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형태의 유지만으로 손틈 새로 흐르는 물 내지는 모래알처럼 아주 찰나에 반짝일 뿐인 미물에 불과하다. 해서 삶이란 피천득의 그 유명한 시구처럼 잠시 다녀가는 소풍(<귀천>)이겠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삶은 투쟁과 탈피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투쟁과 탈피만이 전부는 아니다.
일방으로 흐르는 시간 따라 크고 작은 굴곡 속에서, 대개는 순리에 굴종하거나 내지는 투지(극복의지)로 역행하거나, 아니면 둘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이렇듯 삶은 수시로 쟁취와 유지를 위한 투쟁과 보호의 조화이며, 결국 이 조화의 궁극적인 원동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 주는 의미와 시사하는 바가 개인마다 다를 뿐.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가능성을 잃어가는 만큼 또 현 상태로는 전과 같은 텐션을 완전히 회복하긴 영 어렵겠지만. 모쪼록 13년 5개월 뒤에 깔끔하게 죽든 그보다 오래 살게 되든, 결국은 삶의 끝까지 홀몸이든 기적처럼 나타나서 함께한 누군가와 사별이 되든지 간에.
적어도 지금은 고여서 썩지 말자. 더 이상 매몰되지 말자. 흐르자, 어디로든. 일단은 제3막 3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