이는 마음을 확고히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갈팡질팡하며 계속 못마땅한 마음을 여기저기 표현하고 다녔다. 음악학원 원장님을 붙잡고는 아이 성적이 유지되어야 레슨을 계속할 수 있으니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는 압박을 가해주시기를 청했고, 학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는 진로상담을 청하며 “선생님, 00이 공부시켜야죠. 이 중요한 시기에 음악이 웬 말인가요? 선생님이 설득하셔서 아이가 음악 한다는 것을 포기하게 해 주세요.”라고 청했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음악 선생님을 찾아가서는 ‘가능성 전혀 없음’이라는 멘트를 꼭 날려달라는 치사한 부탁까지 했더랬다.

당시 내 마음으로는 오직 이 모든 방해들이 ‘아이를 위해서’라는 선한 의도라고 생각했다. 착각도 정말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학업 성적이라는 단 한 가지 잣대만을 들이밀며 내 아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의 노력을 폄하하고, 아이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로 인해 아이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지지해주는 사람은 없는 환경에 처해야만 했다. 아이의 주변에는 오직 훼방꾼들만 가득했다. 이런 상황은 몇 달이나 계속되었고 자신의 꿈을 가겠다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방해하는 엄마의 훼방질이 반복됐다. 늘 불꽃 튀기는 두 모자 사이에서 남편과 딸은 눈치 보느라 꽤나 힘들었으리라.      

몇 달간 불꽃을 튀기고 5월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예쁜 딸은 부모님을 위해 쓴 편지와 선물을 건네며 마음을 표현했지만 속 좁은 엄마인 나는 ‘이렇게 나랑 갈등을 겪은 아들이 과연 뭘 해줄까?’ 하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서로 감정이 많이 상한 시기였던 만큼 아무것도 안 할지 모른다고 예상도 했고 그래서 속이 좀 상해도 의연하게 넘어가야지 다짐도 했다. 하지만 막상 아들이 정말로 어버이날에 아무것도 하지 않자 섭섭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며칠 뒤, 무심하게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고 안에서 버릴 것들을 찾던 중 나는 꽃무늬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설마…?’ 하며 반가운 마음에 얼른 봉투를 열었다.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전 집도 많이 나가고 공부 안 하고 기타만 치고, 희망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전 열심히 살고 있고, 누구보다 목표와 꿈이 확고하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또 자꾸 학생이 본분이 시험 잘 보고, 공부 잘하는 거라고 압박하시는데, 그러면 다 공부 잘합니까? 예고 떨어지면 그때 공부하겠습니다. 어버이날 편진데 제 넋두리가 되었네요.

이제 내용을 좀 바꿔봅니다. 절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키워 주셔서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늙어서 이런 것도 못쓰겠지만 썼네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2018.5.2  000 올림                                                                                                        




일어보니 기가 찼다. 분명 학교 수업시간 중 어버이날 감사편지를 쓰라고 하니 마지못해 쓴 듯했다. 솔직하게 제 심경을 써내다 보니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이 거침없이 휘갈겨 써내진 것이리라. 막상 하고픈 말을 다 쓴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감사편지의 목적에 맞게 마무리해야겠다 싶어 틀에 박힌 문구로 급히 마무리를 한 듯했다. 나도 모르게 ‘참…, 너답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차마 전하지 못한 이 분노의 편지를 써 내려갔을지 너무나 이해가 갔기에 가슴이 먼저 쿵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새삼 지난 몇 달간 아이의 꿈에 훼방을 놓기 위해 행했던 갖가지 행적들이 머리를 스쳐가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대로 편지를 다시 아들의 가방 속에 넣어두었고, 며칠이 더 지난 뒤, 아들은 제 손으로 부모님께 늦은 어버이날 편지를 전달했다.

아들의 편지를 본 뒤에야 나는 아이의 하루하루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틈만 나면 못하게 하려는 마음을 내려두고 지켜보기 시작한 아이의 하루는 그동안 뭔가 씌었던 것인지 너무나 달라 보였다. 아이의 ‘절실함’과 ‘성실함’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식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1월부터 5월까지, 분명 지겨울 법도 하건만 아이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을 꼼짝 않고 앉아서 기본 음계를 연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본 음계만을 반복하며 몇 시간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남들은 몇 년에 거쳐해야 하는 것을 본인은 몇 달 만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이의 경이로운 집중력을 끌어내고 있던 것이다.      

‘대체 나는 뭘 위해서 그렇게 훼방을 놓았던 걸까?’,‘이건 내가 말린다고 그만둘 일이 아니구나.’ , ‘아이가 스스로 정말 가보겠다 결정한 길이라면 이건 훼방이 아니라 응원을 해주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에 떨어지면 공부를 하겠다,’라는 아이의 결연한 멘트는 ‘그래, 겨우 그 몇 달을 못 기다릴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며 나와 담임 선생님을 수긍하게 만들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공부 스케줄이 뒤처질까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니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만의 잣대를 내려두고 아이 자체를 보기 시작한 뒤에야 내 눈에는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내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계획한 목표를 이룬 뒤, 맞게 된 부모님의 생일에 아이가 쓴 편지와 연주 영상이 담긴 USB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부모님께     

아들입니다. 편지를 써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뭐라 시작할지만 10분은 고민했네요.

생일이 겹쳐서 한 편지에 말을 같이 담으려 합니다. 작년에 바빠서 생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거 두 분 다 정말 죄송하고, 때문에 아무도 못줄 선물과 아무나 줄 수 있는 편지를 준비했습니다. 지난 1년은 저를 낳으시고 겪었던 생일들 중 가장 특이한 경험들이 많았던 1년 같습니다.

나름 가족 모두가 꿈에도 가까워지고, 새로운 것도 많이 해보고, 다 순조로웠던 건 아니지만

떨어져 있더라도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란 걸 느낀 한 해였습니다.

아빠한테는 항상 감사합니다. 다른 친구들 얘기만 들어봐도 제가 얼마나 큰 신뢰를 얻고 있는지, 얼마나 부담 없이 음악을 하는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다른 거 다 없더라도 절 믿고 지원해주신 거에 감사하고, 항상 부족하지만 그 신뢰 보답하겠습니다.

엄마한테는 미안합니다. 속 썩이는 일이 지금껏 더 많았음에도 하루 지나면 다시 걱정해주고, 표현은 한 번도 안 했지만 언제든 굳건히 서 있는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진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음악 할 수 있게 선물은 두 분 같이, 저만 줄 수 있는 걸 준비했습니다.

조금 난해하고 조금 정서에 안 맞아도 잘 들은 척해주세요. 그게 제가 앞으로 걸을 길이니까. 그리고 녹음 통기타 120만 원짜리로 정했습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2019. 10. 1. 아들                                                                                                                       



아들은 편지의 마무리를 편지를 가장한 청구서로 맺고 있었다. 다시 한번 허허 웃고 말았다. 작년 어버이날에 곧바로 전달하지 못했던 편지와는 내용적인 면을 비교했을 때 확연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편지였다. 편지 곳곳에는 부모님에 대한 아들의 진심 어린 감사가 느껴졌고, 떨어져 지낸 시간으로 느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마음까지 담겨있었다. 게다가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낸 선물까지, 새삼 아들의 알뜰함까지 기특해 보이는 선물과 편지였다. 진심으로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 시기를 지날 때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스스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게 돕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진정한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눈과 그것을 인정해주는 마음, 그리고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했던 거다. 강요가 아닌 신뢰로 맺어진 부모 자식 관계만이 아이를 성장시키고 부모를 성장시킬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내가 그렇게 부모로서의 성장을 몸소 느꼈기에, 또 여전히 느끼며 지금도 성장하는 나 자신을 보며 무한한 감사를 체험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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