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상담하는 앵무새

칭찬받았는데 전혀 기쁘지 않아.

by 이선하

Picture by. Kevin Mueller / Unsplash


엎친 데 덮치는 날. 온종일 동시다발적으로 감정이 소모되는 날. 어제가 유독 그런 날이었다. 평소보다 피로하고 기력이 달려 감각이 배로 예민했다. 비는 태양을 피하고 싶었고 나는 진상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때는 결국 오고야 만다.


나는 일컫자면 1차 이첩 담당(?)으로 소위 수습 처리반 내지는 총알받이다. 쩔쩔매는 동료에게 그만 이첩하라고 수신호를 보냈지만, 정작 곁에서 같이 듣고 있던 나야말로 심장이 쿵덕거렸다. 뭐라고 운을 뗄지 글로 죽 적어 정리해보고, 한 차례 심호흡 후 비장하게 전화기를 든다.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속으로 주문을 건다. 나는 감정이 없는 앵무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앵무새다, 나는 감무새... 전화 바꿨습니다, 이첩받고 연락드렸습니다.


이전 상담사가 안내드린 대로 고객님의 현재 상황은 이러이러한 상황이며 규정상 저희가 안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 입니다, 더 이상 구두 설명은 불가합니다, 유료 서비스를 받으실지는 고객님께서 선택하실 몫입니다, 화내시면 상담 진행 어렵습니다, 등등.


5분 간의 설전 동안 한 마리의 앵무새가 되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주변의 시선이 목덜미에 따갑게 닿았다. 다른 접수가 밀리니 오래 끌지 말라는 일종의 종용이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무리 암시한들 나는 앵무새가 아닌 사람이다. 감정이 고조될수록 응대가 버거워진다. 심사가 심히 뒤틀린 음성이지만 상담 중단하기엔 상한선이 간당간당하니 무작정 종료하기도 애매했다.


고객이 봉이냐며 봉산탈춤을 추건 말건 동요하지 않고 앵무새로써 소임을 해나간다. 그 와중에 돌연, 지금 상담하는 아가씨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평소에도 종종 받는 질문이다(대개는 꼭 통화 종료 직전에 당신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협박조로 말하더라. 기억해서 뭐 어쩔 건데?). 바로 등 뒤에 사장이 버젓이 서있으니 침착한 중저음톤을 유지하되, 소싯적에 갈고닦은 발성으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저는 상담사, 이.선.하. 입니다.


그 순간 다시 좌중의 시선이 내게 집중됨을 느꼈다. 하등 쓸데없는 이름 부심을 부려 뒤늦은 수치플에 아찔했다. 강성 고객도 일시적으로 감화했는지 어쨌는지 멈칫하더니 한풀 꺾인 어조로 ○○○ 씨에게 뭐 좀 묻겠단다. 그러나 결국 여태껏 해온 요금 지불 항의에 대한 연장 선상이었고 이에 내가 다시 앵무새로 복귀하자, 그제야 규정을 만든 책임자를 바꾸라며 요구했다. 휴, 드디어 해방이다.


윗분이 다가와 아주 잘하셨다고 양손 엄지를 치켜세웠다(윗분은 평소에 우리는 앵무새가 돼야 한다며 거듭 강조했다). 상담은 끝났고 칭찬까지 들었어도 내 속은 어지간히 시끄러웠다. 뒷자리의 상사에게 바로 이첩 내용을 전달했어야 는데 긴장이 훅 풀렸는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미처 숨 고를 틈도 없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접수 연발에 맥을 못 추고 허우적대다가 간신히 마무리하고 이첩 건을 전달하러 갔다. 상사도 예의 윗분처럼 엄지를 치켜세우며 정말 멋졌다고 연거푸 칭찬했다.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독려 차원의 형식적인 인사치레라 그런가 아니면 동기부여가 없어서 그런가. 감동도 재미도 없이 그저 헛헛했다. 내게 남는 게 뭐지. 인센티브나 처우개선비가 별도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한들 사실 내 개인적인 관점만 두고 보면 성과가 아주 없진 않다. 싫은 소리 하느니 손해보고 만다는 식으로 거절하길 두려워했던 내가 상담 업무를 통해 혹독하게 배우는 중이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을 이 나이 되도록 익히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또한 상대가 내게 화낼 때 그 사람이 원하는 바, 본질을 파악한 후 무미건조하게 응답하는 법을 훈련하는 중이다. 통상 분풀이는 자신이 부당하거나 불리하다고 여길 때 발동되는 자기 방어다. 그러나 화는 전염성이 강하고 여파 또한 상당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자의든 타의든, 감정은 소통하는 동안 교류할 수밖에 없다. 화는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응답으로 일관하며 흐름을 차단시키는 게 자신을 보호하는 나름의 요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막상 맞닥뜨리면 말려들 수밖에 없다.


결국 애먼 데 분풀이해봤자 실질적인 대화는 화를 내지 않아야 가능하다. 비록 상담 업무와 일상에서의 대화는 별개지만 화를 다루는 점은 동일하게 적용할만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편하다고 함부로 대하진 않았는지 지난 언행을 자성하는 건 덤이다.


어찌 됐든, 감정 없는 앵무새 노릇은 싫다. 생계를 위해 별 수 없이 감내한다지만 경험의 누적과 멘털의 강도가 비례하진 않는다. 강성 고객을 접하는 십중팔구는 감정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상호존중이 전제되면 공연한 소모없이 서로가 편할 텐데 말이다.


많은 이들이 전망하는 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객 응대 상담원, 이른바 감정노동 인력은 근래 들어 차차 AI로 전면 대체될 것이다. 굳이 스스로를 감정 없는 앵무새라며 암시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밥벌이가 대폭 줄겠지. 사람으로 인한 폐단을 줄이기 위해 사람이 아닌 것으로 사람을 대체하고 사람이 설 자리를 빼앗게 되는, 이래저래 각박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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