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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Mar 17. 2024

이해와 편견

스물아홉: 자기인식

사람들은 때때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을 이해하고자 자신만의 관점으로 정의 내리곤 한다. 왜?라고 까닭을 찾는 본원적 접근은 어쩌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내재된 이타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연해지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틀에 박혀 경직되기 십상이다. 가령 내 시선에서의 검은색은 그 대상의 본연이 아닌 ‘내가 쓴’ 색안경임에도 세상이 어둡다고 느끼듯이. 자신도 모르게 쓴 색안경을 벗을 생각조차 못한다.


그러니 내가 보는 대상이 진실인지 허상인지, 그전에 앞서 내가 색안경을 썼는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능력은 숱한 성찰과 자기 인식의 시행착오로 습득될 터다. 결국 무엇이든지 자기 자신에게 달렸음은 실로 진부하나 숫제 지당한 진리다.


모쪼록 한 가지 색일 뿐인 세상은 너무 폐쇄적이고 외로울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너절한 삶이 보다 다채롭고 넓어진다면 그나마 숨 돌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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