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그 후
또 그렇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장님,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얼마 전, 한 어머니로부터 딸아이(소담이, 가명)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학원에 보내고 싶다는 내용의 카톡을 받았다. 중학교는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진학하더라도 영어학원은 꼭 이곳에 가기로 아이와 이야기했다는 내용도 함께 적혀있다. 카톡을 보내신 분은 이전에 큰아이(은성이, 가명)를 보냈던 인연이 있는 어머니이시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학원을 운영하며 여러 아이들이 내 손을 거쳐갔고, 그런 아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중 유독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픈 친구가 있다. 늘 잊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며 순간순간 그리움이 밀려오는 아이가 있다. 은성이가 그 친구이며, 그 아이는 지금 세상에 없다.
-아무도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
은성이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그해 7월 첫 주가 은성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때이다. 웃음소리, 목소리도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는 오랜만에 가족 모두 해외여행을 간다며 신나서 자랑을 했다. '꼭 원장님 선물 사 오너라' 하며 유쾌하게 배웅을 하였다. 그리고 3일 뒤쯤... '온 가족이 신나게 여행 중이겠구나' 싶었는데, 알고 지내는 목사님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은성이의 '발인예배'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네???!!!" 너무 놀라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그 소식을 전달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상황이었던 거다.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어서 당장 다른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사실이란다. 황망함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참석한 그날의 발인예배는 비통함 그 자체였다.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이별이었기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운 여행길, 손잡고 떠난 아들을 한 줌의 재로 가슴에 안고 돌아온 부모의 애통함은 정말이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온몸에 수분이 다 말라버릴 만큼 울고 또 울었을 부모의 처절한 모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어온다. 타지에서 사고사를 당한 경우 시신을 상하지 않게 옮겨오는 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에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현지에서 화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하는 튼튼했던 은성이는, 그날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 날 그다지 깊지도 않던 숙소 수영장에서 익사를 했다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신문기사에서 그 소식을 또 보게 되었다. 그날 하필 안전요원이 자리를 비웠고 엄마는 잠시 물건을 가지러 방으로 간, 그 잠깐의 시간 동안에 어이없게도 사고가 발생했던 거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그저 여기까지가 그 아이의 운명이었나 보다 라는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릴 뿐이었다.
-남아있는 흔적들과 마주하며
그렇게 그 친구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한 후, 한동안은 학원생 명부에서 그 아이 이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몇 달을 그대로 두었던 거 같다. 은성이가 사용하던 책과 곳곳에 은성이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을 볼 때마다 울컥울컥 하는 슬픔이 몰려왔었다. 그래도 나와는 3년 여를 함께 해왔었으니 쌓여있는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경황이 없어 전달하지 못한 조의금을 보내고 수업료를 환불 처리하며 울고, 미루다 미루다 은성이의 책을 모두 정리하는 날도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일주일에 몇 번 만났던 나도 그러할진대 그 남겨진 가족의 아픔이야 말해 무엇하랴.
중간중간 그 가족들이 매 순간 아들의, 오빠의 빈자리를 느끼며 잔인한 그 시간들을 버티며 "살아내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참 아팠다.
주변 어디를 가도 은성이의 친구들이 눈에 띄고 매일매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아이의 빈자리는 너무도 크게 느껴졌으리라. 매일 아이와 함께 걷던 길, 함께 가던 장소, 함께 먹던 음식들 모든 게 아이를 떠올리게 하여 이사를 결심했었다고도 들었다. 마음이 너무 힘드니까. 하지만 고민 끝에 그 가족은 피하기보다 그렇게 온 슬픔이 그들을 통과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마음 아프지만 그 또한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여라도 마음 아플까 연락도 조심스러워 먼저 못하고 지내던 시간이 그렇게 3년이 흐른 거다.
그리고 내 머릿속 은성이의 모습은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여름에 멈춰있었다.
그렇게 멈춘 시간 속
은서의 모습만 흑백인채로 남아있다.
-다시 연결되는 인연의 고리들
그 친구에게는 이쁜 여동생이 소담이가 있다. 누구보다 먼저 바로 눈앞에서 오빠의 죽음을 가장 먼저 보았고, 그 슬픔과 혼돈의 시기를 온전히 견뎌내며 어린양을 부릴 틈도 없이 훌쩍 커버린 속 깊은 아이. 꼬맹 이때의 모습만 기억에 있던 소담이가 어느새 곧 중학생이란다. 큰아이 때도 믿고 아이를 보내셨던 엄마는 지금 다시 소담이를 맡기고 싶다며 연락을 주신 거다. 감사하게도.
어머니의 톡을 받고 생각이 많아진 나는 그사이 소담이가 얼마나 컸을지 내심 궁금했다. 곧 도착할 은성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참 묘했다. 약속한 시간에 수줍게 웃으며 학원으로 들어서는 소담이를 보니, 사진으로 보던 어린 모습은 없고 한눈에도 어른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앉아서 테스트를 위해 시험지를 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왜 이리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 괜히 먼 산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얼굴에서 순간순간 먼저 하늘로 간 오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소담이 도 알고 있다. 이곳에서 이전에 오빠가 공부했었다는 걸.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소담이에게 엄마의 안부를 물으며 밝게 이야기를 건네었는데 아무래도 나 스스로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괜히 말이 많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테스트를 마친 아이를 꼭 안아주고 돌려보내고 싶었는데, 너무 티를 내나 싶어 참았다. 그간 이런 안타까운 시선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태어나면 물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겪은 지인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 중, 손에 꼽는 가슴 아픈 사연이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절절하게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곁에 있어주고,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하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만병통치약 '시간'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해 주기를 함께 바라며.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인연의 끈을 붙잡으며 우리는 그렇게 또 살아가는 것 같다. 한동안은 여행을 간다는 아이들을 보면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내 걱정 레이더가 빨간불을 켰다. 그렇게 무조건 안전히 건강히 다녀올 것을 다짐받아왔다. 여행을 간다는 아이들을 향한 불안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지금도 불쑥불쑥 나를 힘들게 한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것이 이들의 마지막이었다.'라는 대사가 현실이 될까 봐.
충격적인 사건들은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 아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의 시간이 좀 흘러서 이제는 좀 괜찮겠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저 맑아 보이지만 가라앉은 흙탕물처럼 휘저으면 여지없이 마음이 혼탁해진다. 평온하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며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다시 평정심을 되찾아 보려 한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맺게 된 인연과 잘 지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