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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다움 Apr 08. 2020

몰입과 성취가 게임보다 즐거운 것?

평범한걸 거부하는 레고 놀이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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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오며 ‘몰입’을 경험하는 때는 언제였을까요?
한번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볼까요?

 

떠오르는 순간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때 그 몰입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번 되짚어보도록 해요. 무언가에 미쳐 있었던 그 시간, 그 ‘행복한 몰입’의 순간이 분명 나를 성장시켰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의 대상을 아이로 바꾸어 볼게요.



 과연 내 아이는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한 몰입’을 하고 있었을까?      



어느 날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아빠, 새 레고가 나왔는데 이건 스타워즈를 주제로 만든 거래. 이거 꼭 사야 돼.

왜냐하면 여기에 지금 내가 시리즈로 모으는 피겨가 들어있어.

얘가 있어야 완성이 되니까 꼭 갖고 싶어.

대신 책 30권 읽을게요.”     

 

엄마의 반응까지 계산에서 잔소리할 여지까지 제거한 아들(당시 초3, 현재 고2) 녀석의 말에 나는 “콜!”을 외칠 수밖에 없었지요. 비슷비슷한 블록들에 손가락만 한 인형 몇 개만 바뀐 것 같은데 몇 만 원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또다시 아들에게 설득당한 것입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 시기를 거치는 동안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레고 조립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보통의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는 레고를 구입하는 데에는 비교적 다른 장난감들에 비해 관대한 편이었습니다. 완성된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 볼 만한 결과물이 나와 ‘돈이 아깝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당근’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레고로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조립을 원 없이 해오던 어느 날, 큰아이가 레고로 ‘스톱모션’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때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날이었어요.



‘스톱모션’이란 정지된 사진 수백 장을 연결해 하나의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말합니다. 마침 아이에게는 아빠가 해외출장을 다녀오면서 선물해준 디지털카메라와 저렴한 노트북이 있었습니다. 즉 하고픈 일에 필요한 도구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상태였지요.

스스로 만든 스튜디오 작업장 / 영상 편집으로 사진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는 모습.



하다 하다 이제 레고 옷을 갈아입히기 까지!!


진지하게 레고 피규어 커스텀중인 모습( 피규어의 옷을 화이트로 지우고 원하는 옷을 그려서 바꾸어 주는 작업중인 모습))


큰아이는 내게 뜻을 비치자마자 바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이제 레고로 별 걸 다하는구나.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필독서라도 한 권 더 읽을 것이지.’라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이에게 시킬 것만을 생각하느라  아이의 ‘몰입의 순간’을 캐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작업에 들어간 아들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는 이리저리 찾아보며 낑낑거리더니 얼마 후 내게 결과물을 내밀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 보게? 정말로 피겨의 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장면을 완성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요?!!!




      

“오~ 대단한데?”라고 말하며 나는 정말로 순수하게 아이의 결과물에 감탄했습니다. 이런 내 반응을 본 아들의 뿌듯해하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큰아이의 스톱모션 만들기는 겨울방학 내내 계속됐고, 아들은 정해진 공부시간을 제외하면 방에 틀어박혀 도무지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방 안에서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에 궁금해서 한 번씩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어느 날은 종이박스로 스튜디오를 만들고, 또 어느 날에는 조명까지 달아 혼자 방 안에서 끙끙거리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런 노력이 성과를 보인 것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의 스톱모션은 양손을 들고 내리는 장면에서 회전을 하는 장면으로, 또 걷는 장면으로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제작 영상


종이박스로 만든 지지대와  스타워즈 스튜디오



늦은 밤, 원하던 장면을 하나씩 이루어나갈 때마다 아들의 입가에 번지던 그 미소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방학이 끝날 즈음 아들의 ‘스톱모션’이 완성되었고, 아들은 피겨가 옷을 갈아입으며 변신하는 장면까지 찍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결단이 선사한 행복한 몰입의 시간     


멋진 스톱모션이 탄생한 대신 당연히 학교에서 내준 방학숙제는 하나도 하지 못했지요. 당시 내 기준에서 아이가 방학숙제를 하지 않고 개학을 맞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뭔가에 집중하며 하나씩 하나씩 성취해가는 그 모습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했기에 이를 그냥 놓아두는 결정을 했습니다.(나름 파격적인? 용감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본 적 없는 놀라운 집중력과 성취도를 보이는 아들의 모습에 나는 ‘스톱모션’ 만들기를 방학숙제 대신하게 해 주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행복한 몰입의 시간’을 주고자 했던 거지요.


정해진 숙제를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엄마, 방학숙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엄마인 내게 있어서 이는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개학날에 직접 만든 스톱모션 영상이 담긴 USB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아들을 학교로 보낸 뒤 따로 담임 선생님께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번 방학에는 내주신 과제를 하지 못했어요. 대신, 이번 방학 때 스스로 스톱모션을 만들어보겠다고 끙끙거리던 것들을 USB로 담아 보냅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마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상이 짧으니 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감사하게도 담임 선생님은 아들이 만들어간 영상을 반 아이들과 다 같이 볼 수 있게 해 주고 그 과정과 성취도 많이 칭찬해주었다. 이 일은 뭐든 궁금하면 해보는 성격이던 아들이 이후로도 거침없이 도전하는 태도를 갖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행복한 몰입이야말로 부모가 아이의 삶에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되는 거죠.

몰입이란 ‘어떤 일에 온 정신이 빠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무언가에 몰입할 때, 사람의 뇌와 몸 상태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욕과 집중력, 창의력이 최고조에 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경지에 빠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긍정의 심리학(Positive Psychology) 분야의 선구자인 헝가리 출신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 몰입 이론‘을 통해 과제와 능력의 관계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표를 보면 처음에는 높은 과제 수준에 비해 낮은 능력으로 ‘불안’의 영역에 있던 것이 계속 나아가는 동안 능력이 향상되고, 결국에는 ‘각성’을 거쳐 ‘몰입’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개인의 높은 수준의 능력과 높은 수준의 과제가 만나게 될 때 몰입을 경험하게 되면 최상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 몰입의 경험은 행복감의 원천이 되어 이후로도 높은 성취를 낼 수 있게 만드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아이의 학업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학업에 대한 불안과 욕심 때문에 내 아이가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면 좋겠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전해봅니다.  행복한 몰입은 아이를 성장시킵니다. 또한 앞으로의 삶에서 마주칠 높은 허들들을 뛰어넘을 동력원이 되기도 하지요. 무엇보다도 행복한 몰입은 아이가 삶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크나큰 선물이자 축복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아이들에게서 이 행복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고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본 이후 이 영상 제작을 끝으로 레고는 박스 안에서 잠자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어 서울로 가지 못하고, 집에 머무르는 아들이 엊그제 갑자기 레고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었다. 추억의 사진과 영상을 되돌려 보며 옛날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최근, 본인의 연습이 수월치 않고 무언가 막히는 기분에 약간의 슬럼프에 빠져있던 아이는 이 추억을 되새기며 자신감을 다시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사진과 영상을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너무 아까웠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록을 남긴 스스로를 칭찬해본다.




BONUS!


<몰입의 결과, 스스로 만든 레고 스톱 모션 2년 차의 작품>


https://youtu.be/C_iB0 nFT0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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