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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다움 Mar 28. 2020

"원장님, 오늘 우리 아이가 자퇴하기로 했어요."

잠시 멈춤, 그 선택에 대하여


 


                                                            

“원장님, 오늘 담임선생님 상담했어요.
제가. 놀라지 마시고. 학교 자퇴하기로 결정”     


새 학기의 시작으로 한참 분주하던 2019년 3월의 마지막 주 아침, 친한 지인으로부터 평소와 달리 두서없는 느낌의 메시지가 왔다. 지인의 복잡한 심경이 물씬 묻어나는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걱정했던 상황이 현실이 됐구나.’라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메시지를 보낸 지인의 아이, 민호(가명)는 내 아들과 동갑내기인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치는 높은데 성적은 나오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지만 빠듯한 하루하루가 계속되어 민호는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다. 부모와 아이의 갈등은 대부분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시간과 부모가 허용해주는 시간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해결이 나지 않는 악순환으로 갈등이 반복되면서 아이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떨어지고, 그렇게 아이는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입는다. 민호 역시 결국 새로 입학한 학교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퇴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을 더는 버티기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퇴는 결코 가볍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민호를 위해 이제껏 지인이 해온 노력을 아는 만큼 나는 더더욱 자퇴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메시지에 마음이 무거웠다.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공감대

민호의 엄마와 나는 일로 만난 사이였다. 사는 지역이 달랐기에 친해지기 전에 나눈 대화들은 대부분 일과 관련된 것들이었지만 우리에게는 큰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동갑내기 아이로 형성된 공감대는 서로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를 금방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나나 민호 엄마나 아들들이 사춘기의 정점이라는 중2였기에 어느 날은 내가 울며 전화하고, 또 어느 날은 그녀가 울며 내게 전화해 위로를 주고받다 보니 그만큼 친분이 두터워진 것이다.

심지어 이놈의 아들들은 엄마 속 긁는 법을 공유라도 하는지 참 비슷하게도 우리를 괴롭혀서 더욱 그랬다. 생활권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는 것도 나와 민호 엄마가 친해지는 데에 일조했다. 서로의 아들이 비교대상이 아니었던 만큼 우리는 더 편하게 각자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아이들 역시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음에도 서로의 존재를 잘 알 정도였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며 지내오던 중 아들들이 고등학생이 되던 시기에 일이 터진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 아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 예술고로, 민호는 강남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자녀가 새 학년이 된 것을 축하하고 격려했다. 설마 하니 자퇴라는 소식이 들려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민호네 집의 남다른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염려하던 일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민호네 집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등장했던, 일명 예서 책상이 드라마 방영 훨씬 이전부터 자리 잡고 있는 집이었다. (예서 책상:  강남에서 유행했던 사방이 꽉 막힌 독서실 책상. 주변을 차단해 집중이 매우 잘된다고 하는 상당히 고가의 책상이다. 혹자는 ‘사도세자 책상’이라고도 칭함.) 민호의 아버지는 남다른 교육열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자녀교육을 위해 철저한 관리와 정보수집에 열성을 다했다. 그러니 자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부모의 마음 역시 얼마나 괴로웠을까.


일명 예서 책상 / 사진출처 - 가구 쇼핑몰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막상 민호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차분했다. 나는 다행이라는 마음 반,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 반으로 ‘요즘은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새롭게 자기만의 길을 찾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니 민호의 자퇴가 너무 큰일이라거나 걱정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라는 말로 위로를 건넸다.

“그동안 민호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하루하루에, 부모님과 툭하면 부딪치게 되는 상황들에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빡빡하게 정해진 일전대로만 생활하는 게 많이 버거워서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은가 보네요. 너무 크게 걱정하거나 힘들어하지 마세요. 민호는 분명 자기 갈 길을 스스로 다시 찾아낼 거예요.”

나는 ‘자퇴라는 결정에 이르기까지 분명 가족 모두가 힘들었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다면 그 길을 지지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는 말 이상의 위로를 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나는 내 일정대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우려는 순간,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너무너무 슬프네요 원장님.   


짧은 메시지를 보는 순간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나는 급히 민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호 엄마 왈, 하루 종일 바빠서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다고, 정말 온종일 괜찮았다고 한다. 그런데 밀린 업무를 다 처리하고 늦은 시간에 혼자 사무실에 남으니 그제야 슬픔과 공허함이 밀려오더라는 것이다. 민호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나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내 마음까지 짠했다.

그녀는 분명 엄마로서 민호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저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수많은 노력들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까지 내 아이를 위해 해왔다고 생각한 그 모든 금전적, 시간적, 심적 투자와 노력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맞게 되었으니… 허무함이 밀려들지 않는다면 이상하리라.

자퇴를 결정한 민호의 마음은 한 짐 내려놓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민호가 내려놓은 마음의 무게는 민호의 부모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그녀가 느끼고 있을 상실감을 위로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이 힘드셔서 어떡해요….’라는 말밖에 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영상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 제가 영상 하나 보내드릴게요. 이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늦게라도 보시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실 것 같아요.”




내가 그녀에게 보내준 영상은 ‘김미경’ 강사가 ‘어쩌다 어른’이라는 방송에 출연한 강의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김미경’ 강사는 자신의 아들이 예고에 합격했다가 자퇴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시간에 대해, 부모로서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 보다 나은 엄마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들이 예고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 남편과 식사 도중 우연히 보게 된 이 영상은 나와 남편에게 아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전환점을 주었다. 내게 도움이 되었던 만큼 민호 엄마에게도 이 영상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됐던 것이다.

자퇴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된 아이를 끌어올려 다시 바로 세워준 김미경 강사의 이야기는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정말 현명하게 대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특히 내가 감명 깊게 본 부분은 ‘아이가 마음에 땅굴을 파서 지하 10층으로 들어가 버리면 부모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대목이었다. 한번 자문해보자. 당신의 아이가 마음속에 굴을 파고 그 아래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김미경 강사는 이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을 제시했다.     


건강한 부모라면, 아이를 다그치기보다
아이보다 더 낮은 층인 지하 11층으로 내려가
아이를 받쳐주어 상처 입은 아이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스스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나는 부디 이 영상이 상처 입은 영혼을 마주하고 있는 민호 엄마에게 시기적절한 영상이길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민호 엄마로부터 다시 메시지가 왔다.

민호 엄마는 밤새 남편과 함께 영상을 돌려보며 펑펑 울었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민호에게 ‘네 자퇴를 엄마 친구들이 알게 하지 마.’라고 말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민호를 포함한 민호의 형제들은 소위 말하는 엄친아들이었다. 민호 엄마는 늘 그런 자식들은 은연중에 늘 자랑거리로 삼아왔기에 자퇴한 아들이라는 것이 체면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아이의 입을 막는 말을 했던 것이다.

민호 엄마는 이제껏 자신이 잘못 갖고 있던 기준들에 아이가 맞추도록 강요하던 지난날을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제야 진짜 부모로서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알겠다며 마음의 돌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영상 내용 하나하나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내게 감사를 전했다.


현재 민호는 청소년에게 허락된 범위 내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민호는 지금, 이전까지 엄마 아빠가 제한해왔던 울타리를 뛰어넘어 상상도 못 할 만큼 그 크기를 넓히며 성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민호에게 나타난 큰 변화는 눈빛의 변화다. 매섭던 눈빛이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돌아왔다. 눈빛의 변화는 곧 아이의 마음이 변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닫힌 마음이 얼마나 열려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민호의 이러한 변화에는 민호의 엄마 아빠가 ‘너를 존중한다. 그리고 너의 존재를 인정한다.’라는 메시지를 건넨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아무리 흔들리는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부모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와 같이 흔들려버리면 아이의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없어진다. 민호의 현재 모습은 그런 부모의 노력과 진심이 민호에게 고스란히 스며든 결과다. 민호의 부모 역시 민호가 아니었으면 절대 겪어볼 수 없었을 상황을 겪고 한 걸음 성장한 것이다.


나는 신이 한쪽 문을 닫을 때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을 열어둔다는 말을 믿는다. 지금 민호는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인생은 길고 그만큼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1~2년의 방황은 아무것도 아니다. 남들과 다른 시간표,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새롭게 걷게 되는 그 길에 무엇이 있을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먼 훗날, 아이가 ‘그때 내가 겪은 일들이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었다.’라고 스스로 얘기할 날이 오리라. 나는 현재 민호를 통해 그 변화를 두 눈으로 보고 있다.      

‘자퇴’는 학교라는 사회를 떠나는 일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 ‘자퇴=부적응’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퇴’는 절대로 실패를 의미할 수 없다. 물론 입버릇처럼 ‘자퇴하고 싶다’는 아이들을 향해 자퇴를 독려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지금의 상황에 놓인 민호처럼, 이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퇴란 아이가 스스로를 관찰할 기회를 가져보게 만드는 시간이자 쉼표, 즉 방향 전환의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이가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관찰’과 ‘실천’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에 또 다른 기회를 얻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런 일을 겪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마음 내려놓기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따라 앞만 보고 달리는 열차 안에 있을 때 아이와 부모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저 내달리기만 하는 이 길이 아이에게 맞는 것인지, 열차 안에서가 아니라 열차 밖에서 꽃과 나무를 보는 것이 맞는 건 아닌지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쉬어가는 상황이 생겼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중심을 잡아라. 방황하는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 굳게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아이의 발판이 되어주어 스스로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흔들리는 아이를 위해 부모라는 뿌리가 해주어야 할 역할이다.                    

    


<위 에피소드가 실린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05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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