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지다움 Jun 06. 2020

바보 엄마가 되기로 했어요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이





며칠 전 지인과의 통화가 있었다.


모범생 순둥이 아들의 자퇴,  그리고 독립 (이라고 쓰고 장기적 가출이라고 읽는다.).


아직 방황이 진행 중인 그 아들을 지켜보며 그 사이 그녀는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가끔 하소연을 하곤 했다.

"아이를 위해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뭘 해줘야 아이가 방황을 멈출까요?"

라며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런데 해주려고 하면 할수록,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더욱 거리감만 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오랜만에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한것이다. 아들 녀석이 드디어 검정고시를 보러 갔다는 소식을 전하느라. "원장님, 이 녀석 검정고시 붙으면 플래카드 붙일까요? 공부를 안 하고 보긴 했지만요. ㅎㅎㅎ"이라고 말하는 여유에 내 마음도 같이 들떴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원장님, 계속 생각해 봤는데...

저 바보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좀 뜬금없죠. 지금껏 뭘 해줘야 할지를 몰라서 고민했는데, 차츰 저 스스로 답을 얻게 되네요. 이 아이의 방황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구나. 아이가 방황을 마치고 돌아올 때 언제든 돌아와도 그 자리에 있는 '엄마 품'을 가지고 기다려야겠구나.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네요."



"네 그렇죠... 저도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아이들 나이에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기다려 주는 것 밖에는..."



"엊그제 아이가 머리 자를 돈이 없다 해서 돈을 보내주었어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머리는 잘 잘랐니?'라고 물었거든요. 근데 평소 같으면 문자를 씹거나, '네' 단답형 답만 돌아오는데, 이 녀석이 전화를 하는 거예요.

속으로 '뭐가 또 필요하구나.' 라며 전화를 받았는데, ' 머리 잘랐어요. 엄마.' 하고선 아무 부탁이 없더라고요.

정말 얼마 만에 받아보는 아이의 목적 없는 그 전화 한 통에 제가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그래서 또 아이에게 편의점 쿠폰 3만 원을 쏴준 호구 엄마입니다. 제가. 하하하 "





별거 아닌 아이의 전화 한 통에 이렇게 행복해하는 엄마라니...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내 마음 한 곳이 찡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이로부터 목적(용돈이 필요하다던지, 배가 고프다던지 등) 없는 전화를 받았던 게 언제였던가' 싶은 생각으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최근에 있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고... 가물가물하다. 목적 없이 '그냥...'이라고 전화 걸 엄마가 있다는 게 아이에게 큰 위로일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얼마 전 읽은 책 속의 구절이 떠올라 옮겨 적어 본다. 정신과 의사 하지현 박사님의 책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라는 책 속에 밑줄을 그어 놓았던 페이지의 내용이다.


위니캇은 ‘적당히 충분한 엄마(good enough mother)’가 아이에게 ‘최적의 좌절(optional frustration)’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양육이라고 했다. 완벽한 엄마가 아이에게 좌절과 실패 없는 삶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재앙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아이들 눈에 완벽해 보이는 부모는 그 자체로 재앙이라고 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부모는 이런 부분을 더 조심해야 한다. 뭔가를 더 해주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지금 해주고자 하는 것이 사실은 나의 욕심과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십 대 이후부터는 ‘뭔가를 더 해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지켜보는 자제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제시하는 선택들이 틀릴 수도 있고, 부모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부모 또한 빈틈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부모 또한 빈틈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 또한 자신이 실수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

그러다가 지치고 다쳤을 때, 힘이 들어서 휴식이 필요할 때 부모에게 돌아오면 된다. 그때 부모는 담요가 되어 지친 아이의 몸과 마음을 감싸주고, 항구가 되어 험한 바다를 잠시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바로 이것이 세상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부모의 결정적 역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춘기 아들 사춘기 딸이 너무 밉게 느껴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