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는 엄마가 아니라 무슨 학습매니저 같아.
애들 데리고 맨날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야?
너희 집 애들 정~말 피곤하겠다.
주말에 쉬기는 하는 거야? 적당히 좀 해~”
-정보의 여왕, 체력을 겸비하다
지금은 고2가 된,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때의 어느 날이었다. 내 SNS를 보던 친구가 '적당히 좀 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 그래? 그래 보여?”라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네가 아직 애가 없어서 그렇지. 어디 한번 낳아봐라. 네가 엄마가 돼봐야 날 이해하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 이만큼이나 우리 애들을 위해 이것저것 하고 있어요. 나 진짜 좋은 엄마예요. 알아주세요.’라며 자랑 섞인 마음으로 올려두었던 것이 들킨 것 같아 뜨끔 했다.
친구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지적을 듣게 된 나는 내 SNS 게시물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부지런히 정보를 찾은 기록들과 주말이면 각종 전시회, 체험관, 공연장으로 아이들을 데려간 기록들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독서, 한자, 영어 등 인증시험과 각종 대회에 참여시킨 기록들도 틈틈이 끼어있었다. 그러면서도 게시물에는 ‘내가 극성 엄마라는 걸 아무도 모르게 해 주세요.’라는 소심한 속마음이 들어간 코멘트들이 남겨져 있었다. 다시 보고 있자니 어찌나 민망하던지… 이렇게 속이 뻔히 보이는 코멘트를 당시에는 왜 몰랐던 걸까?
'넌 엄마가 아니라 학습매니저 같아.’라는 친구의 말로 나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기 전까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이란 아래와 같았다.
[ 아이들이 걸려 넘어질 것 같은 돌이 있다면 미리 치워주는 엄마. ]
[ 내가 먼저 겪었던 시행착오를 내 아이에게는 겪게 하지 않는 엄마. ]
[ 아이 인생의 로드맵을 미리 짜주는 엄마. ]
나는 스스로 세워놓은 위 기준에 딱 맞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 그게 오류였다. 나는 내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놀랍게도!
나는 교육과 관련된 각종 도서와 육아잡지, 방송에 나오는 자녀교육 성공담을 보면서 저들의 모습이 곧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조금만 따라 하면 내 아이도 저렇게 키울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고, 내 아이들을 다른 누구보다도 성공의 길로 이끌 자신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로부터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퍼뜩 떠오른 것은 ‘내가 생각한 반응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과 ‘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평소에도 직설적인 화법을 주로 사용하던 친구의 말은 앞에서 듣기엔 불편하지만 돌아보면 맞는 말이었기에 이날 들은 말은 며칠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나는 친구로 인해 생긴 불편한 마음 덕분에 나 자신이 세워두었던 ‘좋은 엄마’와 ‘좋은 교육’에 대한 기준과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게 되면서 다시 한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평소 지나치게 샌님 같아 걱정이던 내 아들이 같은 반 친구를 바닥에 눕혀두고는 흠씬 두들겨 팼다는 것이다! 나는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며 ‘애 안에 억눌린 마음이 쌓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몹시 착잡했다.
-그저 모든 게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저 ‘좋은 엄마’,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엄마’가 되리란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아이를 위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려고 노력했다.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일까? 나는 늘 궁금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 즉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았던 길인 만큼 나는 두려움이 컸다. 나는 학교에서 부모가 되는 수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육아에 관한 교육 역시 어디서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친정엄마를 통해 듣는 것 외에는. 솔직히 얘기하건대,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에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두려움의 크기만큼 수많은 육아서적과 자녀교육서를 읽으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움만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인 내게 있어 아이들은 단 한 번도 풀어본 적 없는 과제들을 매일같이 던져주는 존재들이었다. 울고 떼쓰는 아이를 달랠 때마다 큼지막하게 느껴지는 좌절감에 초보 엄마인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둘째가 생겼을 때, ‘큰아이를 키우며 단련되었으니 이젠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이런 내 생각을 비웃듯, 둘째는 둘째대로 새로운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이 어려운 숙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교육’이라는 것을 시작할 나이가 되자 내 모든 관심은 ‘좋은 교육’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수집한 정보들을 나와 내 아이들의 삶에 열심히 욱여넣었다. 그리고 내가 입력하는 값만큼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열심히 수집한 정보들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내 아이들을 쉬지 않고 몰았다. 나는 무엇보다도 체험의 길로 아이들을 내몰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하더라도 이 과정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기에 나는 내가 ‘좋은 엄마’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아이들을 몰아세우던 과정들이 점점 순탄치 않게 흘러가는 일이 많아져갔다. 내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완벽하게 좋은 엄마가 되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엄마’로서 내가 정말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서툰 엄마가 놓치고 있었던 두 가지
하나는 인내심 부족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도록 충분히 기다려준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방향,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끌고 가기에만 급급했다. 그랬다. 아이는 스스로 잘한 것이 아니라 잘 끌려와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것이 아이가 잘하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가 직접 해야 할 것까지 모든 것을 도와주고 대신해주는 엄마였다. 그렇게 내 아이가 스스로 쌓아가야 하는 경험치를 막아서고 있는 엄마였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시 내 삶에 ‘내’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생긴 뒤로 내 삶에는 ‘엄마’로서의 나만 존재했다. ‘나 자신으로서의 나’는 없었다. 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돌볼 필요가 있었으나 나는 그걸 몰랐다. 늘 타인의 시선이 더 중요했고, 타인과의 비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을 내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의 기준으로 삼고 거기에 내 삶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남의 시선에 기준을 맞추고 있으니 내 아이와의 행복한 관계가 가능할 리 없었다. 다른 가정에서 보기에는 ‘괜찮은 엄마’로 보였을지 모르나 내 아이에게 있어서 나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는 엄마’, ‘내 기준만 있는 엄마’였던 것이다.
-행복한 엄마가 좋은 엄마!
엄마가 먼저 ‘행복한 엄마’로서 존재한다면
이는 곧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있어서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엄마가 된 지 십 수년이 지난 뒤에야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엄마’란 절대 타인의 시선에 기준을 두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내 아이의 삶을 바탕으로 기준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행복한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아이를 고려하지 않은 ‘내 기준만 있는 좋은 엄마’는 절대로 ‘좋은 엄마’도 ‘행복한 엄마’도 될 수 없다. 아이가 직접 경험해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에 감동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엄마’가 되는 길이 아닐까? 그리고 엄마가 먼저 ‘행복한 엄마’로서 존재한다면 이는 곧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있어서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 아닐까? 우리 모두 나와 내 아이를 위해 어느 질문이 맞는 것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시간이다.
<오디오 클립_
엄마 백신 "너는 엄마야, 학습 매니저야?">
<관련 도서_ 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