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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한다

모든 태어난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숙명이자 거스를 수 없는 흐름

by 이선하

기울어야 차오른다. 저물어야 떠오른다. 비워야 채워진다. 이전이 있어야 다음이 있다. 종결이 되어야 시작이 있다. 바닥까지 추락해야 마루로 비상한다. 헤어져야 모인다. 고통스러워야 (정도에 따라 상흔을 남기더라도) 치유된다.


또는 반대로도 진행된다.


영원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반복되는, 저마다 각자의 시간과 궤적으로 굴곡을 순환하는 일방의 역사. 종족, 연령을 막론한 모든 태어난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숙명이자 섭리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사람은 더불어 살면서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선 자아를 이루는 일부로 형성되기도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길들여진다”는 표현처럼,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말한대로 “스민다”는 표현처럼.


하지만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기쁨이가 불안이에게도 말했듯, 감정은 결코 정체성 그 자체가 될 순 없다.


그러니 상실과 별개로 내 본연의 특성을 결코 잊지 말자. 매순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언젠가는 낭떠러지에서 기어이 올라와 웅장한 포효로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며 사랑조차 무너뜨릴 수 없는 심장이 뛰는 사자로 거듭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바다처럼 포용하고 흐르자. 범사에 감사하자. 기만 없이 진실되자는 본연의 주관을 되찾자. 일과동안 매 순간 의식하자. 그래야만 한다.


내게 주어진 운명은 지난 선택의 결괏값이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겸허하게 수용하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 역시 과거와 지금의 선택의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터널인지 동굴인지를 벗어난 끝에 설령 한 줄기 햇빛도, 달빛도, 함께하자 다가오는 누군가가 없더라도. 해서 또다시 황량한 사막을 외롭게 정처 없이 떠돌더라도.


내 본연의 가치와 주관을 나만이 분명하게 의식해서 버팀목 없이도 홀로 우뚝 서자. 행여 폭풍에 휩쓸려 흔들리더라도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까지 나 자신 스스로가 버팀목이 되자.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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