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개학 연기가 내게 선물해 준 시간
뜻밖의 데이트
코로나 19로 개학이 연기된 게 벌써 세 번째이다. 오늘내일 중으로 추가 개학 연기가 발표될 것 같다.
지금껏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학교도, 학부모도, 아이들조차도 당황스럽다. 의도치 않게 겨울 방학이 3개월이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엔 휴교라니 좋아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심지어'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정말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은 코로나로 인해 불편한 것 투성이 지만 그 와중에도 가끔 생각지 않은 선물 같은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 선물 같은 하루를 기록해본다.
'처음' 생일의 기억
작년, 남양주 집을 떠나 본인의 선택으로 서울 학교로 진학을 한 아들. 올해로 18세가 되는 이 녀석의 생일은 3월 27일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12시간 진통이 무색하게 '내 머리 커서' 제왕절개로 세상 빛을 본 날이 말이다.
사실 생일이 별거냐 싶은 게 나의 생각인데, 그래도 무언가 '처음'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때에는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아이의 '처음' 생일인 돌잔치의 기억이야 당연히 특별하다. 연필을 집어 들었던 기억. 하지만 지금 이아이는 기타를 잡고 있으니 돌잡이는 미래 직업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그해의 생일도 특별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 친구들을 모두 모아서 대규모의 생일 파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실내 놀이터인 PLAY TIME에서 반 친구와 엄마들을 모아서 거하게 행사를 했더랬다. 우연히도 생일이 같은 날인 여자 친구와 공동 생파라 나름 규모가 컸고 아이들에게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후에 비슷한 형태로 반 친구들이 돌아가며 생일 파티를 했었으니.
하지만 얼마 전 아들은 그 생일파티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고 했다. 선물을 받고 푸는 그 잠깐의 순간만 즐거웠던 거지 굉장히 피곤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나 보다. 그 말을 들으니 엄마의 만족으로 '돈지랄'을 했다는 허무한 결론에 이른다. 그래도 무언가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 좋은 경험이었던 걸로 애써 위로해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집을 떠나고 '처음' 생일이었던 2019년 3월 27일. 또다시 '처음'이라는 생각에 무언가를 특별하게 챙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 마포에 있는 연습실로 깜짝 방문을 했더랬다.
하지만, '바쁜 애 에게 용돈이나 보내주고 말걸...' 후회하면서 돌아온 그날의 생생한 기억은 아래의 포스팅에 담겨 있다. 이날 이후 얻은 교훈이라면, 생일이어도 굳이 찾아가는 '헛짓'은 하지 말자였다. 그 또한 내 마음 편하자고 아들 스케줄은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던 거니. 통장으로 용돈을 보내주는 걸 더 반길 것이라는 '웃픈' 결론을 내렸다.
생일 축하해주러 갔다가 복잡 다단한 생각을 품고 돌아온 그날, 그리고 저녁의 반전 메시지까지 담긴 포스팅!
18세 생일 아침부터 배달되어 온 것은?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
아침부터 눈을 뜨고 미역국을 끓이는데, 이른 시간부터 초인종이 울렸다. 잠시 후 출근 전인 남편 손에 주어진 것은 주민등록 발급 통지서. 세상에... 마냥 애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주민증을 받을 나이가 되었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 순식간에 아들의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들이 스쳐간다. 이제 정말 어른이 되는구나.
방학 동안에만 통학을 위해 머무르는 서울 할머니 댁이 아닌, 남양주 집에서 지내기로 한 게 지난 1월 초이다.(아들은 언제부턴가 우리 집을 '본가'라고 한다. 장가를 간 것도 아니면서. 내참...ㅎㅎ)
계획대로라면 2월 말에는 이미 서울 할머니 댁으로 갔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집에 머무르고 있다. 레슨 다니기 편하게 서울로 갈 거냐 물으니 그냥 가족이 함께 있는 집이 좋단다.(떨어져 지낸 1년 동안 가족의 소중함과 편안함을 조금 느꼈나 보다.)
고교에 진학 후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되면 이제 대학 진학, 군입대 등 아들과 함께 생일을 보낸 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한 개학 연기는 이런 생각지도 않은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평소 같으면 집에 있었더라도 친구들을 만나느라 얼굴도 보기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외출도 마음이 편치 않으니. 자연스레 생각지도 않게 18세의 생일날 아들과 보내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야말로 내겐 선물 같은 시간이다. (아들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같기를 바라며)
코로나 휴교가 준 선물 같은 하루
아이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진지하게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드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성장했구나 라는 생각에.
"요즘 뭐가 가장 힘드니?"라는 질문에 "불안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래가 불확실한 청소년들의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지금 학교를 가지 않아 좋은 점은 거의 없고, 기타 연습을 위해 매일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아이도 답답한 모양이다. 그리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태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조금만 연습을 쉬어도 도태될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틀에 박힌 위로나 교과적인 멘트는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아이에게 해준 말은 다음과 같다.
아들은 쓴 맛이 강한 녹차 라떼를 끝까지 마시지 못했다는.
"지금 당장은 어떤 계획을 세우기 어렵지. 그건 어른인 엄마도 마찬가지니 너는 오죽하겠니. 그저 방향성과 큰 계획의 덩어리만 잘 유지해도 훌륭해 보여 지금은.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너는 잘 될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엄마가 지켜본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가는 아이니까. 지금 잠시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라고 해도 아주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건 분명해. 네 또래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불안하지 않은 친구들은 없을 거야. 불 확실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불확실한 속에서도 나는 잘 될 거라는 긍정 언어를 품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 같아. 사람은 말한 대로 되더라고. 엄마도 마흔이 넘어서 깨달은 것들이 많으니 지금 뭔가가 안된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뭐든 다 때가 있는 거 같더라.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너를 믿어."
아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가는 책 속의 한 구절.
엄마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맑은 안경을 끼고 사랑의 냄새를 풍긴다면 그 자녀들은 무조건 잘 살게 되어있다. 올바른 사랑을 받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생명력이 강하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윤우상 <엄마 심리학> 中 '엄마 색안경'부분
맑은 안경을 끼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면 강한 생명력의 아이로 자랄 것으로 믿는다. ^^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대화의 문제점은 무언가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치중하느라 중복된 말을 많이 한다는 거다. 오늘의 긴 대화는 그간의 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실습의 자리와 같은 느낌이었다. 최대한 그렇게 느끼지 않고, 아이의 불안을 해소해 주는 대화이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니.^^
코로나로 인한 휴교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전보다 많아지며 대화도 달라짐을 느낀다.
이전의 대화들이 교육 적어야 한다는 나의 불순한 의도?로 인해 불편했던 마무리로 끝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정말 친구가 된 느낌이다.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바라보는 여유가 생겨서일까?
인생 선배로서 먼저 느낀 점들을 전해주 지만 꼰대적인 느낌은 지우며 친구 같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려고 노력했는데, 이 노력을 알아차렸을지 궁금하다.
그렇게 꿈같은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아들은 왕복 세 시간 거리의 레슨을 받으러 이동했고,
내게 선물과 같은 하루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날의 가장 큰 수확?은 프로필 사진을 남긴 것이다.
하루를 정리하며 생각해본다.
앞으로 살면서 '처음'의 의미를 가진 이 녀석의 생일이 몇 번이나 될까?
아마도 군입대 후 맞이하는 처음 생일과 결혼 후 맞이하는 처음 생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 같진 않더라도 이렇게 생일날 아이와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보너스 같은 시간이 앞으로 더 있기를 바라본다.
예상컨데 이젠 생일날 얼굴 보기도 어려울 듯 하지만, 바라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준 멈춤의 시간들이 꼭 힘든 것만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 다시금 뒤를 돌아보게 만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손 모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