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내가 머물던 병실로 승혜 씨(가명)가 왔을 때, 나는 그녀의 붙임성 있어 보이는 성격과 예쁘장한 외모에 큰 호감을 느꼈다. 작은 사고로 입원을 하게 됐다는 승혜 씨는 8살 된 딸을 홀로 키우며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승혜 씨는 개인 병실을 원했지만 대기자가 넘친다는 병원의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다인실을 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아서… 다인실이 크게 불편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네요.”라던 승혜 씨. 나는 그녀의 바로 옆 침대에서 지냈던 덕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병실에서 지내다 보면 옆 사람과 그 지인이 나누는 대화부터 전화통화까지 본의 아니게 사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병원의 이런 특성상 나 역시 뜻하지 않게 승혜 씨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자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혜 씨는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당시의 나는 하고픈 말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는 일이 더 많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승혜 씨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녀와 달리 나는 내가 뱉은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까 걱정하기 바빴고, 상황이 다 끝난 뒤에야 ‘이렇게 얘기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야무지고 붙임성 있는, 예쁘장한 승혜 씨’는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부터 간호사들에게까지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명사이자 인기인이었다. 그러나 이런 승혜 씨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그녀의 친정엄마가 방문하는 시간이었다.
승혜 씨는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오면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람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승혜 씨의 어머니는 입원한 딸을 대신해서 어린 손녀를 돌보고 있었는데, 손녀가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손녀와 함께 승혜 씨를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승혜 씨는 일껏 손녀와 함께 반찬과 빨랫감을 챙겨 온 어머니를 반기기는커녕 일방적으로 짜증을 부렸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표정에 퉁명스러운 말투…. 심지어 짜증이 절반인 대화는 그녀를 찾아오는 어느 문병객들보다도 짧았다.
나는 어머니를 대할 때만 확연하게 달라지는 승혜 씨의 모습을 보면서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내 궁금증을 자극한 건 승혜 씨가 딸에게 보이는 태도였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러하듯 딸에게도 딱히 애정 있는 언행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몇 번이나 이런 상황을 보게 되면서 나는 승혜 씨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에 유난히 깊은 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딸 앞에만 서면 쩔쩔매는 친정 엄마와 가시 돋친 말투로 일관하는 딸, 그리고 그런 엄마와 할머니를 보는 손녀까지…. 무엇이 이 모녀들 사이에 이토록 깊은 갈등이 생기게 만든 걸까? 이런 내 궁금증에 답해주듯, 어느 날 단 둘이서만 병실에 남게 되자 그녀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승혜 씨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가정환경 속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스러운 외동딸을 위해 좋다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딸이 하도록 만들었다. 승혜 씨 역시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학교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으며 임원까지 도맡아 했다. 투자하는 만큼 딸이 성과를 보이자 승혜 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그야말로 승혜 씨는 어머니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렇게 승혜 씨는 어머니의 서포트와 스케줄을 기반으로 빛나는 유년기를 보냈다.
승혜 씨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승혜 씨 어머니의 기대치도 곱절로 자라났다. 그리고 조금씩 모자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의 지나친 욕심은 마찰의 씨앗이 되었으며, 마찰은 결국 커다란 갈등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승혜 씨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어머니에게 반기를 들지는 못했다. ‘어른인 엄마 말이 정답이야. 넌 미숙하니까.’라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승혜 씨는 어머니의 말대로 스스로가 내리는 판단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갈등의 순간마다 자신의 의지를 단 한 번도 관철시키지 못한 채, 어머니의 준비대로만 따라가는 나날이 계속됐다. 그리고 어느덧 그녀는 고3 수험생이 되었다.
승혜 씨가 수능을 앞두었을 때, 그녀가 무난히 SKY 중 한 곳에 들어가리란 것을 주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승혜 씨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 어머니의 계획대로 그녀의 미래는 별다른 문제없이 계속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스케줄에 따라 학교와 학원을 성실히 오가며 주비 해온 대망의 수능 날, 승혜 씨는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아침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승혜 씨는 어머니에게 ‘오늘 아침밥은 못 먹겠어.’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문제를 푸느라 뇌를 쓰려면 탄수화물 섭취는 필수야. 굶는 건 절대로 안 돼.’라며 언제나 그랬듯 자신의 의견을 딸에게 관철시켰다. 승혜 씨는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삼킨 채 시험장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리고 일은 터졌다. 불편하게 강요된 아침 식사는 체기가 되어 승혜 씨는 컨디션 조절을 완전히 실패하게 된 것이다.
승혜 씨는 마지막 시험 과목인 외국어영역을 마친 뒤 시험을 완전히 망쳤음을 직감하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시험을 망친 것에 대한 원망은 당연하게도 그녀의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아침을 먹고 싶지 않다던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밥을 먹인 사람이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왜 나는 먹지 않겠다고 끝까지 말하지 못한 걸까?’라는 생각까지 승혜 씨를 괴롭혔다. 그녀는 자기 의사 하나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 한심했던 것이다. 승혜 씨는 수능성적표를 받은 날 완전히 무너졌다. 혹시나 하고 기다린 성적표의 결과는 ‘역시나’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점수는 이제까지 그녀가 받아본 점수들 중 최악의 점수였다. 부모님과의 의논 끝에 승혜 씨는 유학길에 올랐다. 갑작스럽게 변경된 인생의 항로는 그녀가 이제까지 억지로 눌러오던 마음의 폭발과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미움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뚜렷한 목적 하나 없이 떠나게 된 유학생활, 승혜 씨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타국, 그곳에서 느끼게 된 해방감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나를 지배하던 엄마, 내 생활을 통제하던 엄마, 내가 먹기 싫다던 아침밥을 억지로 먹여서 시험을 망치게 만든 엄마…. 승혜 씨는 난생처음 누리게 된 자유에 일탈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성인이 된 그녀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국에라도 온 듯한 자유를 누리며 승혜 씨는 결심했다. 이제까지 내가 누릴 자유를 억압하고 손 안의 인형처럼 쥐락펴락해온 엄마에게 복수하겠다고…. 그녀는 그렇게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나 어머니의 반대를 무시하고 결혼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선택한 결혼은 이혼으로 끝이 났다. 승혜 씨는 그렇게 어린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친정 근처에서 지내던 중이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승혜 씨의 ‘쓰레기 같은 남자’라는 표현이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아마도 그 ‘쓰레기’의 기준은 승혜 씨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삼은 것 같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게 된 건 전부 엄마 탓이에요.”
이야기를 마친 뒤, 승혜 씨는 ‘내 인생이 꼬인 건 전부 엄마 탓이에요.’라고 단언했다. 어머니를 보기만 해도 화가 치미고, 본인의 딸을 볼 때도 ‘실패한 인생의 결과물’을 보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했다.
승혜 씨의 이런 생각과 행동은 전형적인 ‘투사’에 해당한다. ‘투사’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또는 문제 등을 남에게 던져버리는 작용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이건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야.’라는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승혜 씨는 그녀의 모든 문제를 어머니의 탓으로 돌리며 사실을 더 크게 부풀리고 오랜 시간 동안 부정적인 감정을 지속해오고 있었다. 승혜 씨의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그녀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녀의 딸에게까지 옮겨갈 것이 걱정되어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승헤씨도 퇴원을 하게 되면서 더는 그녀와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이제는 수능이라는 단어만 보면 그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어디에 있든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너무나 상반된 승혜 씨의 두 얼굴과 이야기는 내게 무척이나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승혜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내 모습을 무던히도 발견했던 것이다. ‘지금 저 두 사람의 관계가 나랑 아들의 미래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모 자식 간에 사이가 틀어지면 그것을 회복하는데 30년이 걸린다.’
승혜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을 스쳐간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 나는 사춘기인 큰아이가 내리는 판단들이 못 미더워 ‘엄마 생각이 옳으니까 따르도록 해!’라며 아들과 기싸움 중이었다. 아이와의 감정싸움으로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던 내게 지인이 던진 저 짧은 한마디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너 계속 그러면 네 아들이랑 원수 될 거야.’라는 의미로 들렸던 것이다!
스스로 옳은 결정만 한다고 자부하는 엄마는 본인이 계획한 길로 아이를 끌어오기 위해 아이의 미숙함을 지적하며 엄마의 말이 옳다고 세뇌시킨다. 아이의 의사는 억누르고 엄마의 결정만 옳다는 주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승혜 씨 어머니의 모습에 본인들이 오버랩될 것이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승혜 씨와 함께한 시간 덕분에 나는 ‘사소한 것부터 스스로 결정해보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훈련이 되지 못한다면, 아이는 정말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승혜 씨가 본인의 뜻대로 아침밥을 먹지 않고 시험을 쳤다면 우수한 성적이 나왔을까? 이에 대해 내가 내린 답은 ‘아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만약 그날 아침밥을 먹었든 먹지 않았든 승혜 씨 스스로가 내린 선택으로 시험을 쳤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최악의 결과가 나왔더라도 그녀는 아마 현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마가 준비한 좋은 것들’이라는 독을 먹이고 있다. 이는 엄마들 역시 모르기 때문에 하게 되는 실수다. 그러나 엄마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마의 생각일 뿐이다. 설령 아이들이 내리는 선택이 미숙할지라도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 그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곧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실수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무서운 얘기지만 당신의 자녀 역시 승혜 씨처럼 부모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 심지어 승혜 씨의 경우 그토록 미워하는 어머니의 근처로 돌아가 여전히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당신의 아이에게 바라는 미래가 이런 것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어딘가에는 제2, 제3의 승혜 씨가 자라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부모들이 ‘스스로 삶을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들’, ‘본인 의사는 주장하지 못한 채 준비된 길만 걸어가는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는 각양각색의 방식이 있고 누군가는 ‘이게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야!’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시간을 겪게 해주어야 한다.
부모가 보기에는 아이가 내리는 그 선택이 아무리 뻔한 것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훈련’이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경험들이 아이의 내면에서 축적되어 책임감을 가진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