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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Jun 05. 2021

기한이 만료되었습니다.

본질은 소중함이야.

    어린 시절에 집밥을 먹어 본 기억이 드물었다. 어쩌다 잘 차려진 밥상을 얻어먹으고생은 요리하신 분이 하셨는데 칭찬은 내가 받아서 어리둥절했다. 그저 복스럽게 잘 먹는단 이유로 칭찬을 받다니. 그 까닭을 마음으로 깨닫기까지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의 의미도.


    초등학생 고학년 때부터 장거리 통학으로 거의 밤이 돼서야 귀가하곤 했으니 매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당시 내 주식은 편의점 컵라면과 삼각김밥이 통상이었다. 시간에 쫓기느라 그때부터 습관이 된 속식은 엄마가 된 이후 아이들 뒤치다 거리로 더욱 가속화되었다(살면서 지금까지 나보다 빨리 먹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혼자 다니거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유통기한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한 입 먹어보고 나쁘지 않으면 꾸역꾸역 끼니를 때우곤 했다. 재수생 시절, 애매한 위치에서 쓸데없이 넓기만 하니 폐기될 음식이 넘쳐났던 편의점은 알바에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도 씹어먹을 패기인데 폐기 따위 마다할 이유가 뭐람. 고작 몇 시간, 몇 분 차이로 버려지는 게 속상했다. 공산품이라도 분명 담겼을 누군가의 정성이 아까워서.   


    가끔씩 쉬는 날에 장을 보러 갈 때면 친정엄마는 유통기한을 꼼꼼히 살피셨다. 그까짓 며칠 지난 정도로는 괜찮을 텐데,라고 흰소리를 내뱉으면 장장 10 여 동안 핀잔을 듣곤 했다.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당시 친정엄마의 신중함을 십분 이해하게 됐다. 유통기한이 조금이라도 지났거나 오래 묵혔다 싶은 음식은 가차 없이 버린다. 다만 개중엔 상태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닌 내 위장 속으로 폐기된다. 아이들이 손도 안됐다시먹다 남긴 음식에도 나의 잔반 처리력이 기능한다. 그때마다 서럽기보다는 속상했다. 요리에 들인 노고와 정성이 아까워서.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음식은 상한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먹을 수라도 있지. 기한이 만료되어 쓸모 없어진 쿠폰은 그대로 소멸된다. 그깟 쿠폰 쪼가리는 무가치하게 사라진다. 어쩔 수 없지만 속상했다. 누군가의 노고와 정성을 손쉽게 놓치는 게 아까워서.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이고 제때 쓸모를 다하지 못하면 의미 없이 버려진다. 내 삶에도 이미 여러 차례 기한 만료를 거쳤다. 성장기에 제대로 된 식사가 주식이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컸을까. 주위를 좀 더 유심히 둘러보았다면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눌 친구 한 명 정도는 남지 않았을까. 물론 그럴 여유조차 없이 꿈을 좇기 바빴던 시절도, 때를 놓쳐 꿈에서 멀어진 지금도 외롭긴 마찬가지지만.


    크기와 형태와 길이와 깊이에 상관없이 정성을 받는다는 건 소중한 인연이다. 찰나에 얕게 스치든 천천히 깊게 스미든, 혹독한 생에서 어쩌다 마주하인연은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주고받 마음의 크기결코 동등하지 않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나의 경우 왜소한 몸집만큼이나 존재감 또한 작다 보니 어느 관계든 거진 일방적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놓치기란 쉽고 얻기란 참 어렵다, 앞으로 그럴 것이고. 실로 지긋지긋히지만 별 수 있나.


    그러니 삶에서 어떤 일이든 그 결과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자 노력해본다. 거부되면 어쩔 수 없고, 어쩌다 마주 닿으면 더할 나위 없고. 그럼에도 기한이 지나 무쓸모하게 버려지고 버림받는 게 정 안타까울 때면 감정을 소모하기보단, 본질은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으로 굳이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면 드물게 다가오는 인연마다 더욱 소중해질 테니 퍽퍽한 세상살이 역시 버틸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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