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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May 31.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기에

    나는 한부모가정에서 자랐다.

 

    그마저도 따로 나와 살다가 스물한 살에 결혼했으니 5 남짓한 세월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없다. 생부만이 있을 뿐이다. 돌연 가족을 저버리고 잠적한 생부를 누구도 납득할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던 그는 기어이 혼자 결론지어버리고  것이다. 그마저도 10  만에  차례씩 닦달한 끝에야 간신히 주워들을  있었다. 내가 자식을 망쳤구나, 하고.


    나는 비록 겉돌지언정 진로가 확고했다. 그러나 들여진 돈과 시간에 비해 가성비가 한참 딸렸던 나는 잘못된 자식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 건사엔 안정적인 돈벌이가 필수요건이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엄마는 비록 은퇴에 가까울수록 회의감도 따라 커졌을지언정, 천직이라 여긴 교사로서 오래도록 교편을 잡으셨다. 가정을 지키며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인생에서 행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까닭 중에 막대한 비중은 장녀인 나였다. 나는 잘못된 자식이니까.


    나는 한부모가정에서 자랐다. 한동안 혼란을 겪었을지언정 결핍을 느낀 적은 단연코 없었지만, 그럼에도 편모슬하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비단 혀를 제멋대로 놀리길 좋아하는 인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부의 까닭 모를 잠적과 나의 행보는 결코 <평균치>에 미치지 못했다. 앞으로도 영영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실패한 자식이니까.


    나는 실패했다. 여전히 겉돌며 방향마저 잃었다. 나는 당신의 분신이나 또한 출가외인이므로 당신과의 교집합 안팎을 수시로 넘나 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어리숙하고 무능한 장녀는 부질없는 한 마디만을 맥없이 던질 뿐이다.


    제발, 우리 인생 아직 안 끝났어요.


    어리숙하고 무능한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이해받을 수 없다. 앞으로도 영영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 실패한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지난 실패가 기어이 발목을 붙들어 몇 번이고 접질리더라도 더 이상 한 곳에만 고일 순 없다. 아무리 처절해도 그만 벗어나고 싶다. 간간히 당신은 내 손을 뿌리치겠지만 나는 몇 번이고 손을 내밀며 같은 말만을 되풀이할 것이다, 우리 인생 아직 안 끝났다고.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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