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내 성향이나, 취향이나 여하튼 뭐가 됐던지 나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라며 섣불리 단정 짓는다. 어쩜 제각기 생김새, 성격, 성장환경, 사고방식이 전부 다른 사람들임에도 선입견 앞에선 한마음 한뜻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최종 목적은 내게 마음을 비우고 '순리대로' 살아가라고 조언하는 것, 즉, 국으로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남편 하는 일이 잘 돼야지, 자식들이 잘 커야지 그 복이 다 너에게로 돌아간다 등.
대체 순리대로 산다는 게 뭐지? 남편이 잘 되는 건 남편의 노력과 능력으로, 아이들이 잘 되는 것 역시 (양육기 동안 부모의 영향도 적지 않지만) 아이들 각자의 몫이고, 내가 잘 되는 것 또한 내 나름의 성과인 건데 이게 어째서 순리인걸까? 가족의 기쁨을 함께하는 것과는 전혀 결이 다른 맥락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여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대체 불가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재능이라던가 경제적 여건을 갖춘 게 아닌 이상스스로의 이름을 지우고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 가정에 종속되는 것을 가리켜 순리라고 일컫나 보다.
이른 나이에 서둘러 결혼하면서 아주 각오가 없던 것도 아니고 일리 없는 말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지랖일지언정 조금이나마 걱정 어린 조언에 역으로 성을 내고픈 마음은 그럴 성정도 아니거니와 추호도 없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낳아 기르는 것, 가족 구성원 모두 건강하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그럼에도 나라는 정체성이 결혼 이후 역할의 무게에만 국한되는 건 못내 씁쓸하다. 온전히 가진 거라곤 고작 이름 석 자뿐이라도 그 속에는 나름대로 치열했던 고민, 열정, 노력들이 담겼는데, 결혼과 육아라는 막중한 책임감 아래로 일전의 삶의 흔적들이 깡그리 지워지는 건 아무래도 견딜 수가 없다. 솔직히 나에게 결혼은 서막이 끝난 후 제2의 개막이자 나락 속의 행복이다. 아직까지 어느 분야에서든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의 관계성으로만 연관 지어지고 기실 숱하게 얽매이니까. 아이들을 낳은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지만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가정에 발목 잡혀 허송세월 하는 느낌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딱히 화가 나는 것도, 그렇다고 당장에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늘 거대한 돌덩이에 짓눌리듯 답답하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인 것을. 매번 이토록 마음에 담아두게 되는 건 결국 나조차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탓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할 사람인들 평생에 자아를 완성하겠냐마는, 굳이 '누군가의'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개인으로서 내 이름을 되찾을 날이 오기는 할지 기약이 없다.
나에게 이른 결혼은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벌일까, 그동안의 외로움에 대한 보상일까. 뭐가 됐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그들이 말하는 '순리대로'만 살아갈 의향은 없어서다. 꼴에 내 이름 석 자는 남기고픈 남루한 자존심이 티끌만치 남은 까닭에.