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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다움 May 17. 2020

내 아이는 정말 꿈이 없는 걸까?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 아이에게 맞는 기준을 찾아주세요

100명의 아이들을 한 방향으로 뛰게 하면 1등은 한 명 밖에 나오지 않지만, 100명의 아이들을 각자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게 하면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다.
 - 이어령 / 젊음의 탄생 中     





"원장님, 아드님은 어느 고등학교에 보내실 예정인가요?"    


“글쎄요...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지요?” 연수(가명)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당시, 연수 어머니는 중2 딸을, 나는 중3 아들을 둔 시점(현재 고2)이었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큰아이의 선택을 지지해주기로 결심을 굳혀가던 시기였기에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답한 것이다.


사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원래 큰아이를 보내고 싶은 고등학교는 따로 있었다. 아이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숙사가 있는 특목고’가 본래 내가 보내고자 했던 고등학교였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특목고를 선택한 데에는 조금 부끄러운 속마음이 담겨 있었다. ‘너, 이 녀석, 어디 한번 집 떠나서 부모님의 소중함도 느껴보고 전국에서 모인 뛰어난 아이들 속에서 네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느껴봐라. 집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정신이 번쩍 들 거다.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엄마한테 고마워하게 될걸?’ 하는 마음이 담긴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특목고’라는 선택을 아이에게 강요해왔다. 그러나 대쪽 같은 아들의 결심에 내 뜻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음을 알게 되자 ‘그래,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좋은 쪽으로 마음을 달래가는 중이었다.       

    


-타인의 선택에 관심이 많은 엄마들의 속내     


“아드님이 진짜 예술고를 가려나 보네요. 그런데요 원장님, 저는 진심으로 아드님이 지금이라도 기타를 그만두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공부해온 게 너무 아깝잖아요. 공부도 잘하는데… 제가 이렇게 안타까운데 원장님 마음은 오죽 속상하시겠어요?”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보이는 연수 어머니의 표정에 살짝 당혹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과하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속도 짐작이 갔다.

연수 어머니는 평소에도 남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나는 그녀를 몇 년이나 지켜보면서 그녀가 처음에 내렸던 결정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바꾸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때문에 그녀의 질문에 담긴 의도가 너무나도 훤히 보였다. 소위 말하는 ‘공부 좀 한다.’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알아보며 그 분위기에 따라 본인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바쁘게 계산중이었으리라.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스스로 결심하고 노력 중이니 이젠 그저 지켜봐 주려고 합니다.” 아마도 내 대답은 그녀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딸, 연수의 꿈이 ‘애니메이션 작가’였기 때문이다.

연수의 꿈은 국내에서 최고로 치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진학해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연수의 책 구석구석에서 그림을 그린 흔적을 발견하고는 했기에 비록 낙서였지만 연수의 그림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수의 부모님은 혹시라도 딸이 ‘불확실한 직업’에 발을 담그게 될까 봐 연수가 바라는 꿈을 심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연수의 어머니는 딸이 허튼짓(그림 그리기)을 하지 못하도록 아이를 감시하고 있었다. ‘여자의 직업은 안정적인 교사가 최고’라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강요와 감시가 계속되자 어느 순간부터 연수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수의 얼굴에는 늘 짜증이 가득했고 눈빛은 반항적으로 바뀌어갔다. 누가 봐도 부모와 심하게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후로도 연수의 어머니는 몇 번 더 내게 우리 아들의 근황을 물었다. 나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이의  눈빛에 반항심이 유독 깊어졌다 느낀 어느 날 그 후 한동안 연수를  볼 수 없었다. 우연히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에 의하면 강렬히 반대하던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의 설명회에 다녀왔다고 한다.


내게 아들에 대한 것을 물을 때만 하더라도 연수 어머니는 남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수준’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내가 보지 못한 사이 딸을 위해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길을 가는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 그녀만의 자녀교육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완강하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토록 반대하던 학교의 설명회에 간 것이 그 증거 아닐까.      



     

-내 아이는 정말 꿈이 없는 걸까?     


우리 아이는 꿈이 없어요. 어릴 때는 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꿈도 자주 바뀌더니 지금은 왜 그럴까요?”     

아이에게 꿈이 없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어머니들을 종종 마주할 때가 있다.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정말 당신의 아이에게 꿈이 없을까요?’ ‘어릴 때는 하고 싶은 게 넘치던 아이가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꿈꾸기를 멈추게 된 걸까요?’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아이는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만을 들이밀며 아이의 꿈을 폄하한 부모에게 적응해버린 것일지 모른다. 아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쓸데없는 짓이구나.’, ‘내 꿈을 엄마한테 이야기해봤자 타박만 받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내 아이는 꿈이 없어 걱정이다.’라고 하소연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네가 하고 싶은 그 일을 하려면 방법은 정해져 있어.”

그러니 내신을 잘 받아서 일단 좋은 대학에 가고 그 뒤에 생각해봐도 늦지 않아.”

지금은 쓸데없는 꿈 꾸지 말고 성적 올리는 데 집중해.”


내 아이가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얘기했을 때,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는지 한번 되돌아보자.(솔직히 이전에 내가 아들에게 했던 말들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할 수 있으니 지금은 공부에 집중해.’라며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해볼 시간조차 주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보자.

‘평균적인 기준’과 ‘안정적인 삶’이라는 세상의 눈높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볼 기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엄마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마치 하나의 색안경과 같다. 엄마들의 눈에 ‘평균’과 ‘안정’을 보장해주는 것이라 믿는 성적과 관련된 게 아니면 아이가 정말 하고파 하는 일이라도 ‘시간 낭비하는 일’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집중하며 ‘나만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정말로 아이의 미래를 위협하는 일일까? 진정 그 길이 위험한 길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고 좋아하게 되는 순간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성장시킨다. 자존감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함을 느낄 때 키워진다. 그리고 이렇게 키워진 자존감이 위기의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이를 헤쳐 나갈 강력한 동력원이 된다.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큰 위기를 넘기는 저력은 부모가 마련해준 지식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체험한 ‘이겨내는 경험’, ‘해내는 경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평균을 따라가면 정말 불안감이 줄어들까?     

‘평균적인 수준’을 가리키는 말을 기준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과 평균에 맞추어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세상의 기준과 평균이 내게 맞는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고 아이들 역시 다 다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내 아이에게는 세상의 기준이라는 것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자칫 맞는지 안 맞는지를 점검하기 못한 채 세상의 기준에 억지로 아이를 맞추려 한다면, 아이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결과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꿈에는 고유성과 창의성이 담겨있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모났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깎아내다 보면 어느새 고유성은 그 모습을 잃는다. 많은 부모들이 다른 집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에 내 아이도 걷게 하는 것으로 ‘부모로서의 불안감’을 잠재우려 한다.


생각해보자.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과 평균에 내 자식이 맞추어 사는 것이 정말 최고일까? 그게 정말 내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할, 내 아이가 또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옳은 삶의 방식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기준들에 아무런 의심 없이 나와 내 아이를 끼워 맞추고만 있던 건 아닌지 한번 되돌아보자. 그리고 그 기준을 내 아이에게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한 번쯤은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입고 살아온 ‘기준’이라는 옷이 과연 내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해보기를 권한다.

지금 입고 있는 그 ‘기준’이 나를 보다 빛나게 해주는 옷이라면 내 아이에게도 잘 손질하고 닦아 물려주면 된다. 하지만 그 옷을 입고 있는 이유도 모르겠고 내 장점도 가리는 옷이라면 과감히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옳지 않을까.          





100명의 아이들을 한 방향으로 뛰게 하면 1등은 한 명 밖에 나오지 않지만, 100명의 아이들을 각자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게 하면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다.
 - 이어령 / 젊음의 탄생 中     


아이를 내가 원하는 쪽을 끌고 오지 못해 괴롭던 어느날 내 머리를 강하게 때린 문구를 보게 되었다.


한쪽에는 앞선 1명이 웃고 99명은 좌절감을 마주하는 길이, 

다른 한쪽에는 100명의 아이들이 ‘각자 뛰고 싶은’ 방향으로 달리면 누구나 앞선 1명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

 

부모로서의 불안감을 잠시 접어둔다면, 

두 갈래의 길 중 아이를 위한 행복의 빈도와 강도를 높일 선택은 어느 쪽일까? 그리고 그 답은 너무 선명했다.


이제 남은건 부모의 선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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