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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단상

fool

바보

by 이선하

신의 존재를 믿지 않다기보다는 믿기지가 않아서, 설령 나를 수호하는 신이 있다고 한들 나를 지켜주긴 개뿔 방관 중인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으로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줬으면서 매번 버림받기나 하는 조롱거리로 만드니까. 결과적으론 내 선택의 결과인 만큼 누구도 원망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어리석은 인간이고 싶다.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음에도 감성과 냉정, 타락과 순수, 추함과 아름다움, 행복과 고통, 존경과 질투, 근면과 나태, 사랑과 미움 등 양가적인 속성에 번뇌하면서도 부단히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여정에 나름대로 애착을 느낀달까. 물론 혼자 사는 삶이 아닌 이상 지나친 편향은 지양하고 평정을 지향해야겠지.


잘 살고 싶다는 의지와는 별개로, 책임이고 뭐고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은 나약함도, (타고나기를 돌도 기댈 수 없는 팔자라지만) 어딘가에 기대어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자기혐오와 자학하는 모습도, 시나브로 스며든 사소한 습관과 가치관을 굳이 아파하면서도 꾸역꾸역 감수하려는 미련스러움도.


어떨 땐 팔랑귀가 따로 없다가도 뚫린 귀로 경을 듣기만 하는 쇠고집도, 어떨 땐 소나무 같이 한결같다가도 수시로 변덕스러움도,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다 나다. 겨워 겨워 품어야 할 나의 일부이자 어쩌면 전부다. 자기애와 자기연민은 없을지언정 본래 신조대로 진실되게 살고 싶다.


억지스럽고 싶지 않다. 강해져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는 말에 반감이 든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싫다. 전 직장의 퇴사날, 윗분의 조언대로 앞으로는 힘 좀 빼고 다닐 생각이라.


모쪼록 주어진 삶의 주체가 신이 아닌 나 자신인 만큼, 내 존재 의미와 고유성은 강박적이고 억지스러운 포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고 싶다.




나는 오래도록 정착을 꿈꿨지만 늘 겉돌았다. 진심이었든 가식이었든 다정하게 내민 손길에 안정을 취한 듯한 순간도 잠시 뿐이다. 사람이든 재능이든 내 전부를 걸 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것들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희망고문하더니 결국은 닿을 수도 없이 저 멀리로 떠났다.


그러니 고유성이 전혀 다른 이질끼리 만나 서로 동질을 교감하고 교류하고 공유하는 평안의 순간은 형언할 수 없는 소중한 기적임을 이번에도 절절히 배웠다. 언젠가 10여 년 전에 어떤 지인이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당시엔 아리송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어쩌면 희망과 바람은 목적이 될 순 있어도 행복은 목적이 아닌 부유하는 부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반드시, 기필코 좇아야 되는 무언가가 아닌, 뜻밖에 발견하거나 획득된 행운일지도. 어쩌다 눈에 띈 길가의 예쁜 꽃을 지나친 지 한참이 지나도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문득 떠오를 만큼 두고두고 마음 깊이 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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